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프로그램 리뷰] 비평연습_성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1강 글쓰기(조명화)

관리자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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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연습_성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가 1강 글쓰기



조명화

 


본 영상 강의를 통해 사사기 19-21장에 대한 역사적 정황에 대한 이해에 큰 도움을 받았다. 교수님 말씀처럼 이 본문이 동성애를 주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그러나 성스러운 텍스트를 이용해서 개인의 주장을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누군가는 전체 네러티브를 제외한 부분만을 취하려 한다. 이러한 ‘뽑기식’ 이해는 개신교 내에 만연된 현상이다. 연초가 되면 한해 운수를 뽑듯 말씀을 뽑는다. 어차피 꽝은 없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네러티브 속에서도 뽑기를 하려는 나쁜 버릇이 생겨났다. 그 결과 생겨난 다양한 담론 중 한 가지가 동성애에 관한 것 아닌가 싶다. 아직 동성애에 대한 나의 이해는 초급 수준이긴 하지만 적어도 본문 안에 나타난 이야기가 그것에 관한 것 아님 정도는 알 수 있다. 내 이해에 따르면 이 본문는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정황을 담지한 하나의 사건이면서 상징적 네러티브이다.

 

본 연구에서 언급된 몇 가지 해석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싶다. 우선 사사기 19:1 에브라임 사람이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다는 말에서 첩으로 번역되는 ‘잇싸’는 본 연구를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 중 하나이다. 교수님은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첩’이 아니라 ‘두 번째 부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단어를 첩으로 해석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 이유는 이 단어가 쓰인 다른 본문 용례를 살펴보면 ‘첩’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창 35:22, 36:12, 삼하 3:7, 대상 1:32. 2:46). 또 다른 이유는 룻기에서 찾을 수 있다. 보아스는 자신의 부족 내 질서를 따라 형제의 아내를 취할 의무를 행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무를 자로서 보아스는 이 의무를 행하기로 결정하고 모압여인 룻을 아내로 맞았다. 본문 정황상 보아스에게 룻을 만나기 이전부터 첫 아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보아스가 룻을 부르는 호칭은 ‘잇쌰’이다. 두 번째 아내(혹 그 이상의 아내)라고 해도 ‘잇싸’를 사용하지 ‘펠레게쉬’를 쓰지는 않는다. 즉 ‘펠레게쉬’가 두 번째 아내라는 뜻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이다.

 

두 번째는 19:2에 나타난 ‘자나’에 과한 것이다. ‘자나’는 구약에서 단 한번 사용된 단어이다. 교수님 말씀대로 ‘자나’의 오역이 해석상 오해를 낳은 측면이 있다. Holladay 사전에서 이 단어는 ‘기분 나쁨을 느낀다’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녀가 행음했다고 곧바로 해석한 여러 성경 번역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고 ‘그녀가 화가 나서’ 정도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자나’의 명사형인 ‘지노님’의 쓰임새를 살펴 보면 ‘그녀가 행음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창세기 38:24에 쓰인 ‘지노님’은 ‘자나’의 명사형인데 ‘음행’이라는 뜻으로 꽤 자주 쓰인 단어이다(왕하 9:22, 겔 23:11, 29, 호 1:2, 2:4, 6 4:12, 5:4, 훔 3:4).

 

또 한 가지는 ‘야다’에 관한 것이다. 19:22에 나타난 ‘야다’에 관한 해석상의 어려움은 동감한다. 그러나 근접 본문에서 쓰인 ‘야다’의 용례를 살펴보면 이 문장 내에서 ‘야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즉 19:25에서 무리들이 말을 듣지 않고 밤새도록 욕보이면서 여인을 ‘야다’했다고 언급하는 대목을 보면 이 문장 내에서 쓰인 ‘야다’가 강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본문이 동성애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다만 본문 속에 나타난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의 동기와 그 결과가 부족 간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는 사사기 기자의 기록은,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면 창작이든 간에, 매우 설득력이 있는 담화임에 틀림없다. 아직 정치적 역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에 앞으로의 강의를 통해 이 부분을 보충하고 싶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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