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민중신학 다시 읽기] 안병무, 「여자가 뭐냐?」(1)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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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여자가 뭐냐?」(1)

[강연록] 한국디아코니아자매회, 1988.8



 

교회에서 여성을 곡해시켜 얘기하는데 그것이 목사 책임이냐, 전도사 책임이냐 아니면 성서자체의 이해를 잘못한 것이냐에 대해서 구약과 연결시켜 결국 예수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얘기를 좀 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가장 기초적인 것, 대개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겠기에 또 토론하면 굉장히 중요한 얘기도 나올테니까 맨처음에 창세기 얘기부터 시작하겠어요. 창세기 1장과 2장에 있는 내용인데 거기 여자문제와 남자문제, 사람문제가 다 얘기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지금까지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다고 농담처럼 반 진실처럼 그렇게 얘기해 왔고, 여자는 모르는 동안에 나는 남자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얘기를 진행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지배해 와서 기독교가 이상하게도 여성들에게 컴플렉스를 주어왔어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마음도 없고, 할라면 기분나쁘고 교회에 가면 명확한 얘기도 안해주고-. 여자는 실제로 날때부터 남자와의 관계에서 열등한가? 이것은 기본문제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서를 안가졌더라면 이런 문제가 없지 않았겠나 싶겠지만 성서만이 아니고 어디에나 여자는 남자만 못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성서만 특별히 남자육체의 일부를 끊어서 만들었다는 그것 한가지 하고, 여자는 남자가 외로우니까 혼자 있는 것이 못마땅하니까 남자의 동반자로써 여자를 만들었다-. 이것은 놀랍게도 역사를 통해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교회에서도 그랬고, 일반 인식에서도 그랬고, 남자들은 물론 그렇게 생각했고, 또 여자도 자기 자신을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해결하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자 우리 보십시다. 맨처음에 먼저 기본적인 얘기를 합시다. 구약이 갑자기 책을 쓴 게 아니고 구약이 형성될때 편집을 했습니다. 신약도 그랬지만-. 크게 보아서 4-5가지 자료가 있었습니다. 4-5가지 자료가 있던것을 마지막 사람이 편집을 해서 창세기등을 만들었습니다. 소위, 이것을 자료서라고 그럽니다. 거기서 하나는 하느님을 야훼라고 하기도 하고, 야훼기자라고도 하고 J자료라고도 하는게 있습니다. 쭉 찾아보면 성격이 뚜렷하게 달라요. 또 하나 P자료(Priest)를 들수 있는데 사제라고 하고, 그것도 다 찾아보면 분리해서 나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E자료라고 있는데 E자료는 하느님을 야훼라고 하지 않고 엘로힘, 엘로이, 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엘자 중심으로 된 자료가 따로 있어 확실히 구별할 수 있고, 학자들이 다 구별해 놓았습니다.

 

또 하나 D자료가 있는데 ( )이라고 신명기 자료가 있고, 이것은 신명기뿐아니라 여러 자료에 퍼져 있습니다.

 

크게 4가지로 나누는데 오늘은 J자료와 P자료에 대해 공부할 것입니다. J자료는 하느님을 야훼라고 부르는 자료들, P자료(Priest)는 사제들, 제사장, 제사계급 즉 제사지내는데 액센트를 둔 자료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에 사람 만들고 낙원얘기, 인간타락 얘기가 두개 있습니다. 상식이지만, 여러분 주의해서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 1장과 2장에 사람을 만드는 얘기가 둘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왜 그런가 하고 사람들이 자꾸만 알려해도 교회에서는 정확히 얘기하려고 안합니다.

