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기획 기사] “우리는 다만 우리 일을 할 뿐이오.” ―<웹진 제3시대> 178호 발행에 부쳐, 연구소의 상반기 활동을 돌아보며(정용택)

2022-01-22
조회수 433

“우리는 다만 우리 일을 할 뿐이오.”

―<웹진 제3시대> 178호 발행에 부쳐, 연구소의 상반기 활동을 돌아보며



정용택(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2021년 7월말 현재까지, 수도권 거리두기가 연초에 2.5단계로 시작하여 잠시 몇 달 동안 2단계로 내려갔다가 다시 하반기부터 4단계로 격상되는 동안 연구소의 활동과 프로그램 운영 역시 직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대한 모든 프로그램을 온라인 비대면으로 전환하면서도 연구소에서 계획한 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그야말로 치열하게 분투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의 규범이 된 시대를 살아가면서 문득 거리두기의 윤리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2019년에 타계한 한국문학의 대가 김윤식(金允植) 선생이 생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요즘 젊은 후배들은 선생처럼 많이 읽지 않는 것 같은데 못마땅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전혀. 우리에게는 우리의 필연이, 그들에게는 그들의 필연이 있소. 우리는 읽는 게 양식이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다른 양식이 있겠지. 뒷방 늙은이가 관여하고 가르치는 건 염치 없는 일. 나는 다만 내 일을 할 뿐이오.”

 

비슷한 관점에서,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어느 글에서 자신은 “감정이입 없는” 윤리적 괴물의 윤리학, 즉 “맹목적 자발성과 성찰적 거리두기의 기묘한 일치 속에서 해야 할 것을 수행하면서, 구역질나는 근접성을 피하면서도 동시에 타자를 돕는” 그런 윤리학이 지배하는 세계를 꿈꾼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나는 다만 내 일을 할 뿐이오”의 윤리학은 자신과의 관계, 즉 자신의 직업적 소명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윤리적 관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봅니다. 감히 말하건대, 타인의 눈으로 나를 관찰하면서 선해지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전시적인 자아를 강화한다는 점에서 결국 속물적이고 자기만족적인 도덕에 불과합니다. 선하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 즉 너의 눈에 비친, 그 응시 속에서 나는 선한 사람이라는 자족감을 얻기 위해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내가 할 일이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윤리적 요구이기 때문에 선행을 실천하는 지극히 순진한 태도가 오히려 우리에겐 더욱 필요하다고 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시대를 통과하면서 2021년 상반기에 연구소 역시 “우리는 다만 우리 일을 할 뿐이오”라는 마음으로 연구소의 활동들을 묵묵히 진행해왔습니다. 그 결과, 우선 상반기에 새롭게 시작한 <비평연습> 시즌1(<성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가―혐오의 텍스트인가 혐오주의자의 억견인가>)은 강사와 수강자 모두 높은 만족도를 표현하면서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매주 놀라운 열정과 성실함으로 수강생들이 올려주시는 글을 읽으면서 제3시대 연구원들 역시 많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강사님 역시 처음 시도해보는 글쓰기 강좌 형태의 <비평연습>을 통해, 특히 수강자분들의 통찰력 넘치는 비평문을 매주 읽으면서 본인이 누구보다도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비평연습> 시즌1에서 제출된 수강자분들의 빛나는 글들이 <웹진 제3시대> 176호177호를 통해 소개되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읽어보실 것을 권유합니다. 아울러 강사님의 강좌 후기에 더하여 향후 또 다른 저서를 예고하는 듯한 글이 <웹진 제3시대> 177호에서 나갔습니다. 「그 하느님은 ‘성기’가 없다: 퀴어비평과 민중신학의 만남에 대하여」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글은 역사적인 『퀴어 성서 주석』의 출간을 계기로 퀴어신학과 민중신학의 생산적 대화를 요청하고 있는데, 연구소 역시 앞으로 이를 중요한 의제로 삼아 관련된 연구와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주부터 시작한 <비평연습> 시즌2(<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사역자를 위한 민중신학적 설교 또는 글쓰기>)에서도 성서 읽기라는 시즌1의 형식을 이어가면서도 이번에는 좀 더 목표를 특정하여 “사역자를 위한 민중신학적 설교 또는 글쓰기”를 실험해보고자 합니다. 당장 이번 주 설교를 고민하는 사역자 또는 성경공부 모임을 준비하는 이끔이부터, 성서를 비평 텍스트로 삼아 에세이를 쓰고 싶은 분들, 현장에서의 지지 발언이나 기도회, 예배 등에서 어떻게 메시지를 전할지를 고민하는 활동가들과 함께 신구약성서 본문을 넘나들면서 특정한 서사 안에서 작동하는 시선의 차이, 서사 내부의 틈들을 발견해내어 이를 우리 당대에 대한 시선과 연결하는 새로운 방식의 독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벌써 올라오고 있는 수강자분들의 비평을 보니 이번 시즌2 역시 매우 성공적인 강좌가 되리라 기대됩니다.

