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기획 기사] 우리의 실업은 코로나19 때문일까(허요한)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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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실업은 코로나19 때문일까



허요한(대학원생 노동자)

 


2020년 3월, 나는 대학교 행정 단기 사무직 채용에 최종 합격을 했다. 그러나 실제 채용이 된 것은 8월이었다. 출근을 사흘 앞두고 출근일 확인을 위해 임용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는데 갑작스럽게 채용 연기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 고지도 없었다. 화가 났지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명분도 없었다. 채용 공고문에 작은 글씨로 한 줄,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라 학사일정 변경 시 임용 시기는 조정될 수 있음."이라고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구를 세심히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용은 쉽고 무책임하게 연기되는 반면, 정작 대학의 학사일정은 변경되지 않았다. 채용대기 통보에는 합당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4개월을 버텨야 하는데 당장 취업할 곳을 찾기 어려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알바 자리 자체도 줄었을 뿐더러, 면접까지 가더라도 4개월만 일할 수 있는 상황을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어 몇 번을 낙오하기도 했다. 그 사이 퇴직금 잔고는 10만 원대로 떨어지고 나는 의심과 불안에 휩싸였다. '8월에 채용한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지?' 채용대기 기간을 무기한으로 늘려도 피고용인은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왜 계약서부터 쓰자고 하지 않았는지, 큰 후회가 밀려왔다. 하루 종일 알바몬과 잡코리아를 들여다보고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한 채 근로 가능 지역과 시간, 임금 수준과 나이의 필터링을 바꿔가며 검색을 했다. 그러다 보니 알바도 성별과 나이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고, 불안정 노동의 주요 타깃은 젊은이들과 노년층, 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이는 곧 정규직 노동에서 누가 거세게 저항을 받고 있는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지금 돌아보니 우스운 사실은, 30대 중반 남성으로서 갑자기 일이 끊겼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꽤 좁다는 것이었다. 육체노동. 나는 왜 몸이 왜소한가! 일할 수 있는 인력은 넘쳐나고, 구인광고들은 착취가 더 수월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쿠팡 물류센터에 지원했다. 일용직을 세 번 떨어지고 나서 출근 문자를 받았을 때는 이미 저축한 돈까지 바닥나기 직전이었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열심히 일한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나는 직장에서 밀려나면 아무것도 아니구나. 내가 쌓은 경험, 업무지식, 능력이 한 순간에 쓸모없는 것이 되었다는 생각에 심한 무기력의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일용직이지만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게 되면서는 마음은 편했다. 첫날 아침에 장지역 부근의 통합물류센터로 출근해서 쿠팡 어플로 출근체크를 하고, 핸드폰을 압수당하고, 금속물질탐지대와 열 체크기를 지나쳐 들어가면 약 20분간 안전교육을 거친 후 무작위 혹은 지원자를 받아 업무배치가 이루어졌다. 대개 처음 온 사람들은 피킹(picking) 업무를 맡게 된다. 물류 창고 안에는 마트처럼 물품들이 진열돼 있는데, 카트에 지정 바코드가 있는 박스를 싣고, 필요 물품들의 위치 정보를 PDA로 확인하며 지정량을 담으면 포장 파트로 건네주고 다시 피킹을 반복하는 단순 업무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한 사람들이 UPH(Units Per Hour)시스템을 인상적인 것으로 꼽곤 한다. 이는 한 시간 당의 업무처리 속도를 체크하는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피킹에서 지속적으로 낮은 UPH 수치가 체크되면 매니저가 별도로 업무를 독촉하거나, 심한 경우 방송으로 호명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나는 첫날 평균 120~130 UPH를 기록했는데, 나중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중요한 건 점심시간에는 UPH가 당연히 떨어지기 때문에 쉬고 돌아와 80 UPH가 되어 있으면 왠지 불안해져서 과하게 일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쿠팡 일용직의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숙련도가 향상된다고 해서 수당이 올라가지는 않고 오히려 육체노동 강도가 더 심한 업무를 맡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 블로그에 있는 피킹업무 정보만 보고 갔다가는 다음 날에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허덕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 다음에는 무한 상차작업을, 이후엔 피킹물류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왜 일을 열심히 해서 이 고생을 하지?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쿠팡 물류센터의 일급은 평소보다 줄었는데도 사람들은 주간 야간 할 것 없이 끊임없이 보충된다. 쿠팡 물류센터를 3일만 나가면 주휴수당이 포함되고 무엇보다 고용보험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정이 급한 사람들이 많이 지원한다. 그렇게 한 달을 넘게 일하다 나는 또 일을 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옆 동의 마켓컬리 센터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미 타지역 쿠팡 물류센터가 폐쇄된 상황에서, 이제 나는 코로나19 감염과 생활 중 어느 것이 더 급한가 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감염이 되면 가족과 주위에 피해를 주게 되기에 나는 결국 일을 그만 두었다. 소비를 더욱 줄였다. 소액의 돈을 빌려 생활비에 충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무직으로 남은 한 달을 겨우 버티고, 지연되었던 1년 단기 계약직 채용이 8월에 이루어졌다.


현재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실업은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것일까? 1997년 이후 소위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계기로 사회에 쉬운 해고와 더불어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대학은 취업 소개소로 전락했으며 공무원 시험에 청년들이 목숨을 걸게 된 내력은 너무 지난한 역사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급격히 확장된 플랫폼 노동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업무 과중, 과로사, '자영업' 형태의 계약체결 등 노동착취의 결과로 우리는 매일 택배를 받고 배달음식을 먹고 있다. 청년 실업의 양상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조용한 학살"을 자행하는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콜센터 직원들의 업무 환경과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근무형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문제가 없던 것일까? 내가 근무하고 있는 대학은 비대면 사회의 위기가 뉴미디어 교육 실천의 기회라며 고무되어 있다. 연구 노동자 및 비정규 강사들의 생존은 코로나19가 위협하고 있는 것일까? 자본주의적 발전의 가속화를 한국판 뉴딜, 즉 '위기는 위험이자 기회'라고 선전하는 정부가 노동현실을 대하는 태도는 위와 얼마나 다를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일까? 돌봄 노동자의 다수를 구성하는 여성들에 대한 노동착취를 K-방역의 국가이미지로 활용하는 것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가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천주희)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사회는 노동할 수 없는 자와 노동할 수 있는 자 모두를 위협하며 그것은 성별/계급화되어 있다. 나는 합당한 이유 없는 4개월간의 채용대기 통보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대학 예산 절감의 일환으로 결정된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채용대기는 대학이 2년 전부터 일방적으로 계획해 온 사무직 인원 감축안의 일환이었다. 코로나19는 원인이 아니라 그저 착실히 진행되어온 문제를 가시화한 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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