 

교회에서 얘기하다가는 성서를 막 해부하면 큰일나니까 덮어두지만 창세기의 두 얘기는 자료가 다릅니다. 정확히 말하면 창세기 1장1절부터 2장4절a까지가 P자료이고, 2장4절b부터 마지막절까지가 J자료입니다. 이 두 자료가 나란히 놓여져있습니다. 편집을 이해하거나 사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J라는 한 그룹이 이해한 것이 다르고, P라는 한 그룹이 이해한 것이 다릅니다. 그것을 마지막 편집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묘하게도 P자료는 얘기하지 않고(1:1-2:4:a) J자료만 자꾸 반복해서 얘기하고 전해 내려왔습니다.(2:4:b-2:25) 누가 그랬나? 남자들이 그랬습니다. 남자들이 성서해석권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P자료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자꾸 설명을 안했습니다. J자료 속에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P자료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좀더 정확히 보면 이런겁니다. J자료와 P자료 중 어느것이 더 원래적이고, 오래된 것인가 하면 J자료가 더 오래된 것입니다. 또 하나 옆의 얘기지만 창세기에 속한겁니다. 말이 점점 더 논리적으로 될수록 늦게 된 겁니다. 무엇이나 원래 생생한 내용은 얘기체인데, 삶과 직결된 것은 얘기로 됩니다. 얘기가 삶을 구체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겁니다.

 

그런데 논리적이고 조직적이 되면 그것은 별써 2차적이 되고, 지식인들이 하는 노릇이지요. 얘기체가 삶에 더 직결되어 있습니다. 논리체는 삶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게 얘기하면 지식인일수록 삶에서 떠나서 사변하게 됩니다. 그만큼 공부를 하면 할수록 삶과 멀어집니다. 참 중요한 얘기에요. 머리로 납득이 가서 머리를 끄덕이지만, 어딘가 삶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 학문입니다. 지금 근경에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뭔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진다. 얘기체일수록 진실에 가깝습니다. 논리적으로 할수록 조직적으로 할수록 마치 그물로 물을 뜨는 것 같습니다. 고기는 잡힐지언정 물은 다 빠져 나갑니다.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얘기하면 중요한 삶은 다 빠져나간다. 이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성서는 어떤 형태인가? 논리가 아닌가? 아니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야기라는 말이 삶에서 가장 가까운 진리를 담는 그릇입니다. 지금까지 학교 교육이라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망쳤나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삶과 멀어집니다.

 

성서는 놀랍게도 희랍 철학과 비교해 보면 굉장한 얘기체를 그대로 담아두고 있습니다. 학자라는 자들이 자꾸 조직과학을 하면서 오히려 문제가 생기게 되어 사실은 제대로 파악을 못하게 됩니다. 근대인의 컴플렉스가 뭐냐면, 배운다는데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진실에서 멀어집니다. 허영심입니다. 성서는 놀랍게도 얘기체를 그대로 담고 있고, 지식인의 눈으로 보면 맞지 않는 논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서의 어디에 삶의 가치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희랍의 철학책과 비교해 보면 상대가 안될 정도로 잡소리가 많아 보이지만, 이것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왜 모순이 많으냐? 이것은 사람자체가 모순이 많기 때문입니다. 성서는 이웃 사람을 미워하지도 않고 다른 각도에서 보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 많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합리적이 아닙니다. 모순덩어리입니다. 사람도, 삶도 모순덩어리입니다. 자기도 자기를 설명 못 할 것이 가득차 있습니다. 왜, 왜이럴까? 그러나 거기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요. 당신을 합리적으로 설명해 줘도 그것이 당신은 아닙니다. 그러면 가장 나 같은 것의 내용이 여기 있구나- 하는 이것이 가장 나와 가까운 겁니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성서보는 눈인데, 지금까지 학자라는 이들의 –나도 포함되어 있지만- 말이 어려워요. 어려워지는 것이 문제인데 단순한 얘기체로 전달 할수록 진실에 가깝고, 삶에 가깝습니다. 얘기체의 언어를 우리는 민중의 언어라고 합니다. 민중의 언어!

 

지금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는 무식 했었습니다. 찬송가 3절을 제대로 다 못외우는데 우리 아버지는 유식했었습니다. 어릴때부터 아버님과 함께 한문공부를 죽어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남겨 놓은 이야기는 내게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무식한 우리 어머니가 남겨 놓은 이야기는 많아요. 날이 갈수록 살아 있어요. 우리 어머니는 삶에 대한 얘기이기때문에 내 기억에 생생히 살아있죠.

