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특별 연재]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재(再)전개를 위하여(1) : 위기의 위기, 또는 비판의 위기에 관해(정용택)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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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재(再)전개를 위하여(1)

위기의 위기, 또는 비판의 위기에 관해



정용택(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민중신학을 다른 신학 담론과 구별짓는 종차(種差)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민중신학이 한국 근대화에 대한 일반적인 시대구분(periodization)의 논리에 대응하여 세대론적으로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이때의 세대론은 연령이나 사제 관계에 따른 구분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는 “시대상황의 차이에 따른 문제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으며1), 보다 구체적으로는 “동시대 비판 담론의 당대 읽기와 대화하면서 신학하기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당대(contemporary)의 위기를 읽는 시각의 차이”에 따라 시대마다 주요한 위기구조를 변별하는 가운데 민중신학의 차별화된 세대 구성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2) 이러한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의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위기에 대한 진단과 위기구조에 대한 분석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위해 오늘은 먼저 동시대 비판이론에서 제출되고 있는 위기담론의 지형을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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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개념사가 라인하르트 코젤렉에 따르면 ‘위기’(crisis)라는 개념은 ‘비판’(critique)과 동일하게 그 뿌리를 그리스어 ‘크리시스’(κρισις)에 두고 있다. 크리시스는 기본적으로 ‘선택하다’, ‘판단하다’, ‘결정하다’, ‘겨루다’, ‘싸우다’, ‘전쟁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크리노’(κρινω)에서 유래하여, 이제 그 명사형으로서 ‘나눔’, ‘선택함’, ‘판단함’, ‘결정함’ 등의 뜻을 지니게 된다.3) 따라서 비판과 위기 두 개념 모두의 어원으로서 크리시스에는 불일치와 대결한다는 의미와 이미 도달한 결정과 지나간 것에 대해 판단한다는 의미가 함께 존재했다. 특히 ‘위기’를 뜻하는 크리시스는 중세 때까지만 해도 신학 용어와 의학 용어로 나뉘어져 따로 사용되었는데, 의학적 맥락에서 위기는 병이 진행되는 중에 회복될지 아니면 죽을지 결정되는 중요한 진전이나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으로 병의 호전 또는 악화에 영향을 미치는 전환점을 의미했다. 이처럼 중세를 거쳐 근대 이전까지만 해도 법률과 신학과 의학 분야에서 명확히 구별되는 의미로 크리시스 개념이 사용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념은 “옮음 아니면 그름, 구원 아니면 벌, 삶 또는 죽음”과 같이 엄격한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아감벤에 따르면, 근대에 이르러 신학적 용법과 의학적 용법이 합치되면서 크리시스의 의미는 이제 “시간상의 어떤 결정적인 순간[모멘트]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위기는 절정에 이르거나 위험하거나, 어쨌든 결정적인 사건을 가리키는 말로서, “환자가 계속 더 살 수 있을지에 관해 의사가 ‘판단하는’ 결정적인 날이 동시에 [최후의] 판결이 내려질 시간의 끝과 일치하는 ‘최후의 날’”을 의미하게 된 것이다.4) 이러한 용법은 20세기 초반, 정확히는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계기로 ‘위기의 신학’을 자임하며 등장한 유럽의 변증법적 신학 전통(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사실 그전에 이미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위기의 개념이 ‘세계공황’의 개념으로 발전되면서 혁명의 조건으로 위기를 사유하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전통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위기’의 개념이 마르크스주의나 비판이론의 문맥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긴 하지만, 사실 오늘날에 와서 위기의 개념은 아감벤의 주장대로 “‘결정적인 날’에서 떨어져 나와 항구적인 조건으로 변모되었다.”


다시 말해, 위기는 더 이상 결정적 순간의 상황이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결정할 수도 없는, 즉 비결정적인 상태가 항구적으로 지속되는 조건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위기는 확실하게 규정 가능한 객관적 사건을 말하지도, 역사의 종말을 표상하는 최후의 환란 같은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위기는 그 자체의 여파를 포함한 채 내재하는 조건이며 끊임없이 역사의 생활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위기란 “더 이상 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아니라 역사에 내재하는 상태이며, 위기의 ‘정상적’인 작용의 일부인 여파와 구별하기 어렵다.”5) 위기가 더 이상 고유의 의미를 상실한 이런 상황이야말로 아감벤에겐 역설적으로 진짜 ‘위기’인 셈이다.


일례로 지금도 ‘위기’의 대명사처럼 통용되고 있는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금융위기 당시에만 해도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종말이 도래했다는 예측이 분분했고, 금융위기의 여파가 계속된 2010년대 초반까지도 이제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성격의 변화를 예상하는 논자들이 많았었다. 하지만 “2013년 이래 세계경제는 파국적인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고, 또 국제적으로 불균등하기는 하지만 경기순환 상으로도 명백하게 경기회복 국면 또는 호황 초기국면에 진입하였다.”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로도 전세계 금융자본의 총가치는 2021년 현재 여전히 세계 연간 생산량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금융위기는 금융화라 불리는 자본의 포스트모던적 조건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가치량의 관점에서 보자면, 세계경제에서 인간노동이 생산하는 재화 및 서비스 상품의 가치는 가공자본이나 지식정보상품의 가치에 비할 바가 못 되며, 따라서 가치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본의 입장에서 물질적인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하는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노동은 별로 생산적이지 않은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실물경제와 금융경제의 위상이 뒤바뀐 상황을 가리켜 역(逆)자본주의라 부르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금융증권시장 가운데서도 주로 파생상품 같은 가공자본에 의해 추진되어온 이러한 전도된 자본주의의 현실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이다. 물론 답은 우리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실물경제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는 금융파생상품의 양에 분명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한계점이 정확히 어딘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6) 많은 이들은 자본주의 역사에서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온 공황의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키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은 역사적 전례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도 제공하지 못한다.


