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기획 기사] 감별사들을 위한 대답은 없다(김윤동)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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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별사들을 위한 대답은 없다



김윤동(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기획실장)

 

 

주얼리/액세서리 숍을 운영하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이거 ‘가짜’죠? 또는 ‘가짜라 변하죠?’라고 묻는 질문들이다. 숍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린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이런 진짜와 가짜를 묻는 질문들 아래에는 주얼리/액세서리 중에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은 가짜이고, 고가의 보석은 변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우주 속 광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귀금속이라고 불리는 순도가 높은 금, 은, 다이아몬드라도 변한다. 공기에 노출되고, 사람 피부에 닿으면 변한다.

 

변하는 것은 색 뿐만이 아니다. 색이 변하지 않더라도 보석은 잘 긁히고 깨진다. 무른 광석은 말할 것도 없고, ‘모스 경도’로 따졌을 때 가장 단단한 광석이 다이아몬드는 어떠한가? 어떤 것으로 긁어도 긁히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귀금속의 대명사가 바로 이 다이아몬드인데, 이 다이아몬드는 잘 긁히지는 않는 광물이지만, 결이 일정하게 나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잘 긁히는 금속과 부딪히게 되면 쉽게 쪼개지고 깨져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값어치도 당연히 변한다. 동네 금은방만 가도 알 수 있듯이 금을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이 다르다. 물론, 세계의 금 ‘시세’라는 게 변동하면서 가지고 있는 금값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수천만 원~수억 원을 주고 산 주얼리도 구입한 그 순간부터 값어치는 떨어진다.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값어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자체가 값어치가 변한다는 의미다.

 

조금 덜 변하고, 느리게 변할 뿐 모든 귀금속, 광석은 변한다. 다른 것보다 빨리 변하고 무르고 잘 깨진다고 해서 ‘가짜’라 불리는 것이 온당한가? 모든 금속이나 광물은 각자의 이름이 있다. 백금, 금, 은, 황동, 청동, 다이아 등. 이런 이름이 있는 모든 광물들도 변하는데, 상대적으로 지구에 매장량이 많고 색이 변하고 그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광물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아니라 ‘가짜’라고 불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가짜냐’, ‘가짜라 변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긴 설명을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간단히 대답한다. “금도 변해요. 조금 늦게 변하는 것뿐이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도쿄 올림픽 이후, 전과는 달라진 장면들이 보이곤 한다. 과거에는 메달 자체가 당연시되는 종목이나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 하거나 높은 순위를 얻지 못하면 대중들은 비난 일색이 되고 선수들은 귀국을 할 때면 고개를 숙여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이와 달리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경기 자체를 즐기고, 관람하는 이들도 선수들의 최선을 다 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인기종목, 대중적인 프로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아주 다양한 종목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는 아마추어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국위선양’을 따지며 대한민국의 메달 순위가 올라가면 국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적어지고, 선수 개개인이 최선을 다해 경연과 경쟁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서 스포츠의 본 취지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개인과 팀의 목표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탄식하고 애석해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저 메달을, 나아가 금메달을 딴 사람만이 ‘진짜’ 스포츠 선수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수 대우도 받지 못하던 시절은 이제 간 것 같다.

 

이제 차별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감별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든, 무엇이든 고유의 질서와 이름이 있다. 다짜고짜 ‘진짜예요? 가짜예요?’라고 물으면서 서열을 나누는 습속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누가 진정한 페미냐, 누가 진정한 진보냐,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 누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등과 같은 소위 ‘진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아야 한다. ‘진정성’의 문제를 개인과 특정 팀이 자발적으로, 내부적으로 묻는 것에는 의의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질문이 바깥을 향할 때는 분명 차별의 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서열을 나누고 차별을 행하는 습속을 드러내기 전에 한 숨을 쉬고 자신을 객관화해볼 수 있는, 성찰적이고 겸손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진위’의 경계를 끝없이 허물고자 하는 이 시대의 요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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