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자기효능감과 그 자리를 다시 생각하기

구슬아(문화연구자)
이것은 사유와 실천의 독특한 장이자 관철의 절차로서의 정치 그리고 이에 개입하는 역량에 대한 주관적 지각으로서의 자기효능감의 관계를 살피고 더 나아가 이른바 ‘정치적 자기효능감’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기 위한 글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본고가 정치적 자기효능감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일단 자기효능감이 상황 인지 및 대응의 가능성에 관한 기대-신념이며 기술의 보유 여부와 실천의 역량을 포괄한다는 기본적 정의의 얼개는 심리학 분과의 그것을 준용한다. 그리고 자기효능감이 작동하는 영역을 정치적 절차에 한정하는 가운데 그 구성에 관여하는 요소들 중 어떤 사안을 문제적이라 규정한 후 견해를 밝히는 ‘발화’, 이에 더해 발화를 포함한 여러 층위의 실천에 있어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권리를 향한 관심’, 마지막으로 발화와 권리의 일차적 출처이자 거처가 되는 크고 작은 ‘정체성의 범주들’의 셋을 주요한 것으로 상정한다.
요 근래 교환 및 연결을 포함한 사회 기능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 공간으로 옮아가면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상으로 굳어졌으며 여러 정치 결사들 또한 새롭게 등장한 공간의 활용 전략을 계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새로운 공간의 질서는 말들의 연쇄를 유도하는 데 특화되어있어 누구나가, 정치적 사안을 포함한 모든 문제에 대해,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에 부합하는 관계성이 새로이 빚어진 결과로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가로질러 권리를 향한 관심 및 정체성 범주에 관해 같은 관점 및 감각을 공유하는 타인과의 접속을 도모하는 일 역시 수월 해 졌다. 바꿔 말하자면 자기효능감의 구성에 관여하는 요건들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함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한 자유와 무한성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조건의 풍요는 곧바로 정치적 자기효능감의 강화로 이어질까. 아니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과의 거리두기 경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정치는 충분히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하이퍼링크, 특정 대상의 노출 알고리즘, 공유와 좋아요 단추 등으로써 실현되는 디지털 공간의 특성, 그러니까 이동 및 연결의 자유와 무한성이 기본적으로 그것이 실어 나르는 대상의 추상적 속성에, 그 가운데에서도 상업적 고려에 따라 판별되는 교환의 가능성에 의지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이목을 끌어 더 많은 말들의 연쇄를 생성하는 데에는 유용한 논점이 과대시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연결의 무한한 자유가 보통 자신과 비슷하기에 불편하지 않은 상대와 연결될 자유로서 실현된다는 것인데, 극단적인 경우 같은 견해를 가져 눈과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 이들과의 접속점만을 수백, 수천 개까지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온라인의 담론 지형에서 웹이 재현하는 정세와 현실의 정치 현상 사이의 간극이나 확증편향의 증후들이 심심치 않게 관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동시에 무한한 공간의 본질적 질서는 ‘소비자의 자기효능감’이나 ‘셀러브리티의 자기효능감’을 강화하는 데 특화되어있다.
반면 정치적 자기효능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성과 강화에 한계와 불가능성에 관한 감각과 인식을 요구한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여러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권리와 의무의 경계선들, 선택과 판단에 따르는 책임의 항시적 의식, 전략과 자원의 제한,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 타인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숙의, 설득과 협상 그리고 실력의 행사까지 포함하는 정치적 절차에는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난점들이 내재하며 변혁을 겨냥하는 대부분의 시도는 완전한 실패 혹은 일단의 실패 그도 아니면 큰 성공을 동반한 실패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계와 불가능성을 대면하고 인정하는 것은 회의주의나 패배주의로의 경도와는 다르다. 한계와 불가능성을 대면하고 인정한 다음에는 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계속 거듭할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지향이 따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지향은 자기와 타인 그리고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불화를 적절히 다루고 또 생산성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믿음의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전보다 유효한 담론과 전략이 도출되고 다음 시도에는 더 나은 실패가 따르기를 기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공간 및 이에 관여하는 기술들이 그 어떤 정치적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수단은 활용하기 나름이고 실제로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안건을 다루는 회의나 선전 업무 등 몇몇 범주에 대해서는 첨단의 공간성이 효율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반면 장기 지속의 개입과 헌신을 요구하는 정치적 절차 전체는 신속함과 효율, 동질성들의 규합만큼이나 그와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가치들을 자신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요구한다. 이는 정치라는 절차가 현실을 재현하고 그 변화를 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다. 결국 자기효능감과 정치의 관계를 더 잘 생각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가능성의 무한을 제시하기보다 한계를 부과하는 물질적 심급에 오히려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정치 영역에 새로운 기치를 기입하기 위한 모든 기획은, 심지어 가장 급진적 단계의 혁명적 정치의 기획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곳의 객관적 세계를 재료이자 무대 그리고 출발점으로 삼는다. 덧붙여 해체와 재구성을 동반하는 변화의 정치에 헌신할 때, 그러한 헌신을 결정한 이 역시 공고하던 기존의 자신이 훼손되고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사유와 실천을 평가할 때 그러하듯, 자기효능감을 생각함에도 권리와 정체성 범주를 아우르는 ‘자기’ 및 ‘효능감’과 관련하여 스스로가 구성한 주관적 기대-신념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객관적 실체로서의 세계에 대해 어떤 효과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정치적 자기효능감과 그 자리를 다시 생각하기
구슬아(문화연구자)
이것은 사유와 실천의 독특한 장이자 관철의 절차로서의 정치 그리고 이에 개입하는 역량에 대한 주관적 지각으로서의 자기효능감의 관계를 살피고 더 나아가 이른바 ‘정치적 자기효능감’의 자리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제시하기 위한 글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본고가 정치적 자기효능감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간략히 밝히고자 한다. 일단 자기효능감이 상황 인지 및 대응의 가능성에 관한 기대-신념이며 기술의 보유 여부와 실천의 역량을 포괄한다는 기본적 정의의 얼개는 심리학 분과의 그것을 준용한다. 그리고 자기효능감이 작동하는 영역을 정치적 절차에 한정하는 가운데 그 구성에 관여하는 요소들 중 어떤 사안을 문제적이라 규정한 후 견해를 밝히는 ‘발화’, 이에 더해 발화를 포함한 여러 층위의 실천에 있어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하는 ‘권리를 향한 관심’, 마지막으로 발화와 권리의 일차적 출처이자 거처가 되는 크고 작은 ‘정체성의 범주들’의 셋을 주요한 것으로 상정한다.