 

성서의 매력이 거기 있습니다. 지식인일수록 자꾸 멀어가고 있는데 그건 내 삶과 연관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창세설화에는 얘기체로 재미있게 전개된 J자료와 연대적으로 좀 후에 된 P자료 두 자료가 있는데 1:1-2:4절까지 창세 얘기가 쭉 되어 있습니다. 2:5절부터 창세기가 다시 시작됩니다. 어느것을 채용할 것이냐에 따라 사람 이해가 달라집니다. J자료는 2:4:b-25절까지 있는 얘기입니다. 얘기에는 하느님이 맨처음 천지를 만든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맨먼저 지상에 사람을 만들고, 사람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만듭니다. 처음에 동물들을 비롯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이것들을 다스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부 통치해 나가려니까 아담 혼자는 너무 외롭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그래서 그를 잠재우고 그의 옆구리 갈비뼈를 하나 들어내어 하와를 만들었다-라는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사람 만드는 방법은 진흙을 빚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었더니 사람이 되어 숨을 쉬었다. 그렇게 되어 있죠. 그래서 아담이 하와를 만든것을 보고 기뻐서 부른 노래가 있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그대여!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다. 지아비에게서 나왔으니 지어미라고 부르리라”-. 이것은 말의 언어 작용입니다. 지아비라는 것이 발음상의 문제인데 이슈-지아비라는 것에 대해 이슈하라고 하는 것이 여자입니다. 언어적인 유희라면 유희가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 뼈중의 뼈요, 내 살중의 살이로다 합니다. 이것은 남자들이 쭉 이용해 와서 여자는 위생학적으로도 남자하고 종속관계다라고 해석합니다. 만약에 여자가 성서해석권을 가진 역사였다면 어느것을 선택했을까요? 아마 전자를 선택했을 겁니다.

 

1장은 세상창조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J자료는 맨처음에 사람을 만들고, 세상을 만들고, 마지막에 하와를 만든것으로 되어 있는데, 1장에 있는 P자료는 세상의 모든것을 다 만들고 나서 마지막에 사람들을 만드는 순서로 바뀝니다.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다. 그리고 코에 입김을 불어 넣는다 그런말 않고 남자의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들었단 말도 없고, 하느님이 인간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들고, 하느님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만들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갈비뼈 얘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여자들이 만약 두자료 중 하나를 선택했으면 아마 P자료를 선택했을 것인데 남자들이 이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것을 강조해 와서 위생학적으로 뒤떨어진 것이라는 컴플렉스를 주었고, 여자들도 자기를 그렇게 알고 모르는 동안에 나는 열등하다라는 생각이 자기 역사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 왔습니다.

 

P자료에 의하면 남자, 여자를 함께 합해서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담이라는 말은 고유명사가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라는 말을 쓰때는 남자와 여자를 포함한 것을 인간이라고 합니다. 복수입니다. 집단명사입니다. 아담이라는 말은-. 여자 뺀 남자만 사람이 아니고, 남자 뺀 여자만 사람 아니고,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고, 그것이 인간입니다. 남자가 우위이거나 여자가 하위이고, 거꾸로도 아니고 동등한 자격을 만든겁니다.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가? 문제가 있지요. 성서에 쓰여 있는건데 어떻게 할것인가? 둘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도 없고, 애매하게 자기 태도를 결정 못합니다. 그런데 이 성서 내용에 여자라면 어떻게 평가되나 하면 특별히 J기자의 얘기속에는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에서 만들어진 여자가 범죄하는데 선구역할을 하게 합니다. 언제든지 죄짓는덴 여자를 등장시킵니다. 그때 사회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말썽이고, 문제이다. 우리 어머니때까지도 ‘계집애가 먼저 꼬리친다’고 여자들이 여자들을 그렇게 평가해요. 그런 인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에서도 모든 것이 잘못되는 건 역시 여자가 문제다라는 이 일반 생활에 젖어 있는 얘기가 이렇게 얘기형태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자가 범죄의 원인이다.

 

남자를 향해 하는 말도 그랬습니다. 여자를 주의해가, 여자는 요물이다든지-. 그것이 현재까지도 일반에게 잠재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동안에 여자도 그런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는 경향이죠.

