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기획 기사] 이발 잔혹사(허요한)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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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 잔혹사



허요한(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


 

1.


군 복무시절 나는 이발병을 겸했다. 당시 유행했던 머리가 모히칸 스타일이었고, 주말 동안 수십 명의 머리를 자르면서 어느덧 내 실력은 미용실에서도 인정할 정도가 되었다.(휴가 나간 선임이 미용실에 갔는데 머리 어디서 했냐고 물어보았다는 것이다. 너무 잘 되었다며!) 모히칸 스타일이 유행한 지 두어 달쯤 되자 많은 장병들이 모히칸 스타일을 찾았고, 급기야 부대 내에서 모히칸 스타일은 금지되었다. 문제는 장병들 머리를 자르느라 정작 내 머리 자를 시간은 없어서 수더분해지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나는 모히칸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수시로 주의를 받았고 그때마다 내 머리를 잘라줄 이발병 후임을 뽑아달라는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놔야했다. 그리고 어느 주말 저녁 장병들과 간부의 이발을 끝낸 후, 머리를 잘라본 적 없는 후임병 한 명에게 ‘바리깡’을 쥐어주었다. 내 손이 안 닿는 곳만 그냥 밀어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귀차니즘과 약간의 반항이 섞여 그렇게 머리를 민머리 수준으로 밀었다. 자꾸 머리로 말 듣는 게 싫었다. 멋 부릴 일도 없었고. 군 규정상 문제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 주부터는 만나는 젊은 간부마다 ‘반항하냐’, ‘왜 머리를 짧게 잘랐냐’는 말을 했다.(상사 이상 급은 오히려 머리를 시원하게 밀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심지어 나랑 동갑이었던 한 하사는 외벽 계단에서 나를 마주치곤 대뜸 내 머리를 손바닥으로 내려치더니, 짝! 하고 달라붙는 소리에 깔깔 웃는 것이었다. 왜 머리를 **같이 잘랐냐며. 그리고선 기분 나쁘냐면서 말했다. “억울하면 니가 간부해 **아.”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였다.

 


2.


대학에서 조교를 하면서 머리를 길렀다. 길이는 <미생> 한석율(변요한 분) 정도였던 것 같은데, 옆방 행정 직원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한 남직원은 내게 화장실 가면서 마주칠 때마다 깜짝 놀란다며, 내가 잘못 들어왔나 확인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몇몇 여직원들은 날 보며 웃었고, 그중 한 명은 입시 서류를 받는 공공장소에까지 나를 찾아와 “머리 좀 자르면 안 되겠냐. 여자 같아 보여서 싫다. 내가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엄마로서 아들 같아서 그런다.”라고 굉장히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물었다. 행정실 직원들의 의견을 모아 온 것이냐, 개인 의견이냐. “내 개인 의견을 전달한 것이지만, 다들 나처럼 생각한다.”라는 대답을 들었다.


한번은 이런 경험도 있다. 수업 시간에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이 있다는 민원이 들어와 조치를 위해 강의실에 갔다. 나는 그분께 조용히 다가가, 죄송하지만 수업을 진행해야 하니 불만사항이 있으면 밖으로 같이 나가서 제가 들어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크게 소리쳤다. “당신 머리 스타일이 맘에 안 들어!” 강의실 안에는 어이없어 웃는 사람이 반, 그의 순간적 재치에 웃음이 터져 웃는 사람이 반이었다. 그 이질적인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결국 그날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 ‘단정한’ 내 머리를 보며 너무 예쁘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의 입모양을 꽤 유심히 보게 되었다.

 


3.


재밌는 건 그들은 대대장의 긴 머리와 심지어 주임원사의 긴 머리, 교수의 긴 머리나 민머리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거나 칭찬만 늘어놓는다는 점이었다.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구석이든 만만해 보이는 이들의 신체에만 반응하며 통제하려 들었다. 하지만 최고 권력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신체 통제의 틀을 제시하고, 통제의 구체적 현장에서 자신은 물러나 있으며, 동시에 자신은 통제에서도 비켜 서 있었다. 물론 언어에 대한 통제도 있다.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잘 못들었습니다.”, “야! ***아~”, ”이병 허**!” “학장님실”, “교수님실”, “팀장 호칭 쓰지 말고 실장 호칭 사용해라”, “허선생 너 임마”, “너 이 개새끼야 너는 에미 애비도 없냐”

 

내가 실제로 듣거나 강제된 말들이다. 자연스레 생각하게 된다. 어떤 말을 쓰지 말아야 할지를 정하고,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권력에 대해.


나는 이대로라면 걱정이 앞선다. “우리에게는 오조오억개가 넘는 머리 스타일이 있으니 제발 서로의 개성가지고 뭐라 하지 말자…쵸키포키”라고 말했다가는 ‘특정 성’을 차별했다는 이유로 법정대응을 해오지는 않을까. 이대로라면 걱정이 앞선다. 유도나 역도 계열 선수들에게는 아무 말이 없다가, 혹은 핸드볼이나 배구, 농구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가, 여성 궁사가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보이는 양궁에서 혐오를 내뿜는 것. 남성 탁구 단식에서 극적인 대역전으로 16강 진출하는 경기는 방영되지 않고, 주요 방송 3사에서 ‘귀여운 소녀’ 이미지로 탁구선수의 투쟁심을 왜곡되게 성별화하여 소비하는 것. 중국계 출신과 동남아계 출신 ‘코리안’들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아직도 철저한 이방인인 것. 탈레반을 피해 한국으로 온 소녀들이 히잡이나 부르카를 쓰면 ‘이슬람’이 되고, 머리를 짧게 자르면 ‘페미’가 되는 것. 알라를 믿어 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면 ‘테러의 심적 동조자’가 되고, 수염을 기르고 돼지고기가 들어간 라면이나 과자를 먹지 않으면 ‘역시 뼛속까지 이슬람’이 되는 사회.

 


4.


학기 초 학장실에 손님이 자주 왔다. 서무계 선생님이 내게 차(茶)를 타는 일은 여자 조교 선생을 시키라고 몇 번을 말하길래 악착같이 남자 조교들만 차를 타서 ‘대령’했다. 한번은 외국에서 온 연구자 둘이 학교 간 협력을 위해 방문했다. 평소와 같이 차를 타서 별 생각 없이 내어주자 그 연구자 둘이 내게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차를 내어주는데 ‘레이디 퍼스트’를 지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방안의 구성원은 남성 학장, 남성 연구자 둘에 통역을 담당하신 여성 선생님 한 분이었다. 나는 황당해서 벙 쪄있는데, 오히려 통역을 맡으신 선생님께서 그냥 가까운 쪽부터 내어드린 것이라고 대신 설명해 주셨다. 그들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나를 쳐다보았다. “앉아있는 니들 인적 구성이나 돌아보고, 차는 좀 네 손으로 타먹어라.”라는 말을 영어로 쏘아붙일 수 없는 내가 원망스럽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나에게 ‘꼽’을 주었던 이들을 바라보면서도 외면하거나 동조했던 절대 다수 속에서, 그들을 제지하고 같이 화를 내 준 건 단 한 명이었다. 비정규직 강사였다. 이 글을 통해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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