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여름, 기획기사] 달무티 소감문 : 사실 저 어릿광대 두 장 가지고 있었어요... (유영상)

2023-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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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티 소감문 

: 사실 저 어릿광대 두 장 가지고 있었어요...











유영상(제3시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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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 대화를 진득히 했을 무렵 청년 교우님들과 무얼 하며 재밌게 놀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드게임 ‘달무티’를 꺼냈다. 난 여기서 그날 달무티를 하며 느꼈뎐 묘한 소감을 써보려 한다.


달무티 게임은 여럿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각각의 수싸움을 벌인다. 카드를 균등하게 나눠 가지고 순서에 따라 시계방향으로 진행된다. 기회는 공정하지만, 누구나 갓난 아기로 태어나서 나이를 하나하나 먹는 동안 다양한 굴곡을 거치듯, 이 게임에서 그 굴곡은 계급사회의 성격을 담아 게임을 좌우한다.


“인생은 불공평합니다.” - 보드게임 ‘달무티’ 설명서 中


이 게임엔 계급이 있다. 달무티(일등)와 농노(꼴등), 그리고 중간 계급이 있다. 카드도 균등하게 받았고 무조건 돌아오는 순서가 있지만 계급에 따라 카드의 질이 천지 차이다. 보통 계급이 높은 쪽이 좋은 카드를 몽땅 가져간다. 물론 운이 좋으면 농노도 달무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확률은 매우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세금 상납’이 주요하기 때문이다. 수싸움에 계급을 더 해 역전을 무력화하고 체제 유지, 심지어 체제 순응 마저 불러 일으킨다. 우연에 맡겨 카드를 균등하게 분배해도, 계급에 따라 세금의 정도가 달라진다. 농노는 달무티에게 무조건 가장 좋은 카드 2장을 상납해야 하는 반면 달무티는 농노에게 카드를 그의 ‘자유’에 따라 상납한다. 차이는 여기에 있다. 달무티는 농노에게 가장 좋은 카드를, 아니면 가장 나쁜 카드를 줘야 할 의무가 없다. 그저 자신이 가진 카드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해서 아무거나 농노에게 주면 된다. 가장 나쁜 카드를 줘도 되고, 그럭저럭 괜찮은 카드나 좋은 카드를 줘도 된다. 이때 농노는 기대한다. “우리 달무티님이 나에게 선한 아량을 베풀어 주시지 않을까?” 


아무튼,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최대한 간략하게 규칙을 설명했는데, 게임의 결과는 거의 계급과 비례한다. 로또와 같은 ‘대박’이 있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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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두 번째 판이었다. 나는 6명 중 4등이었다. 달무티님에게 세금을 상납하지 않아도 된다. 마찬가지로 달무티님의 선한 아량은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매정했으면 좋겠다고, 선한 아량 보단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따른 자유를 활용하여 농노에게 가장 나쁜 카드를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균등하게 배분된 카드를 받았고,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나에겐 어릿광대 2장이 있었다.


[어릿광대 카드]



어릿광대 카드를 두 장 모두 가지고 있을 땐 특별한 규칙이 발동된다. 바로 혁명이 일어난다. 달무티는 농노가 되고, 농노는 달무티가 된다. 또 나와 같은 중간 계급 사람들끼리도 계급이 바뀐다. 계급이 역전된다. 운명의 카드가 나에게 있기에 혁명을 선언하면 된다. 이는 어릿광대를 가진 자의 자유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나는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다. 낱개로 사용해서 내 점수에 보탰다. 왜냐하면 굳이 3등과 4등이 계급을 맞바꾸고 농노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것 보단 낱개로 냄으로써 내가 농노와 멀어지는 점수를 획득하는 것이 나에게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판은 끝이 났다. 결과는 똑같았다. 농노는 꼴뜽(농노), 달무티는 1등(달무티), 나는 4등. 꽤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다시 게임은 시작됐고, 또 다시 농노는 처량한 눈으로 ‘전지전능하신’ 달무티님을 쳐다보며 선한 아량을 베풀어 주길 기대했다.(그 뒤로 그 교우님은 농노를 3번 연속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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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무티를 하면 할수록 두 가지가 아주 묘했다. 첫째는 세금 상납이고, 둘째는 혁명이다. 이것 역시 게임이기 때문에 우연적 요소와 수싸움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이 게임의 판도에 가장 큰 영향일 끼치는 건 다른 것도 아닌 가장 처음에 하는 서로 간의 세금 상납이었다. 농노가 우연의 힘과 수싸움으로 역전을 하고자 했으나 세금 상납으로 가장 좋은 카드를 바쳐야 하기에 애초에 “불공평한” 여건 속에서 불가능한 싸움을 하게 된다. 그래서 농노가 기대해 볼 수 있는 건 달무티님의 선한 아량 밖에 없게 된다. 묘한 건, 농노에겐 가장 좋은 카드를 상납하도록 강제되지만, 달무티는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카드 중에서 농노에게 주면 된다. 그에게 부여된 자유는 도덕과 권리 사이에서 계산할 수 있는 권력을 생산케 한다. 그런데 더 묘한 것은 혁명이었다. 농노를 제외한 다른 계급 사람들은 혁명을 절대 일으키지 않는다. 아예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된다. 차라리 어릿광대 두 장으로 남 좋은 일에 사용하기보단 나 좋은 일에 사용하고, 중간계급의 사람들은 인생의 한 방 보단 지금 이 순간에서 더 나은 이득을 찾는다. 바로 여기서 게임(사회)의 판도를 바라보는 계급적 차이가 공고해진다.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왜 농노는 달무티의 도덕에 기댈 수 밖에 없는가, 아니 왜 그렇게 추동하는가? 왜 혁명은 일어나지 못하고, 어릿광대를 사용하는 방도에 따라 계급적 차이가 드러나는가? 농노의 의지와 개인의 사유를 떠나 합법적 갈취(세금 상납)가 공고해짐으로써 해결 방도가 달무티의 도덕적 행동에 환원되는 경향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마지막으로 달무티는 보드게임인가 계급우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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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번 웹진 여름호 주제가 세속적 종교성이다. 이에 대해 별말 하지 않겠다. 어릿광대 두 장에 내 손에 있는 순간 혁명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인지하지만 나의 이익에 사용하는 세속성, 달무티의 세금 ‘베품’에 모든 선량한 이미지와 자수성가의 기대를 투여하여 그 시간의 도래를 고대하는 농노의 종교성, 무엇보다 농노가 달무티가 되는 것이 혁명으로 관철된 보드게임의 규칙이야말로 세속적 종교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끝.


ⓒ 웹진 〈3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