 

J자료를 기록한 때나 지금이나 같은 놀라운 인식들이 세계에 다 있습니다. 서구에도 여자들이 유혹자들이어서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게 하는 유혹자로 등장하죠.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한 책임자는 여자라고 그렇게 취급하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룻의 아내가 소돔과 고모라에서 튀어 나오면서 절대 뒤돌아보면 안된다는 것을 돌아본 것도 여자! 여자가 범죄를 일으킨 것이 무수히 많습니다. 구약에서 여자가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하는 ‘관’들이 꾸준히 있었습니다. 여자는 유혹자라는 인식이 언제든지 깔려 있습니다. 그러면 여자들은 뭐할건가? 여자는 생식본능의 심볼로 되어 있습니다. 자손을 계승하는 역할-. 그것이 여자 역할입니다. 쉽게 말하면 아니 낳는 것, 집안을 계승 시키는 것, 씨족을 계승시키는 것, 그 임무를 담당하는게 여자입니다. 성서에 그것이 차 있습니다. 여자! 너 할일이 무엇이냐? 너는 그 집안의 씨족을 늘리는 역할을 하는거다-. 소박한 얘기로 룻의 아내가 아까는 범죄자의 상징처럼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 다음에 노아의 딸들하고 아버지하고 피난가서 부인이 없어서 아버지를 취하게 하고 맏딸, 둘째딸이 교대로 들어가서 아버지를 유혹해서 아기를 뱁니다. 그게 잘못한게 아닙니다. 아주 잘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왜? 씨족을 늘리기 위해서 의무로 하는 겁니다. 무슨 정념에서 하는게 아니라 씨족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지 하는 사명감에서 하는 겁니다. 범죄를 하게 한 장본인과 씨족을 계승해야 하는 역할-. 여자들은 이 밑에서 얼마나 수난 당했는지-. 세계가 다 그렇고 동양뿐 아니라 서구도 현재까지 남자낳기 바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기본적으로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씨받이라는 비통한 얘기도 있고-.

 

룻의 얘기! 그건 슬픈 얘기입니다. 성서에만 아니고 다른데도 다 있는데 어디서나 여자는 씨받이이다. 그걸 못하는 여자는 아무 가치 없다. 물론 부부관계에서 여자의 제일 중요한 것은 그것입니다. 그다음 세번째 플러스가 여자는 노동력으로 이용하고 있고 그래서 일부다처제라는 것이 합법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중동 일대의 일부다처제가 반드시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고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한 노예제도의 변태형태입니다. 재산 수준이 높으면 그만큼 더 많이 아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랍계통에서 같은 샘족 계통인 모압계통에서 4명까지 정식 아내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노동력으로 받아들이고, 재산 목록에 들어갑니다. 노동력과 씨족을 계승하는 것과-. 그것이 여자가 하는 일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렇게 여자를 천대해야 하니까 자연히 ‘너는 갈비뼈에서 나왔다’를 자꾸 내세울 밖에-. 그래야 말이 되니까. 1:1로 하면 말이 안되니까 이걸 그냥 강조했는데 구약때만 아니고 기독교가 내려오면서 쭉 강조했어요. 지금도 여자가 고분고분 말 잘듣게 하려면, 이걸 자꾸 해석해야 좋지요.

 

하느님이 태초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고, 그걸 사람이라고 했다. 이 해석은 안해왔어요.

 

그러면 룻기 1:1-1:7-13절을 읽으면 참 재미 있습니다. 나오미가 며느리에게 위안하는 말은 결국 너는 씨받이라고 하는 말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 두 해석이 있는데 얘기는 자꾸 한쪽으로 몰려갔습니다. 여자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일관되어 내려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건가? 성서니까 어느거나 다 좋다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하옇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성서니까 버릴수도 없다는 어정쩡한 입장이 아니고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는 선택 했습니다. 어느것을 선택했습니까? P를 선택했습니다. 처음 얘기를 선택했지 후의 얘기 선택 안했습니다. 이혼에 대한 얘기를 물을때 예수가 한 얘기 속에서 예수는 J자료가 아니고 P자료를 선택했습니다. 마가복음이 원래 자료라고 전제하고 이혼해도 좋으냐는 질문에 이혼해서는 안되나는 얘기를 하는데 10:6절에 “그런데 천지창조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이 얘기 이상 더 없습니다. 남자를 만들고 그 갈비뼈에서 여자를 만든게 아니고 예수는 분명히 P자료를 선택했습니다. 여자와 남자를 동등하게 만들었다.-