요 근래 교환 및 연결을 포함한 사회 기능의 상당 부분이 디지털 공간으로 옮아가면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일상으로 굳어졌으며 여러 정치 결사들 또한 새롭게 등장한 공간의 활용 전략을 계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새로운 공간의 질서는 말들의 연쇄를 유도하는 데 특화되어있어 누구나가, 정치적 사안을 포함한 모든 문제에 대해,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만으로도 각자의 견해를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에 부합하는 관계성이 새로이 빚어진 결과로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가로질러 권리를 향한 관심 및 정체성 범주에 관해 같은 관점 및 감각을 공유하는 타인과의 접속을 도모하는 일 역시 수월 해 졌다. 바꿔 말하자면 자기효능감의 구성에 관여하는 요건들을 확보하고 이를 활용함에 있어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한 자유와 무한성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조건의 풍요는 곧바로 정치적 자기효능감의 강화로 이어질까. 아니면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질적인 것들과의 거리두기 경향이 지배적인 상황에서도 정치는 충분히 잘 작동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다음의 사실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하이퍼링크, 특정 대상의 노출 알고리즘, 공유와 좋아요 단추 등으로써 실현되는 디지털 공간의 특성, 그러니까 이동 및 연결의 자유와 무한성이 기본적으로 그것이 실어 나르는 대상의 추상적 속성에, 그 가운데에서도 상업적 고려에 따라 판별되는 교환의 가능성에 의지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무의미하지만 이목을 끌어 더 많은 말들의 연쇄를 생성하는 데에는 유용한 논점이 과대시되거나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연결의 무한한 자유가 보통 자신과 비슷하기에 불편하지 않은 상대와 연결될 자유로서 실현된다는 것인데, 극단적인 경우 같은 견해를 가져 눈과 마음에 거슬리지 않는 이들과의 접속점만을 수백, 수천 개까지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온라인의 담론 지형에서 웹이 재현하는 정세와 현실의 정치 현상 사이의 간극이나 확증편향의 증후들이 심심치 않게 관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처럼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동시에 무한한 공간의 본질적 질서는 ‘소비자의 자기효능감’이나 ‘셀러브리티의 자기효능감’을 강화하는 데 특화되어있다.
반면 정치적 자기효능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구성과 강화에 한계와 불가능성에 관한 감각과 인식을 요구한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점하고 있는 여러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권리와 의무의 경계선들, 선택과 판단에 따르는 책임의 항시적 의식, 전략과 자원의 제한, 좀처럼 설득되지 않는 타인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숙의, 설득과 협상 그리고 실력의 행사까지 포함하는 정치적 절차에는 필연적으로 이와 같은 난점들이 내재하며 변혁을 겨냥하는 대부분의 시도는 완전한 실패 혹은 일단의 실패 그도 아니면 큰 성공을 동반한 실패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계와 불가능성을 대면하고 인정하는 것은 회의주의나 패배주의로의 경도와는 다르다. 한계와 불가능성을 대면하고 인정한 다음에는 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을 계속 거듭할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지향이 따르기 때문이며 이러한 지향은 자기와 타인 그리고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와 불화를 적절히 다루고 또 생산성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믿음의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전보다 유효한 담론과 전략이 도출되고 다음 시도에는 더 나은 실패가 따르기를 기대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공간 및 이에 관여하는 기술들이 그 어떤 정치적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수단은 활용하기 나름이고 실제로 신속한 의사 결정이 필요한 안건을 다루는 회의나 선전 업무 등 몇몇 범주에 대해서는 첨단의 공간성이 효율을 보장해 주기도 한다. 반면 장기 지속의 개입과 헌신을 요구하는 정치적 절차 전체는 신속함과 효율, 동질성들의 규합만큼이나 그와 대립하는 관계에 있는 가치들을 자신의 필수적인 조건으로서 요구한다. 이는 정치라는 절차가 현실을 재현하고 그 변화를 꾀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이상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다. 결국 자기효능감과 정치의 관계를 더 잘 생각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가능성의 무한을 제시하기보다 한계를 부과하는 물질적 심급에 오히려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정치 영역에 새로운 기치를 기입하기 위한 모든 기획은, 심지어 가장 급진적 단계의 혁명적 정치의 기획이라 하더라도 지금 이곳의 객관적 세계를 재료이자 무대 그리고 출발점으로 삼는다. 덧붙여 해체와 재구성을 동반하는 변화의 정치에 헌신할 때, 그러한 헌신을 결정한 이 역시 공고하던 기존의 자신이 훼손되고 새롭게 빚어지는 과정을 겪는다.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사유와 실천을 평가할 때 그러하듯, 자기효능감을 생각함에도 권리와 정체성 범주를 아우르는 ‘자기’ 및 ‘효능감’과 관련하여 스스로가 구성한 주관적 기대-신념이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과 객관적 실체로서의 세계에 대해 어떤 효과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