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 프로그램 리뷰] 프레카리아트 위계와 살아있는 미래 : 제240차 월례포럼 리뷰(허요한)

202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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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위계와 살아있는 미래



허요한(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

 

 

이번 월례포럼은 ‘한국사회 코로나 불평등의 위계’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발표를 해주신 조문영 선생님은 최근 공정 논란으로 부상한 불평등 구조의 문제가 한국사회에 내재해있던 것으로서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더욱 가시화되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그러한 불평등 구조 내에 위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세부적 위계가 작동한 결과로서의 정체성(들)과 그 돌파를 위한 ‘말할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에 관해 이야기했다.

 

프레카리아트는 신자유주의 시장 변화에 따른 불안정 노동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타자화된 사람들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가이 스탠딩이 지적했듯이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다양하고 이질적인 존재들의 집합이며, 버틀러가 제기한 바 있는 ‘부여된 이름 없는 존재들’의 문제는 프레카리아트의 영역에서도 적용된다. 조문영 선생님은 ‘말할 여력이 없는’,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의 존재를 밝히고, 프레카리아트 내부가 위계화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사회에서 그 위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교육·문화 자본을 갖춘 청년(“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 비정규직 노동자(“말할 여력이 없는 프레카리아트”) 그리고 홈리스와 쪽방 주민(“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을 비교했다.

 

특히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의 경우, 청년들의 행위자성이 그들에게 ‘당사자’로서의 말할 자격을 부여한 정부, 정치권, 언론, 시장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와도 결부되어있다는 조문영 선생님의 논의에 깊이 공감되었다. 한편 젠더 의제와 관련하여 (소위 ‘링 바깥’의?) 정치경제적 토대를 잊은 논의들이 진보적 엘리트 담론에서 성행하고 있다는 주장은, 공정이라는 프레임으로 덧 씌워진 현 청년 세대의 젠더 갈등이 실은 자본주의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절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했다.

 

‘말할 여력이 없는 비정규직 프레카리아트’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강요된 돌봄 노동으로 ‘탈진한 몸’이며 각종 산재 사고와 초과 노동, 젠더 폭력의 구조에서 자신의 비참을 설명하도록 강제받는 이들이다. 그리고 임금노동자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사회를 향한 목소리 내기가 ‘가능한’(과로, 사고, 자살 등으로 죽어야 하지만.) 존재들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들의 말을 경청할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단 사실에 있다는 조문영 선생님의 주장에 공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는 코로나19라는 상황에서 단순히 호혜적 지원만을 받아야하며 순식간에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음에도 스스로 자기 몫의 주장을 하기 어려운 계층의 사람들이다. 홈리스, 쪽방 주민,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그리고 나는 교도소 창문으로 옷을 흔들던 재소자나, 한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감염위험 격리조치를 당한 군인도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들은 ‘국가’ 관리 대상이기 때문에 정부의 성격에 따라서 발언권의 폭이 변동될 뿐이다. 이러한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의 ‘비정상성’(임금노동으로부터의 열외)은 언제든 검열과 통제, 사회적 낙인에 처할 수 있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방치되는 이중의 위기상황을 자연스럽게 은폐한다.

 

조문영 선생님은 청년 프레카리아트에게 자신의 위기상황과 더불어 프레카리아트 내의 위계를 인식함으로써 말을 잃은 자들에게 말이 설 틈을 제공하고 연대의 길을 열어 지구-사회적 계급투쟁의 새로운 주체가 될 것을 요청했다. 깊은 공감과 함께, 공정에 대한 논의 역시 연대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을 배운 유익한 시간이었다.

 

발표 후의 질문들은 청년의 ‘당사자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논의들로 모아졌다. 젠더 이슈와 경제적 하층 계급의 문제(노동 문제)가 동시에 사유될 수 있는가 혹은 그 둘은 구분이 가능한가. 청년층의 (문제적으로 비춰지는) 계급 이해는 단순 부정되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을 바탕으로 하여 추가적인 고민을 갖게 되었다.

 

지식인-노동자 연대가 창발했던 1980년대의 한 장면과 현재를 포개어 볼 때 ‘다른 가능성’은 어디서 발견될 수 있을까. 첫째, 젠더 이슈의 전면적 부상이다. 1980년대에는 남성-중화학공업 중심의 노동이 사회·문화적으로 재현되는 과정에서 운동이 남성중심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그런가하면 2010년대 페미니즘과 소수자 운동의 (재)부상은 노동 자체에 대한 관점의 다양성을 제공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중심주의적·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노동이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으므로 대항운동 역시 교차적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질의응답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둘째, 지식인/노동자의 구분이 명확했던 1980년대 상황에 비추어 볼 때 현재는 둘 사이의 격차가 상당히 좁혀졌다는 것(노동자-지식인의 형태)이 한국사회의 인적 구성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는 국민-민족의 입장에서만 그러하고, 이전의 계급의 자리는 이주 노동자들에 의해 메워지고 있다.) 따라서, ‘말할 수 있는’ 청년 프레카리아트가 중간계급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가는 운동의 방향에서 분명 중요하다. 문제는 ‘무엇을, 어떻게 말 할 것인가’일 것이다. 이에 대한 질의응답 또한 이루어졌다.

 

서발턴이 말을 할 수 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 에이전트의 위상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링 밖과 안은 하나의 이벤트를 위해 준비된 동시적 구축물이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지 않는 이상, 링 밖의 인물과 링 안의 인물의 소통은 그 이벤트의 거대서사 안의 한 부분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따라서 서발턴이 에이전트의 ‘말’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역으로 에이전트가 서발턴을 해석하기 위해 서발턴의 ‘말이 되지 못한 말의 외부’를 말이 아닌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질문이 생긴다. ‘그들’이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번역에는 곁도 너무 멀어, 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들이 욕망하는 힘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사회적 계급투쟁의 장을 새롭게 여는 것과 서발턴에게 언어를 (힘을) 주는 일은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지만 그 둘이 인과관계인 것은 아니다. 계급투쟁은 언어의 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도 아니며, 서발턴에게 언어를 가능하게 하는 일은 계급협력 또는 복지의 차원에서라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계급투쟁에 대한 당사자적 인식은 ‘계급마다’ 중요하다. 많이 배운 청년도 빈곤층에 진입하기 쉽다는 사실이 현재의 청년들이 지닌 공포이며, 이기적으로 보이는 그 행동들은 오히려 링의 구조에 대한 명확한 감각을 갖고 있다는 신호가 아닐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발표가 요청하는 ‘연대하는 감각의 회복’은 거부할 수 없는 올바름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자의 생존에만 집중하는 한국사회의 청년 프레카리아트들이 더 낮은 계층의 프레카리아트들에게 연대를 청해야 하는 이유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말을 잃은 프레카리아트’는 ‘말할 수 있는 프레카리아트’의 살아있는 미래이므로.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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