 

두 몸이 엄격하게 1:1의 인격을 하나로 합했으니까 사람이 나눌 권리가 없다. 하나 속에 둘이 들어간게 아니고 엄연히 둘입니다. 인격과 인격의 관계, 이것 때문에 결혼 문제에 말썽이 많지만-. 얘기는 의식적으로 두 자료중에서 P자료를 하나 선택했다는 겁니다. 남자와 여자를 본래 꼭 같이 하느님이 창조했다. 여자를 뺀 남자, 남자를 뺀 여자만 인간이 아니고 남녀가 공히 함께 있는 거기- 그것이 인간이다. 예수는 오랜 전통, 남자 위주의 모든 전통을 RO고 단안을 내리고, 분명하게 남자나 여자나 꼭 같다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 전제 밑에서 신약이라는 것이 새롭게 전개됩니다.

 

오늘은 한여자를 중심으로 얘기해 보겠어요. 예수 개인이 뭘 했다는 시각에서, 예수운동이 어떻게 전개돼 나갔나를 생각하면 본문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두번째는, 근경에 제가 성서를 보는 눈입니다. 말씀이 먼저 있는 것이 아니고, 사건이 먼저 일어났다.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사건에 대해서 그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데서 말이 생깁니다. 언제든지 사건이 먼저 일어난다. 왜? 하고 묻기 전에 사건이 일어난다. 보통 우리 기독교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런 생각때문에 말씀 말씀만 자꾸 강조하다 보니까 설교만 중심이 되고 기독교가 말의 종교가 되고 말았어요. 원래는 사건이 먼저 있었습니다. 사건은 행동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삶은 사건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건입니다. 주위에서나 여러분 마음 가운데에서도 성서의 말씀 가운데에서도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증거할 것인가 말이라는게 그 다음에 따릅니다. 원래, 사건을 생각하면 행동이 앞섭니다. 사건을 막거나 반대하거나 간에 행동이 따릅니다. 말씀이 먼저 있었다 하는 생각에 교회는 말만 있고, 행동이 없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 두번째 가장 중요한 겁니다.

 

다음에 세번째가 성서에서 무엇을 보든지간에 예수가 혼자 한것이 아닙니다. 또 어느누가 혼자 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려운 말로 사람은 관계적 존재라고 합니다. 사건도 혼자 되지 않습니다. 말도 엄밀한 의미에서, 혼자하는게 아닙니다. 전에는 ‘예수가 이랬다, 이랬다’하는 것만 관심했고, 예수가 ‘누구와 더불어’라는 것엔 별로 관심 안했습니다. 예수가 혼자였으면 아무일도 못했을지도 몰라요. 대상이 없으니까요. 예수는 누구와 더불었나?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도 혼자가 아니고, 관계적 존재입니다. 관계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하는 겁니다.

 

