<종교로서의 자본주의> I.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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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건우2022-06-28 14:48
안녕하세요,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저는 민중신학도는 아니지만 장로교 배경에서 신학과 윤리를 오랫동안 공부해온 사람인데요, 최근 몇 년간 기후위기에 대해 고민하다가 결국 자본주의 정치경제에 대해 제대로 알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핏 스치듯이 '탈성장'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해서 질문 하나 드리고 싶어요. 탈성장론에 대해 비판하는 좌파 이론가/운동가들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생태사회주의자들과는 긴장 관계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궁금합니다. 즉, 탈성장 이론이 자본주의 '이후' 혹은 '너머'를 사유하는 데에 얼마나 적실한 자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정용택2022-07-01 17:03
권건우님, 좋은 질문 감사드립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기존의 탈성장 담론에는 비판적입니다. 그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마르크스주의적 탈성장 담론에서 비판하는 (경제의) ‘성장’(growth)이 너무 모호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부(富, wealth)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가치)과 그러한 상품에 체현된 노동의 이중성(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이라는 마르크스의 최초 규정에서 전개되는 부(富)의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증대로 표현되는 물질적 부/구체적 부와 ‘(화폐적) 가치’로 표현되는 사회적 부/추상적 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사회적 부(social wealth) 또는 추상적 부(abstract wealth)는 과거에 만들어졌든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든 사용가치로서 측정되는 기존의 모든 상품들의 총합인 물질적 부(material wealth) 또는 구체적 부(concrete wealth)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에 근거하여, 그리고 마르크스를 탁월하게 해석해낸 모이쉬 포스톤을 따라서, 가치(value)라는 용어를 사회적 부/추상적 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고, 사용가치(use-value)라는 용어는 물질적 부/구체적 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합니다.
물질적 부/구체적 부와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두 가지 유형의 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동일한 부의 두 가지 공존하는 규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부/구체적 부는 그 특정한 측면에서 볼 때 질적인 부입니다. 그것은 재화와 서비스, 기타 모든 생산적 활동에서 비롯되는 생산물의 사용가치들, 즉 유무형의 재화들 및 서비스들의 특정한 질적인 유용성을 통해서 존재하는 부입니다.
반면에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그 다양한 규정들 중 오직 하나, 곧 화폐적 가치로만 측정되는 양적인 부입니다.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특정한 양적 측면, 즉 수많은 유용한 구체적 사용가치들의 질적인 측면들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바로 화폐적 가치입니다. 그러한 추상화를 통해서 구체적 부는 추상적 부, 즉 화폐적 가치를 통해서 평가되고 측정됩니다. 화폐적 관점에서 가격 매겨지고 가치평가되는 것이지요.
요컨대 물질적 부/구체적 부가 재화의 생산에서 표현된다면,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가치로서 범주적으로 표상되고, 화폐의 형태로 물화(物化)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한 재화들의 양과 질의 함수인 물질적 부의 측정과 달리, 가치의 측정은 규정적 관계―즉, 계기와 총체성의 관계의 형태를 갖는 특수한 것과 추상적-일반적인 것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관계의 두 항은 생산적 활동(productive activity)과 사회적으로 매개적인 활동(socially mediating activity)으로서 기능하는 노동에 의해 구성된다. 이러한 노동의 이중적 성격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부의 준(準)객관적, 추상적 시간적 측정의 기저를 이룬다. (Postone, 1993: 287)
저는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증대를 통해 경제적으로 물질적 부가 풍부해지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경제성장의 한 측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는 사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자본의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대해야 할 탈성장은 바로 그러한 화폐적 가치증식, 자본의 축적을 위한 추상적 부의 성장이지 물질적 부의 성장 그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탈성장 담론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이 둘의 적대적 관계에서 확대되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정밀하게 진단하지 않고, 무조건 경제성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제가 보기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문제가 많은 전략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기존의 탈성장 담론에는 비판적입니다. 그 취지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마르크스주의적 탈성장 담론에서 비판하는 (경제의) ‘성장’(growth)이 너무 모호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는 부(富, wealth)가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상품의 이중성(사용가치와 가치)과 그러한 상품에 체현된 노동의 이중성(구체노동과 추상노동)이라는 마르크스의 최초 규정에서 전개되는 부(富)의 이중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증대로 표현되는 물질적 부/구체적 부와 ‘(화폐적) 가치’로 표현되는 사회적 부/추상적 부를 우리는 구별해야 합니다.
사회적 부(social wealth) 또는 추상적 부(abstract wealth)는 과거에 만들어졌든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든 사용가치로서 측정되는 기존의 모든 상품들의 총합인 물질적 부(material wealth) 또는 구체적 부(concrete wealth)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저는 마르크스에 근거하여, 그리고 마르크스를 탁월하게 해석해낸 모이쉬 포스톤을 따라서, 가치(value)라는 용어를 사회적 부/추상적 부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고, 사용가치(use-value)라는 용어는 물질적 부/구체적 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합니다.
물질적 부/구체적 부와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두 가지 유형의 부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에서 생산되는 동일한 부의 두 가지 공존하는 규정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 부/구체적 부는 그 특정한 측면에서 볼 때 질적인 부입니다. 그것은 재화와 서비스, 기타 모든 생산적 활동에서 비롯되는 생산물의 사용가치들, 즉 유무형의 재화들 및 서비스들의 특정한 질적인 유용성을 통해서 존재하는 부입니다.
반면에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그 다양한 규정들 중 오직 하나, 곧 화폐적 가치로만 측정되는 양적인 부입니다. 자본주의에서 하나의 특정한 양적 측면, 즉 수많은 유용한 구체적 사용가치들의 질적인 측면들로부터 추상화된 것이 바로 화폐적 가치입니다. 그러한 추상화를 통해서 구체적 부는 추상적 부, 즉 화폐적 가치를 통해서 평가되고 측정됩니다. 화폐적 관점에서 가격 매겨지고 가치평가되는 것이지요.
요컨대 물질적 부/구체적 부가 재화의 생산에서 표현된다면, 사회적 부/추상적 부는 가치로서 범주적으로 표상되고, 화폐의 형태로 물화(物化)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정한 재화들의 양과 질의 함수인 물질적 부의 측정과 달리, 가치의 측정은 규정적 관계―즉, 계기와 총체성의 관계의 형태를 갖는 특수한 것과 추상적-일반적인 것 간의 관계―를 표현한다. 이러한 관계의 두 항은 생산적 활동(productive activity)과 사회적으로 매개적인 활동(socially mediating activity)으로서 기능하는 노동에 의해 구성된다. 이러한 노동의 이중적 성격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부의 준(準)객관적, 추상적 시간적 측정의 기저를 이룬다. (Postone, 1993: 287)
저는 기술혁신이나 생산성 증대를 통해 경제적으로 물질적 부가 풍부해지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것 역시 경제성장의 한 측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혁신과 생산성 증대는 사실 더 많은 잉여가치를 생산하기 위한 자본의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반대해야 할 탈성장은 바로 그러한 화폐적 가치증식, 자본의 축적을 위한 추상적 부의 성장이지 물질적 부의 성장 그 자체는 아니라고 봅니다. 탈성장 담론은 이 둘을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이 둘의 적대적 관계에서 확대되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을 정밀하게 진단하지 않고, 무조건 경제성장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제가 보기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문제가 많은 전략입니다.
1강: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서 신으로서의 시장으로
1) 강좌 오리엔테이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2) 하비 콕스의 『신이 된 시장』 전체 내용 개관: 시장은 어떻게 신이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