 

올해 상반기에는 네 차례 월례포럼을 진행하였습니다. 제237차 월례포럼에서는 황용연 연구기획위원장과 함께 오늘날 민중신학 담론에서 민중이라는 용어가 수행하고 있는 ‘효과’에 대해 토론하였고, 제238차 월례포럼에서는 유영상 연구원이 민중신학의 오클로스론을 오늘날의 퀴어이론과 접합시킴으로써 오클로스의 소수자적 재구성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제239차 월례포럼은 감리교 이동환 목사를 발제자로 모시고 그간의 사태 전개를 돌아보며 이에 임하는 생각을 경청하는 시간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제3시대는 앞으로도 이동환 목사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연대를 이어갈 것입니다. 지난 5월에 진행된 제240차 월례포럼은 빈곤‧청년‧노동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 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를 진행해온 문화인류학자 조문영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 코로나 불평등의 특이성과 위계”의 문제를 검토하였습니다. 상반기에 진행된 월례포럼의 모든 녹화 영상은 연구소 새 홈페이지와 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안병무 선생의 저작과 사상에서 발원하는 동시대 민중신학의 흐름을 개관하고, 민중신학의 현재적 문제의식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민중신학 전문 강좌기구인 안병무학교-민중신학아카데미는 상반기에 봄학기를 진행했고, 8월 10일에 여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봄학기 강좌에서는 허석헌 박사가 프랑스 현대 철학자 알랭 바디우의 철학을 통해 안병무의 사건론적 민중신학을, 특히 바디우 철학의 ‘사건’ 개념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였습니다. 이제 여름학기 강좌에서는 정혜진 박사가 “안병무 민중신학의 오클로스론-제임스 스코트의 민중운동론-여성주의적 성서해석학을 연결하는 ‘성좌적’ 읽기를 통해 마가복음을 보는 새롭고도 급진적인 지평”을 제시해줄 것입니다. 안병무학교-민중신학아카데미는 가을학기에 “안병무와 한국문학”(정혜진), 겨울학기 “안병무 vs. 서남동”(박재형)을 주제로 하여 두 번 더 진행될 예정입니다.

 

비평연습과 안병무학교 외에도 연구소는 9월에 기획강좌를 열고자 합니다. 최근에 박사학위를 받은 정용택 연구실장이 “현대 자본주의와 신학”이라는 주제 아래 주목할 만한 현대신학계의 중요한 성과로 꼽히는 세 권의 책을 총 6회에 걸쳐 함께 읽는 강좌를 준비 중입니다. 신격화된 시장의 문제와 관련해선 하비 콕스의 『신이 된 시장―시장은 어떻게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를, 노동과 소외라는 주제에 대해선 미로슬라프 볼프의 『일과 성령―새 창조와 성령론적 일 신학』을, 금융화된 자본주의에 관해선 캐스린 태너의 『기독교와 새로운 자본주의 정신―금융 자본의 지배에 맞선 기독교 신앙의 비전』을 깊이 읽어보려 합니다. 단순히 이 책들의 내용을 요약・정리하는 강좌가 아니라, 이 저명한 신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현대 사회과학 및 비판이론의 성과와 함께 검토하면서 민중신학적 접근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이외에도 새롭게 만든 연구소 홈페이지와 함께 <웹진 제3시대>를 꾸준히 발행해 나가면서 당대의 현안에 개입하는 연구소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나아가 웹진의 필자들을 모시고 글에 관한 깊은 후속 토론을 이어가는 “웹진 백스토리”와 연구원들의 연구 활동을 공유하는 “소소한 연구실” 코너를 오디오 채팅 SNS인 클럽하우스 플랫폼에서 격주로 진행하면서 연구소 회원 및 지지자들과 소통의 기회를 확대해나갈 것입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위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으나 제3시대는 다시 한번 “우리는 다만 우리 일을 할 뿐이오”의 마음으로 제3시대의 자리를 지켜내겠습니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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