예수는 고향에 갔다.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기적을 행할 수 없었다. 마가복음에는 ‘행할 수 없었다(Can not)’로 쓰고 있습니다. 불가능해요. 상대방이 응하지 않으면 안돼요.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예수도 어쩔수 없습니다. 모든것을 볼 때 관계에서 봐요. 성서의 모든 일도 관계에서 ‘예수는 이렇다’ 이것만 보면 길이 자꾸 막히는데 관계에서 보면 예수를 보는 눈이 훨씬 밝아집니다. 가령, 예수에게는 진짜 나타나지 않지만 예수 주변에 있는 사람이 예수에 대한 행동을 보고, 예수에게 향한 마음만 보고, 우리는 예수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못봤는데 그 사람과 깊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한 태도를 보니까 그 사람이 가히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수 이름만 있는 것을 추적해 왔는데 예수와 관계있는 사람들이 예수에게 향한 심정을 보고 아! 예수란 분이 이런 분이었구나, 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어요. 새로운 시작입니다. 한 여자를 놓고 예수를 보는 것은 예수만 보는게 아니고, 예수의 운동을 보는 겁니다. 예를들면 내가 A라는 사람을 만나서 보면은 아무 희망도 느낄수 없고, 절망만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틀렸다든지 재간도, 용기도, 힘도 없도, 상당히 절망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가령 잔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 죽이는 것을 파리잡듯 무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달라집니다. 본래 사람이 그게 아닙니다. A라는 사람과 만날 때에는 이럴수 있고 놀랍게도 B라는 사람과 만나면 절대 달라집니다. 변모됩니다. 누구와 어떤 관계를 가지냐에 따라서 그 사람은 달라집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지적을 보는게 아니고, 관계적으로 보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망적이어서 사람에게 실망하지만, 관계에 따라서는 사람이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수와의 관계도 예수가 혼자 뭘했다라고 예수만 보는게 아니고, 예수와의 관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보는 겁니다. 이것은 운동입니다. 운동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민중이라는 것을, 제창해서 세계적으로 뻗쳐나간 것이 ‘예수만’ 보고 오던 서구적 눈에서 말고 이름도 없는 예수 주변을 쫓아다녔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수를 보기 시작한 것 뿐입니다. 이름없는 무리들이다-이렇게 불렀는데 예수가 가는 곳마다 주변에 이름없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우린 보통, 생각할 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한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서 초상화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 다른 것은 모두 배경으로 하는 것처럼 예수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예수주변을 예수 초상화의 배후색 정도로 보았고, 무시해 버렸습니다. 그런것이 아니고, 그들이 있어서 예수가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눈으로 이름없는 그들을 보고 그들의 눈으로 예수를 보고, 예수와 그들과의 관계를 보게 되니까 전혀 딴 사건이 보였습니다. 그 예수의 주변에 인물들을 클로즈업시키니까 예수의 얼굴도 달라지고, 이름없는 그들의 힘이 굉장히 큰 것을 발견합니다. 제가 성서를 새롭게 보기 시작한 것이 그것입니다. 오늘도 예수와 한 여인과의 얘기를 추적하면서 그 여인 하나로 봐선 안되고, 그 여인에게서 비친 그 예수, 예수 개인이 아니라 그 여인을 통해서 예수에게 일어나는 운동, 또 그 여인과 예수와의 만남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예수가 어떻게 했다를 감격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운동이 어떻게 전개됐던가, 무슨 사건이 일어났나-이렇게 보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것만 제대로 심어주시면 모든 것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또 자기를 재는 눈도 달라질것이고, 남을 보는 눈도 달라질 겁니다. 거기에서 예수 개인은 전능하신 분이란 생각도 버리고, 하지말고, 예수가 누구들과 만났기 때문에 그런 일들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아야 하고 거꾸로 저 많은 민중들이 놀라운 일들을 했는데 예수 주변을 싸고 있는 그들이 자기들이 한것이 아니고, 예수와 만났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들입니다. 하나 예를 들면, 예수가 눈을 고쳤다 할때 예수가 능력이 많아서 병을 고쳤다고 보는게 아닙니다. 그때 상대방 보고 하는 얘기가 ‘내가 너를 고쳤다’가 아니고,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 내가 혼자 한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함께 일으킨 사건입니다. 예수 혼자는 예수가 아닙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사람과 관계없이 혼자서 슈퍼맨처럼 한 것으로 이해해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실지로 역사적 관계의 힘에 의해서 예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기도의 대상이라는 생각밖에 안 하면 내 생활하고 늘 연결이 안돼요.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신앙만 강조했죠. 신앙이라도 믿음은 되어요. 그러나 생활과의 연결이 안되기 때문에 힘은 안되요.

