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 마려운 씨부리는 사람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생각하다

황용연(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1.
제목에 갑자기 웬 제갈량이나면...
삼국지연의 후반부에 제갈량이 북벌을 나갔을 때 위나라 고위 관리와 논쟁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위나라 쪽은 이미 천하를 위나라가 다 장악했으니 부질없는 저항 더 하지 말고 투항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제갈량은 거기에 맞서서 그 천하 장악이라는 게 한나라의 신하인 주제에 역적질을 한 거나 다름없다고 반박을 하죠. 그런데 그 논쟁의 끝에서 제갈량의 반박을 견디지 못한 위나라 고위 관리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죽어 버립니다.
물론 이건 삼국지연의라는 역사소설의 이야기고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제갈량과 위나라 고위층이 저 비슷한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한 건 맞고 그 논쟁 참가자 중에 소설 안에서 '죽어 버린' 사람도 있긴 있었습니다만.
반인권적인 주장이나 우파적인 주장을 보고 속 터질 때 가끔씩 저 제갈량의 이야기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이게 상당히 악마적인 생각이라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만, 그걸 알고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착한 인간은 못 되나 봅니다.
2.
공부 노동자라는 입장에서 사회적 효능감이란 건 참 복잡한 감정이 드는 말 아닐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 '노동자'라는 입장에서라면 더더욱이나 사회적 효능감이 있기를 바랄 텐데, 그런 바람이 간절할수록 사회적 효능감이라는 걸 바라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다 보면 저처럼 착한 인간이 못 되는 사람은 앞에서 말했듯이 제갈량 마려울 경지까지 다다르는 경우도 생기겠고요.
어디선가 우연히 이런 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간에 퍼져 있는 틀에 박힌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책 하나로 그런 통념을 뒤엎는 건 가능하지 않다. 나는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시작할 때 세상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는 그 책을 찾을 것이다“
슐로모 산드라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가 한 말이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데 『유대인,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니까 저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겠구나 싶지요. 분명 거짓말을 폭로하려고 책을 썼겠는데 그걸 썼다고 거짓말이 뒤엎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쓴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입맛이 많이 쓸 테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냉정한 것일 터입니다. 그 냉정함이 그 다음 문장으로도 이어지죠.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니까요. 이렇게 보면 더더욱 그 사회적 효능감이라는 거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슐로모 산드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 하지만, 반대로 세상이 바뀌면 사람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는 그 책을 찾을 것이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생각나는 성서의 비유가 있었어요.
3.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에게 금방 먹혀 버리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가 깊게 들어가지 못해 금방 말라 버리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싹이 나긴 났는데 가시덤불에 막혀서 더 이상 못 자랐다고 하죠. 물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서 결실을 30배, 60배, 100배로 봤다고는 합니다만.
보통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그러니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같은 그런 나쁜 상태의 신앙을 갖지 말고 30배 60배 100배 싹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상태의 신앙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라고 하지요. 사실 성서 자체에도 그런 식으로 풀이를 붙여 놓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비유를 가지고 더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런 뜻인가 싶단 말이죠. 씨앗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런 데에 안 떨어지도록 조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조심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오는 걸 보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걸 이 농부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씨뿌리는 농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구나 싶은 거죠. 씨를 뿌리긴 뿌렸는데 그게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에게 먹히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돌밭에 떨어져서 금방 말라 버리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더 이상 못 자라는 것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러나 어딘가에는 좋은 밭이 있어서 거기서는 소출이 날 거라는 것. 그래서 어려운 중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까 앞에서 본 슐로모 산드의 말하고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 거예요. 책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즉 그 책에 담긴 말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이 바뀐다면 바로 그 책에 담긴 말을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라는. 세상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노릇이니 그 책에 담긴 말을 사람들이 언제 찾을 지는 기약할 수 없어도, 언제 어디선가는 그 말을 사람들이 찾을 때가 오긴 올 거라는 말이니까요.
4.
사실 공부 노동자는 책까지도 못 가고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어쨌든 책이든 글이든 결국 말을 하려는 것이겠죠. 공부 노동이 발견해 내는 말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긴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부 노동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노동이 사실 그런 말의 가능성을 넓히는 기능을 하겠지만, 공부 노동이 잘 넓힐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겁니다. 공부 노동을 비롯한 세상 모든 노동이 말의 가능성을 넓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더 넓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 사람들이 그 말과 노동과 함께 모여서 세상을 바꿔 간다는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상당히 느린 과정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때때로 제갈량이 마려워지는 저 같은 사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많이 생각하고 성질을 좀 고쳐야 할 듯 해요. 씨뿌리는 사람을 오타내면 씨부리는 사람이 되는데, 공부 노동자를 좀 격 낮은 언어로 부르면 '씨부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거 같으니까 씨부리는 사람답게 느린 과정을 살아나가야 될 것 같다 생각해 봅니다. 모든 공부 노동자. 씨부리는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 웹진 <제3시대>
제갈량 마려운 씨부리는 사람이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생각하다
황용연(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1.
제목에 갑자기 웬 제갈량이나면...
삼국지연의 후반부에 제갈량이 북벌을 나갔을 때 위나라 고위 관리와 논쟁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위나라 쪽은 이미 천하를 위나라가 다 장악했으니 부질없는 저항 더 하지 말고 투항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제갈량은 거기에 맞서서 그 천하 장악이라는 게 한나라의 신하인 주제에 역적질을 한 거나 다름없다고 반박을 하죠. 그런데 그 논쟁의 끝에서 제갈량의 반박을 견디지 못한 위나라 고위 관리가 자기 분을 못 이겨서 죽어 버립니다.
