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기획 기사] 머리카락은 놀랍게도 머리카락(김유미)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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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은 놀랍게도 머리카락



김유미(큐앤에이)



안녕하세요. 저는 이동환 목사의 아들이라 불리는 김유미입니다. 성소수자 축복기도를 한 이동환 목사가 소속 교단으로부터 재판을 받게 되자 저는 대책위원회의 일원으로 일을 하며 이동환 목사 곁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셀럽의 곁에 있으니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이동환 목사의 아들로 호명되었습니다. 재판정에서 재판위원 중 한 분은 굳이 다가와 제게 이동환 목사의 아들인지를 묻고 가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자, 다수는 저를 놀리기 위해 ‘아들’이라고 불렀고 몇몇 분은 그 말에 속아 정말로 제가 이동환 목사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동환 목사의 아들로 호명되는 일, 그 자체가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이동환을 닮은 것인가’ 고민을 하긴 하였지만, 그것 역시 기분이 나쁠 일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찝찝함을 느끼는 지점은 ‘왜’였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는데, 사람들은 어느 지점에서 나를 이동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였을까?’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보면, 이동환 목사의 아들로 호명되는 일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글로 저를 만나보실 여러분들을 위해서 제가 저의 외양을 조금 설명해보자면, 저는 머리카락이 짧은 편입니다. ‘투블럭’이라고 불리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장을 하지 않았고 도수가 높고 큰 안경을 썼습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기보다는 몸에 붙지 않는 넉넉한 사이즈의 옷을 좋아합니다. 이동환 목사의 아들로 오해를 받는 것은 아마도 제 이런 모습 때문일 겁니다.

 

재미난 점은 제가 이런 모습으로 산 지가 10년이 넘게 지났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돈으로 미용실에 가기 시작한 이래로 줄곧 머리카락을 짧게 유지했습니다. 화장에 취미는 그때도 없었고, 시력도 그때부터 좋지 않아 안경을 썼습니다. 옷을 고르는 취향 또한 비슷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저라는 사람은 그대로인데, 때에 따라서 저는 교칙을 잘 지키는 모범생이라 불리기도 했고, 어느 시절에는 또래와 다르게 꾸미지 않아 별난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또 어느 때는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로 불렸다가 이제는 이동환 목사의 아들이 되었으니 재미난 일입니다.

 

제가 실제로 모범생인지, 별난 사람인지, 페미니스트인지, 이동환 목사의 아들인지는 저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필요에 맞게 저를 보고, 본인들이 부르고 싶은 이름대로 저를 불렀습니다. 제게 불리고 싶은 이름이 있었는지 제가 그 이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은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무슨 대화의 여지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묻지 않아서 제가 제 머리카락에 대해 이야기 볼 일이 없었는데, 지면이 생긴 김에 이야기를 해보자면, 저는 기장이 짧은 머리스타일을 좋아합니다. 뺨과 목선에 머리카락이 닿는 것이 싫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갑니다. 제 짧은 머리카락으로는 이 정도의 이야기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제 머리카락은 저의 성별이나 성정체성, 성적지향이나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식, 정치적 의견 따위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혹 그런 것이 궁금하다면 머리카락의 길이를 잴 것이 아니라 저와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제 삶의 여정에서 제가 하는 선택들을 지켜보는 일이겠지요. 대화도 하지 않고 또 시간을 쓰지 않고, 머리카락 길이로 한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머리카락에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안산 선수의 머리스타일을 둘러싼 근래의 숱한 말들을 읽으며 쓸데없이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놀랍게도 그냥 머리카락이라고요.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다가 치우지 않으면 하수구를 막히게 하는 것 외에 특별나게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머리카락은 그냥 머리카락이라고요. 안산 선수의 머리카락으로는 그가 페미니스트인지 페미니스트가 아닌지 알 수 없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을 둘러싼 많은 말들이 실제로 맞고 틀리고 간에, 소가 뒷걸음질을 쳐서 쥐를 잡든 말든 간에, 머리카락이 그저 머리카락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이 머리카락이라는 말을 하기위해서 이렇게나 많은 말이 필요하다니 애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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