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기획 기사] 양궁처럼 하면 될 것 같다는 판타지의 시간에(황용연)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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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처럼 하면 될 것 같다는 판타지의 시간에



황용연(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1.


야구팬이면서 다른 스포츠도 재미있겠다 싶으면 챙겨 보는 저에게 올림픽을 하는 요즘은 눈호강 귀호강의 시절입니다. 마침 가르치는 학교가 방학 때이기도 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 종목 저 종목 돌려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이번에도 어김없이 양궁이 '대한민국'의 금메달밭이 되자 언제나 그렇듯이 양궁협회에 대한 칭송이 또 나옵니다. 과거에 올림픽 금메달을 땄건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땄건 그런 건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오직 현재의 실력만을 공정하게 평가하여 올림픽 대표를 선발하는 것이 매번 금메달을 쓸어오고 특히 여자단체전 같은 종목은 33년간 9번 연속 우승을 하는 비결이라는 이야기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반복됩니다.

 

남초 사이트로 대표적으로 알려진 어느 사이트에서 양궁협회의 이야기를 하는 글에 이런 댓글이 달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요즘 능력주의 비판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리는데 그런 사람들은 양궁협회 같은데다 왜 점수가 낮은 선수에게 배려점수를 더 주라는 요구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자기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런 요구를 해야 하는 게 아니냐면서요.

 


2.


상반기에 웹진에 썼던 주제들을 돌아보니 코로나19로 잃어버린 것들, 정의당/우상호 사태와 관련하여 (586 세대의) 조직문화와 젠더폭력, 학원폭력, 공정과 영끌, 차별금지법 등이 있었군요. 대체로 그 달마다 가장 화제가 되었던 주제들에 대해서 청탁을 받았고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해서는 마침 그 때 비슷한 주제로 글을 쓰던 중인지라 그 때 읽었던 책 중에 인상적인 내용을 소재로 잡아서 썼고, 운동권 조직문화와 젠더폭력에 대해서는 제가 나름 갖고 있던 경험 중심으로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제일 쓰기 어려웠던 게 학원폭력 주제인데, 결국은 책임을 지라는 요구인데 학원의 폭력이라면 그것은 사회의 폭력이란 말도 되는데 그렇다면 그게 과연 '책임지기'가 가능한 상황이긴 한 걸까 그게 불가능하거나 혹은 거기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에 개인에 대한 폭로와 비난, 그 결과로 퇴출 이런 일만 계속 반복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썼고, 그러다 보니 그 '개인' 중에서도 오히려 이제는 자본을 가진 '개인'들이 '인성'도 가지면서 그 폭력의 구도에서 탈출구까지 독점해 버리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이런 말을 썼습니다. 사실 처제 중의 한 명이 초등학교 교사인데, 지금도 그 글을 그 처제에게 읽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3.


그렇게 사회와 개인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나니 그 다음 달의 공정이라는 주제에도 '개인'이라는 프레임을 적용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회라든지 연대라든지 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을 믿는 '개인', 그것이 공정이라는 주제에 깔려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문제는 거기서부터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개인'에게는 소수자나 여성 같은 주제가 뭔가 명분이 있는 척 꾸며대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반칙을 쓰는 이야기로 보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게 생각해 보니 그 다음 주제 차별금지법하고 연관이 되겠네요.

 

아무튼 이 모든 주제에 대해서 이렇게 글을 써 보려고 했었습니다. 대체로 모든 주제에서 어떤 현상을 비판해야 할지는 명확해 보이더라도, 비판할 현상을 비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비판을 조금 더 심화해서 더 깊은 층위를 짚도록 노력해 보자는 생각은 계속 했던 거 같습니다.

 


4.


서두에 올림픽 이야기를 꺼냈고 올림픽이 되면 언제나 단골 메뉴로 나오는 양궁협회 이야기를 언급했고 그 양궁협회 같은 조직이 딱 좋지 않냐면서 느닷없이 능력주의 비판 이야기를 꺼내 씹는다는 경우를 이야기했지요. 사실 저런 이야기는 간단하게 반박이 가능하겠지요. 양궁협회 방식이라면 당신이 어느 회사에 천운을 잡아서 들어갔다고 해도 1년 뒤에 다 갈린단 이야기일 텐데 그 꼴 보고 살고 싶냐 뭐 이런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저렇게 반박을 하는 건 하는 거고, 저런 이야기를 보니 이런 생각이 한 편에 들더란 말이죠. 올림픽이나 프로스포츠 같은, TV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업화된 스포츠들의 사회적 기능 중에, 이런 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 겁니다. 다른 사람, 다른 관계, 이런 걸 생각할 필요 없이, '내'가 노력하면 그 노력한 대로의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공식이 실제로 통하더라는 판타지를 준다는 그런 기능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 보니 이거 앞에서 이야기했던 '공정'에 관한 이야기와도 겹치네요. 아니, 사실은 이런 기능은 자본주의 세계 체제 안에서는 어디나 통하는 기능이고, 그것의 현재 한국판이 '공정'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양궁의 금메달리스트를 두고 엉뚱한 시비가 붙었습니다. '공정'하게 선발되어 금메달을 땄다 해도 여자 선수가 '숏컷'을 해서 혹시 '페미'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되면 과거가 탈탈 털려서 공격을 받게 된다니 그 '공정'이란 게 판타지라는 걸 바로 증명을 해 주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이 글이 공개될 때쯤엔 그 엉뚱한 시비가 붙은 선수의 마지막 개인전 결과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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