‘위기의 위기’(crisis of crisis)로 표현되는 이러한 문제설정은 아감벤 이전에 이미 자크 데리다에 의해 「위기의 경제」라는 주제 하에 다루어진 바 있다.7) 그 글에서 데리다는 ‘위기의 위기’ 상태를 위기라는 개념이 개념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순간에조차도, 현재의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계속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그는 “‘위기’라는 가치의 ‘위기’는 여러 다양한 위기들 가운데 그저 하나의 위기로 간주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는 위기라는 개념이 그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때 가치의 총체적 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궁극적으로 데리다는 “현재의 세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거대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해질 때 오히려 그런 주장에 의심을 품고 “누가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고 경고하였다.8) 


데리다의 이런 경고가 무색하게, 위기의 위기라는 문제설정은 오늘날 비판이론 및 비판사회학 전통에서 비판의 위기라는 문제설정과 연결되어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프랑스의 비판사회학자 뤽 볼탕스키와 이브 시아펠로는 공전의 화제작인 『자본주의의 새로운 정신』(The New Spirit of Capitalism, 1999)에서 그러한 논의의 초석을 놓은 바 있는데, 그들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더불어 이제 자본주의의 위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비판의 위기만이 존재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자본주의 비판의 능력을 상실한 비판적 이론의 위기만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영국의 페미니스트 비판이론가 알베나 아즈마노바(Albena Azmanova)는 『벼랑 끝의 자본주의』(Capitalism On Edge, 2020)라는 책에서 데리다의 경고를 의식하면서도 볼탕스키와 시아펠로의 논점을 더욱 발전시켜, 더 정확히는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종합하여, “자본주의의 위기의 위기”라는 논점을 제출하였다. 그녀에 따르면, 오늘날 위기라는 개념은 위험을 알리는 그 함의를 상실하고, 비판적 용어로서의 활기마저도 상실한 상황이다. 위기를 개체의 실존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나타내는 극단적인 도전의 순간으로 이해했을 때, 원칙적으로 위기에 대한 세 가지 해결책이 존재한다. 위기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거나, 위기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거나,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거나. 아즈마노바는 오늘날의 세계가 이 세 가지 선택지 중 어떤 것도 적용될 수 없는 역사적으로 매우 특이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예컨대 2007-2008년 전지구적 금융위기를 겪었고, 곧 이어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체계에 어떠한 변화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위기가 그 개념의 가치를 전혀 실현하지 못하는 위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그녀는 이러한 위기의 위기 상황은 현재의 영구적 위기상태를 위기 개념 본연의 비판적 용어(critical term)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비판이론의 위기와 동일시한다. 위기 개념의 위기가 바로 그 위기라는 개념에 기초한 비판이론 자체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진단인데, 어쩌면 이것은 “한국사회를 ‘위기의 관점’에서 보면서, 이에 대한 신학적인 개입(실천, praxis)의 한 유형으로 형성 발전하여 왔다”9)고 자임해온 민중신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물론 혹자는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가 3세대 민중신학 담론에서 멈춰버린 것은 그때 이후로 새로운 세대의 민중신학의 출현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위기구조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니면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가 3세대에서 4세대가 아니라, 포스트-3세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3세대 이후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것, 더 정확히는 누구도 더 이상 세대론을 말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현재의 위기구조에 민중신학이 비판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는 민중신학적 위기론의 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 최형묵, 「그리스도교 민중운동에서 본 민중신학」, 『신학사상』 제69집(여름호), 한국신학연구소, 1990, 327쪽.

2) 김진호, 「‘한국의 근대’와 민중 신학, 회고와 전망」, 『반신학의 미소』, 삼인, 2001, 273쪽.

3) 라인하르트 코젤렉, 『위기』, 라인하르트 코젤렉‧오토 브루너‧베르너 콘체 엮음, 코젤렉의 개념어 사전 11, 원석영 옮김, 푸른역사, 2019, 16-17쪽.

4) 조르지오 아감벤, 『빌라도와 예수』, 조효원 옮김, 꾸리에, 2015.

5) 로절린드 윌리암스, 「현대사에서 진행 중인 종말」, 마누엘 카스텔스, 주앙 카라사, 구스타보 카르도소 엮음, 『여파』, 김규태 옮김, 글항아리, 2014, 53쪽.

6) Photis Lysandrou, “The colonization of the future: An alternative view of financialization and its portents,” Journal of Post Keynesian Economics 39/4(2016), pp. 444-472.

7) Jacques Derrida, “Economies of the Crisis,” Negotiations: Interventions and Interviews, 1971– 2001, Elizabeth Rottenberg ed. and trans.,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2002, pp. 69-73.

8) 그런 의미에서 자넷 로트만(Janet Rottman)의 『반(反)위기』(Anti-Crisis, 2014)는 데리다적 문제제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저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로트만은 위기라는 개념의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넘어 개념적 무용성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9) 김진호,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민중신학의 세대론적 전개를 위하여」, 『시대와 민중신학』 제7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엮음, 다산글방, 2002,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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