 

성서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이제 그런 눈에서 예수와 여인들과의 관계를 볼겁니다. 그것도 한 여인을 중심으로 추적해 보려고 합니다. 거기서도 전에 말한 것과 연결시켜서, 관계에서 보면, 우리는 한 여인을 보면서 거기서 예수를 보고, 예수의 운동을 보고, 예수와 여인과의 만남에서 사건을 보는 겁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보다도-. 예수가 누구냐? 무엇이냐? 즉, What이 중요하지 않고 How, 무엇이 일어났나? 예수와 여인들과의 관계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났나, 무슨 운동이 일어났나 거기 시선이 모이게 되겠죠? 이점 확실히 하고, 여러분 보는 눈이 달라지길 바랍니다.

 

세가지 전제를 다시 봅시다. 하나는, 성서를 볼때 아니 성서만 아니라, 뭐든지 인물 추구가 아니고, 운동으로써 운동의 시각에서 본다. 여성 운동사에서도 어느 여자가 어떻게 했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고, 그가 잘나고 못난것이 중요하지 않고, 무슨 운동이 일어났나 그것이 중요합니다.

 

두번째는, 사건이 먼저 있는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다 그것은 다음 얘기고, 사건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결단해야 하나-. 예수도 사건이고, 예수운동도 사건이고, 역사얘기도 커다란 사건입니다.

 

세번째는, 모든것은 관계에 있어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소위 연극에 주연이 따로 없고, 엑스트라, 조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합해서 하나의 연극을 꾸미듯이 어느 하나는 비중이 크고 작은게 아닙니다. 하나라도 빼면 성립이 안됩니다. 꼭같은 비중을 갖습니다. 그러니까 성서에 나오는 예수가 주역이고, 다른것은 다 예수를 나타내기 위한 보조역을 한다 그렇게 봐선 안되고, 이 무대에 나타난 예수를 포함한 이 전체가 커다란 사건을 일으킨다 보고 절대로 비하시켜선 안됩니다. 그러면 나, 우리 자신도 예수운동, 예수사건에 공모해서 참가한 예수무대에 선 사람들, 그중의 하나라 하면 내가 하는 것이 극히 조그마한 일이라도 전체 연극을 이루는데 빠지면 절대로 안되는 역할입니다. 그러면 내가 할 역할은 무엇이냐? 오페라에서 ‘편지 받으시오’ 그 한마디 제대로 하고 나가는데 있어서 오페라가 성립되지 그거 빼면 성립 안돼요. 그러면 엑스크라가 아니고 연극을 꾸민다는 의미에선 한사람도 빠져선 안돼요. 나는 무슨 역을 하고 있나? 나는 잘난 사람들 향해서 그 빛난 얼굴들을 빛내기 위해 보조 역할이나 하다가 사라질 존재인가?

 

우리는 운동을 하는 겁니다. 예수도 우리와 더불어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겁니다. 즉, 예수운동은 하느님의 운동을 하는 겁니다. 예수의 사건을 일으키는 현재에 있어서도 우리는 예수의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혼자서 절대로 되는게 아니고, 더불어 되는 겁니다. 확실한가? 확실하게 다짐되어야 하고, 눈이 뜨이기를 바라는데 이걸 바꾸기 힘듭니다. 모든게 동의되면 그렇게 보기 시작해야 합니다.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이 훈련이 안돼면 절대로 안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여왕봉도 혼자서 여왕봉이 되는게 아닙니다. 기능이 다 따로따로 있는 것이고, 여왕봉 따로 여왕벌 되는 것 아닙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그 자체는 로보트 같이 될 수 있습니다. 까딱하면 예수를 로보트같이 여왕봉같이 만들어 가만히 살만 뚱뚱 찌게하고 섬기기만 하고, 일은 다른 사람들이 하고 그리고, 여왕봉같이 예수, 예수 이럴수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교회역할하는 사람들이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예수는 계속 팔아먹는데 자꾸 예수, 예수 부르면서도 실제 부르는게 정말 예수 운동인가? 놀랍게도 아니잖아요! 왜 그런가? 예수는 모셔놔 버리고 자기일만 하기 때문에-. 자기는 관계 없어요. 참여를 안해요. 더불어 사건을 안 일으켜요.

 

자, 이만큼은 준비호흡 한걸로 하고 여인 얘기를 봅시다. (다음 호에서 계속)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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