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프로그램 리뷰] 제237차 월례포럼 <'민중' 효과> 리뷰(김현주)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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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7차 월례포럼 <'민중' 효과> 리뷰

 

김현주(대전보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우선 코로나 덕분에 지방에서도 비대면으로 포럼에 참석할 수 있어 감사했다. 민중신학과 거리가 먼 나로서는 긴 시간 유학한 황용연 박사의 모습을 괄목상대하고픈 마음이 컸다. 강의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나와 같은 문외한도 이해할 만큼 쉬웠으며, 강의를 마친 후 다른 논문을 들여다보니 전과 달리 뜻이 들여다보일 만큼 눈을 띄우는 힘이 있었다. 강의를 들은 후 이전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으니 상당한 배움이 있었던 것 같다. 논문에 담긴 복잡한 논의를 연구자의 정리된 언어로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민중’이 누구냐는 질문을 학생운동권 시절에 자주 물었지만 뾰족한 답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대개 ‘그들’이라는 대상으로 여기면서도 민중이라는 말을 놓지는 못했으니, 현실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는 괴리에 주목한 연구자의 문제의식에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었다. 연구자는 이 괴리를 드러내기 위하여 박권일의 ‘표준시민’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표준시민은 수도권에서 나타나는 중산층 지향 대중 현상을 가리킨다. 표준시민은 능력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인정투쟁을 수행한다. 이때 무능력자와 무자격자가 마땅하고 상식적이며 폭력적인 방식으로 배제되고 마는데, 바로 여기에 민중이라는 용어를 호출하자는 것이다. 1970년 전태일 사건으로 사람들이 눈을 뜨고 민중에 주목하였던 것처럼, 무능력자와 무자격자가 무자비하게 배제되는 사건을 지금 증언하기 위하여 민중이라는 안경을 쓰자는 것이다. 제 눈에 안경이 같은 사건을 보여주지도 않을뿐더러 같은 증언을 요청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이주노동자, 난민, 여성, 성 소수자, 하층 노동자만 아니라, 범죄자, 채용시험 탈락자, 대학의 제2캠퍼스 재학생조차 이 무능력자 또는 무자격자로 배제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배제하는 칼금은 우리들 사이 어디에나 있다.


여기서 바울의 칭의론이 비유대인 그리스도인에 대한 배제를 해소하기 위한 투쟁담론이라는 김창락의 민중신학적 해석이 흥미롭게 등장한다. 로마 식민지 도시의 디아스포라 교회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율법을 근거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배제하고자 했다. 이 긴장관계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해석할 수는 없지만 표준시민과 무자격자로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바울은 교회의 경계를 율법에서 믿음으로 옮김으로써, 무자격자인 이방인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이때 바울이 가졌던 남다른 눈이 바로 민중이라는 용어 작용과 유사하다는 주장이다.


연구자는 안경을 쓰라고 하지 않고 안경 씌움을 당하라고 말한다. 나는 그가 바디우 식의 사건을 대망하고 있다고 느꼈다. 시각이 바뀌면 시야가 달라진다. 민중이라는 안경은 경계 밖에 있는 사람과 경계 안에 있는 사람 모두가 경계를 바라보게 할 것이다. 나-남을 알아보는 시력이 배제의 도구가 되어서는 우리가 직면한 시대적·사회적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 우리의 증언은 우리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인식하고 해석하고 정의하여 마침내 경계를 옮기고 허무는 일이 될 것이다.


성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몸은 경계를 옮기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성벽이라는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담을 허물고 지성소 안에서 사람과 신을 가르던 휘장을 찢었다. 우리들도 지금 여기에서 우리를 조각내는 헝클어진 경계를 쳐다보고 경계 너머에 있는 타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이를 받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증언할 수 있다.


강의 후 질의에 답하며 연구자는 ‘경계를 허무는 사건의 양면성’을 생각하는 민중신학자의 조심스러움을 덧붙였다. 문득 여리고성이 무너진 사건을 생각했다. 성이 다른 방향으로 무너졌다면 성을 돌던 백성들의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현실에서는 경계를 움직이고자 하는 힘의 의도대로 결과가 펼쳐지지 않을 때도 많다. 이제 와서 우리가 촛불을 후회하겠는가? 사건은 영원으로부터 현실로 온다. 학자의 정교한 시각과 신중한 계산, 신학자다운 초월적 관점을 느끼며 이제는 다음 연구 결과물을 기다리겠다. 


황용연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은 배제된 사람들이 자기식의 언어를 갖게 하자는 목적으로 글쓰기 강좌를 계획하고 있다고 하였다. 글쓰기는 두려운 일이다. 생각과 마음을 박제하는 결과물이 무겁고 의도와 다르게 적힌 내 글은 낯설기도 하다. 그러나 어려운 논문을 쉽게 설명하는 황용연 박사라면 때로는 표준시민인 듯싶다가 졸지에 무자격자 또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마는 우리들이 무겁거나 낯설지 않은 내 목소리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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