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기획 기사] 정작 문턱 앞에서 멈춘 건(유영상)

2022-01-22
조회수 114

정작 문턱 앞에서 멈춘 건


유영상(제3시대 연구원)

 

인수봉 아래에 한 대학교가 있다. 그 학교는 아담하다. 또 푸근하면서도 단단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계단도 많이 보이고 문턱도 보인다. 또 학교의 위인들을 기념하는 비석들, 곧 개화할 것 같은 수양벚꽃과 송화가루가 송골송골 맺혀있는 소나무들을 쉽사리 발견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봄이 되면 바삐 움직인다. 학생들도 매 학기 이맘때쯤이면 이들의 몸부림에 맞춰 분주히 강의를 듣고 도서관에 새벽까지 남아 자신들이 소등을 하기 위해 훈훈한 경쟁을 한다. 하지만 이번 봄은 다르다. 개강의 분주함과 설렘의 온기로 가득 찰 학교에 뺄셈이 있었다. "제도 때문이든 암묵적 동의 때문이든."(하민지)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장애인 당사자인 한 학생이 엄연히 수학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리 밟아대도 마모되지 않는 '문턱'을 뒤로한 채 자퇴를 감행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교회 채용에 응시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략 "교회 시설이 불충분해서", "교회사역 수행에 부합하지 않아서" 불가능하다는 대답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장애인으로서 목사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채용 거절 사유는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그의 장애를 이유로 꼽았다.


교회사역뿐만 아니라 대학 내 공간에서도 그에 대한 배제는 이어졌다. 이 학교에는 기숙사가 있는데, 기숙사는 대개 재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임에도 그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다. 기숙사 입구에 있는 가파른 계단, 그리고 전혀 준비돼있지 않은 시설, "리모델링을 고려 중"이라는 학교 측의 말이 이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학교가 그를 무작정 배제한 것만은 아니다. 학교는 그의 학업생활을 도울 장애인 도우미 장학생을 선발하여 그의 어려움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것은 연민으로 가득 찬 시혜적인 도움일 뿐, 학교는 장애인을 배제하는 제도를 유지시키면서 제도 개편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에는 유보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장애인으로 하여금 비장애인의 도움을 받아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제도에 적응하도록 하는 이러한 접근법이 오히려 장애인 배제를 공고히 한 측면이 있다.


학생들도 무관하지 않았다. 그가 문턱을 넘거나 수동문을 열 때, 학생들은 인자한 미소를 띠며 그의 휠체어를 힘차게 밀어주거나 그를 앞질러 가 수줍게 수동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들의 행동은 선의의 배려였을 수 있지만, 이들의 선의가 장애인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선행에 그쳤다는 점이 아쉽다. 모두와 동등하게 공간을 이용하고 수업을 이수하는 학내 구성원으로서의 실질적인 권리가 장애인에게 유보된 데에는 동학들의 책임 또한 있다. 물론 이는 현재 재학생에게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신학을 하면서 장애인 배제적인 환경과 문화를 목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하나 개선하지 못한 교수 및 졸업생들에게도 책임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이 아담한 학교에는 장애인을 배제하는 환경과 문화를 방치한 학교와 학내 구성원들의 원죄가 배회하고 있다.


이로써 그의 자퇴는 진보와 정상 혹은 상식을 자임하는 이들이 똘똘 뭉친 학교에서 모두가 그의 자퇴에 연루되어 있음을 보여줬다. '나쁜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가해자인가?'와 같은 방식으로 악인을 검거하기보다는 장애인 배제를 어쩔 수 없는 예외적인 사태로 주변화해 온 '정상성'의 문화와 제도, 다시 말해 비폭력 같아 보이는 폭력에 비판적으로 개입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이 학교는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다. 학교와 교단은 수업권을 비롯한 각종 권리로부터 학생을 배제하지 않아야 하는 정치적, 윤리적 책임이 있는데도 말이다. 학생사회 역시도 이 사건을 공론화조차 하지 못 한 모양새이다. 이처럼 누구도 장애인 배제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지 못한다는 듯이 폭력은 방임되고 장애인을 향한 인정은 지연되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에게 이 사태는 학교를 에워싼 '정상성' 이데올로기의 모순을 드러낸, 그로 인해 뼈아픈 위기를 자초한 일대의 사건이 아닌 그저 예외적 상황일 뿐인가.


우리 이 사실은 유념하자. 정작 문턱 앞에서 멈춰 선 것은 자퇴생이 아니라, '정상'을 자임하는 학교에 속한 모두임을. 그는 박탈과 비인정의 연속 끝에, 학교 내부에 있는 문턱을 마모시키기보다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문턱을 철거하기 위해 학교 바깥으로 향했다. 다수자적-정상적 권력의 해체를 꿈꾸며 말이다. 한편 학교 안에는 아직 문턱이 있다. 계단도 있다. 수동문도 즐비해 있다. 시혜적 구원의 유령이 인수봉 아래의 학교를 배회하고 있다. 동시에, 간과하고도 있다. 장애인-소수자에 대한 인정을 지연시키면서 그들을 시혜적인 대상으로밖에 상상하지 못하는 '정상성'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구원의 문법이 정작 구원 자체를 지연시키고 있음을.


동등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구원은 있을 수 있다는 안일하고 오만한 상상력이 유효하는 한(롬 3:21-26), 문턱이 있는 한, 시혜적 구원의 유령은 차별 없는 구원을 주도하는 신을 살해하며 부지런히 인수봉을 배회할 것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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