물론 이건 삼국지연의라는 역사소설의 이야기고 실제로 그런 사건은 없었습니다. 제갈량과 위나라 고위층이 저 비슷한 주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쟁을 한 건 맞고 그 논쟁 참가자 중에 소설 안에서 '죽어 버린' 사람도 있긴 있었습니다만.
반인권적인 주장이나 우파적인 주장을 보고 속 터질 때 가끔씩 저 제갈량의 이야기처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물론 이게 상당히 악마적인 생각이라는 거 모르는 거 아니지만, 그걸 알고서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저도 착한 인간은 못 되나 봅니다.
2.
공부 노동자라는 입장에서 사회적 효능감이란 건 참 복잡한 감정이 드는 말 아닐까요. 다른 것도 아니고 공부 '노동자'라는 입장에서라면 더더욱이나 사회적 효능감이 있기를 바랄 텐데, 그런 바람이 간절할수록 사회적 효능감이라는 걸 바라기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이 많이 들다 보면 저처럼 착한 인간이 못 되는 사람은 앞에서 말했듯이 제갈량 마려울 경지까지 다다르는 경우도 생기겠고요.
어디선가 우연히 이런 말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간에 퍼져 있는 틀에 박힌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책 하나로 그런 통념을 뒤엎는 건 가능하지 않다. 나는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기 시작할 때 세상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는 그 책을 찾을 것이다“
슐로모 산드라는 이스라엘의 역사학자가 한 말이랍니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데 『유대인,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니까 저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겠구나 싶지요. 분명 거짓말을 폭로하려고 책을 썼겠는데 그걸 썼다고 거짓말이 뒤엎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쓴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입맛이 많이 쓸 테고 어떻게 보면 상당히 냉정한 것일 터입니다. 그 냉정함이 그 다음 문장으로도 이어지죠. 책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니까요. 이렇게 보면 더더욱 그 사회적 효능감이라는 거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 될 것 같은데...
그런데 슐로모 산드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는 않습니다. 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 하지만, 반대로 세상이 바뀌면 사람들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말을 하는 그 책을 찾을 것이라니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생각나는 성서의 비유가 있었어요.
3.
씨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렸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에게 금방 먹혀 버리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서 뿌리가 깊게 들어가지 못해 금방 말라 버리고,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싹이 나긴 났는데 가시덤불에 막혀서 더 이상 못 자랐다고 하죠. 물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서 결실을 30배, 60배, 100배로 봤다고는 합니다만.
보통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은 그러니까 길가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같은 그런 나쁜 상태의 신앙을 갖지 말고 30배 60배 100배 싹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상태의 신앙을 가져라 이런 이야기라고 하지요. 사실 성서 자체에도 그런 식으로 풀이를 붙여 놓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비유를 가지고 더 생각해 보면 과연 그런 뜻인가 싶단 말이죠. 씨앗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면 그런 데에 안 떨어지도록 조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조심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예 안 나오는 걸 보면,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떨어지는 걸 이 농부가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니까 말입니다.
그렇다면 씨뿌리는 농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이야기는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구나 싶은 거죠. 씨를 뿌리긴 뿌렸는데 그게 길가에 떨어져서 새들에게 먹히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돌밭에 떨어져서 금방 말라 버리는 것도 감수해야 하고, 가시덤불에 떨어져서 더 이상 못 자라는 것도 감수해야 하지만... 그러나 어딘가에는 좋은 밭이 있어서 거기서는 소출이 날 거라는 것. 그래서 어려운 중에서도 내일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을 거라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까 앞에서 본 슐로모 산드의 말하고도 비슷하지 않나 싶은 거예요. 책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즉 그 책에 담긴 말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이 바뀐다면 바로 그 책에 담긴 말을 사람들이 찾게 될 것이라는. 세상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노릇이니 그 책에 담긴 말을 사람들이 언제 찾을 지는 기약할 수 없어도, 언제 어디선가는 그 말을 사람들이 찾을 때가 오긴 올 거라는 말이니까요.
4.
사실 공부 노동자는 책까지도 못 가고 글을 쓰게 되는 경우가 더 많겠지만, 어쨌든 책이든 글이든 결국 말을 하려는 것이겠죠. 공부 노동이 발견해 내는 말이 세상을 바꾸진 못하겠지만, 최소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더 넓히긴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공부 노동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노동이 사실 그런 말의 가능성을 넓히는 기능을 하겠지만, 공부 노동이 잘 넓힐 수 있는 영역이 있을 겁니다. 공부 노동을 비롯한 세상 모든 노동이 말의 가능성을 넓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이 더 넓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때, 그 사람들이 그 말과 노동과 함께 모여서 세상을 바꿔 간다는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은 상당히 느린 과정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때때로 제갈량이 마려워지는 저 같은 사람은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많이 생각하고 성질을 좀 고쳐야 할 듯 해요. 씨뿌리는 사람을 오타내면 씨부리는 사람이 되는데, 공부 노동자를 좀 격 낮은 언어로 부르면 '씨부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 거 같으니까 씨부리는 사람답게 느린 과정을 살아나가야 될 것 같다 생각해 봅니다. 모든 공부 노동자. 씨부리는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