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프로그램 리뷰] <소수자는 ‘고난의 담지자’이며 ‘역사의 주체’인가? : 오늘의 자리에서 오클로스론 되묻기> 리뷰(정혜진)

관리자
2022-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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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는 ‘고난의 담지자’이며 ‘역사의 주체’인가? : 오늘의 자리에서 오클로스론 되묻기> 리뷰



정혜진(제3시대 연구원)


 

제238차 월례포럼은 유영상 연구원의 <소수자는 ‘고난의 담지자’이며 ‘역사의 주체’인가? : 오늘의 자리에서 오클로스론 되묻기> 발표로 진행되었다. 발표자는 민중신학에서 ‘오클로스’ 자체가 사회적 소수자를 재현할 수 있는 어휘임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소수자가 ‘고난의 담지자’이자 ‘역사의 주체’는 아니지 않은가 질문함으로써, 오클로스론에서 소수자를 ‘의미화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그리고 이로써 민중신학의 오클로스론(“오클로스는 ‘고난의 담지자’이며 ‘역사의 주체’이다”)의 의미론적 갱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은 민중신학에서 ‘고난’과 ‘역사’의 문제가 모두 ‘민족’을 매개로 하여 사유되었다는 사실을 문제시함으로써, 오클로스론에 내재한 민족적 전망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이는 “비민족”을 타자화함으로써 구성되는 민족이라는 관념의 “포섭적 경향”이 갖는 획일적 폭력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으며, 민중신학에서 여성을 민족 국가의 사명을 지닌 모성적 존재로 혹은 디아스포라를 민족 통일의 사명을 띤 존재로 의미화하곤 했던 경향이 그 사례로 제시되었다.

 

발표자가 다룬 문제는 사회적 소수자에 관한 고민을 안고 민중신학을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충분히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을 만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이후 흥미로운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먼저 민중신학에서 오클로스론을 구성하는 두 가지 명제인 ‘오클로스는 고난의 담지자이다.’와 ‘오클로스는 역사의 주체이다.’에 대한 논의가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상당히 진척되었다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오클로스론의 두 명제에 대한 그간의 논의를 면밀히 파악한 후 그에 대한 비판이나 새로운 관점의 제시를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지적이었다. 그러한 지적에 따르면, ‘고난의 담지자’와 ‘역사의 주체’라는 두 항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될 수 있는가(‘고난의 담지자는 역사의 주체인가’), 두 항 모두를 긍정해야만 하는가, 둘 중 하나를 부정하고 나머지 하나를 긍정할 수 있는가 등의 문제가 이미 논의된 바 있다.

 

이는 역시 ‘고난’과 ‘역사’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된다. 민중신학에서의 오클로스론의 역사관이 ‘역사비평적 관점’이 아닌 ‘신학적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출된 바 있고, 고난의 의미화에 대한 평가(고난은 민족적 희생을 함의하는 개념이라는 점에서 부정될 수 있다는 입장 등)가 이루어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중신학의 오클로스론에서 ‘역사의 주체’는 민족주의적 의미로서의 닫힌 관념이 아니라 ‘정치적 주체’의 다른 표현이자 ‘반역사적/비역사적/사건적’ 전망을 표현하는 신학적이고 역설적인 명제로 독해해야 한다는 것이 그간 진행돼온 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족 개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 또한 이야기되었다. 민족주의와 민족을 구분할 필요성, 민족의 의미를 ‘비민족에 대한 타자화’, ‘획일적 폭력으로서의 포섭’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가의 문제, 오늘의 상황에서 민족 관념을 가시화하는 다양한 결들(통일, 난민, 제국의 문제 등)을 섬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점, 민족을 매개로 했던 1970~80년대 오클로스론의 전망을 부정하기보다는 오늘의 조건에서 적극적으로 변주/번역/비판해볼 수도 있겠다는 의견 등이 제기됐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민중신학에서 안병무의 다양한 얼굴, 즉 민족주의자/민중적 민족주의자/오클로스적 민중론자로서의 안병무의 얼굴들이 충돌‧긴장한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 또한 제시되었다. 발표자의 진솔한 문제의식 덕분에 흥미로운 소통이 오갔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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