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 활동가의 글쓰기] 장애와 섹슈얼리티 다시 보기(유진우)

202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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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 섹슈얼리티 다시 보기

 

유진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옥바라지선교센터)

 

2005년에 장애인의 성 이야기를 담은 영화 〈핑크 팰리스(Pink Palace)〉(서동일 2005)가 상영되었다. 〈핑크 팰리스〉는 “오랜 세월 무성의 존재로 여겨져 온 장애인들이 각자 자신의 성(性)을 이야기”1)하는 영화라고 소개되었다. 즉, 그동안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란 ‘드러내서는 안 될 이야기’, ‘세상에는 존재하지만, 세상이 몰라도 되는 이야기’로 간주되어 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자막 한 대목이 나에게 꽂혔다.

 

“장애도 심해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그의 소원은 ‘섹스 한 번 해보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동안 사회가 장애인을 ‘무성적 존재’로 봐 왔음을 단편적으로 보여 준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인 최동수 씨는 “총각딱지 한번 떼 보는 것”2)을 바라며 성매매 업소를 방문한다. 하지만 그는 거부를 당하고, 영화감독은 그를 찾아가 성매매 업소 출입을 재시도하게끔 한다. 김은정은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3)에서, 주로 장애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루는 〈핑크 팰리스〉에서 장애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간과되고 성매매 여성은 장애 남성의 소외감을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존재가 된다고 밝혔다.4) 김은정은 장애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성산업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논한다.

 

“성매매의 불법 여부와 관계없이 자본주의 시장은 장애남성을 성매매의 타깃 집단으로 설정하는 것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다. 남성의 욕망에 맞춰진 산업에 장애남성을 결부시키는 논리에서 성산업에 많이 종사하는 장애여성에 대한 고려는 거의 없다. 섹슈얼리티에 관한 담론은 대체로 여성의 몸을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인식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의 성적 권리를 법적으로 분석하는 데에는 여성의 관점이 중요하다”5)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의 몸을 상품화하는 성산업은 장애로 폭을 넓혀도 장애 남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이때 성매매 여성 그리고 성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장애 여성의 서사는 삭제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섹슈얼리티 담론에는 여성이 소외되어 있다. 이로 인해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의 경험과 구조적 폭력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사회적·문화적·역사적으로 도구화되어 온 성매매의 처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동시에 더욱 어려워지는-문제가 된다”6)는 것이다. 이처럼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문제, 특히 성매매 업소에서 해소되어야 하는 ‘장애 남성의 성욕’으로 간주할 때 장애인에게 친밀성의 관계는 불가능한 것으로 고정되고, 장애 여성의 성산업 유입의 구조적 문제는 가려진다.

 

따라서 장애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억압과 소외의 다층적 성격을 이해하면서, 장애인의 성적 권리가 체계적으로 박탈되어 온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야기』7)는 대만에서 장애인의 성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 장애인의 성에 대한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한다.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엄마와 아빠는 도라를 사랑한다. 그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도라를 데려가 피임기구를 삽입하고 딸을 대신해 낙태를 결정하는 일이다.”8)

 

도라는 지적장애 여성이다.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성관계를 하고 임신을 했다. 부모는 도라의 낙태를 결정한다. 이 행동에 담겨 있는 의미는 “장애인이 아이를 양육할 수 있어?”라는 의구심이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인해 장애인의 섹슈얼리티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아닌 부양의무자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진 일로 간주된다. 이러한 생각은 ‘우생학’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장애학의 도전: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9)의 저자 김도현의 말을 빌리자면, 우생학을 창안한 골턴은 우생학을 “정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중략) 그리고 인종의 질을 최대한 발전시키는 데 관련된 모든 분야를 취급하는 학문”10)으로 설명했다. 골턴은 우생학을 포지티브 우생학과 네거티브 우생학 두 가지로 분류한다. 포지티브 우생학이 우수한 형질을 지닌 사람들의 재생산을 촉진한다면, 네거티브 우생학은 열등한 형질을 지닌 사람들의 재생산을 막는 데 초점을 둔다고 한다.11) 도라의 부모의 경우, 네거티브 우생학의 관점에서 지적장애인 도라의 재생산을 막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우생학이라는 학문을 토대로 단종법이 시행되었다. 단종법이란 단종수술을 합법적으로 허락하는 것이다. 이는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를 전제로 한다. 태아가 장애를 가졌는지를 확인하고, 장애를 가졌다면 낙태를 할 수 있게 한다. 이는 ‘T4 작전’에서 시작되었는데, ‘T4 작전’이란 독일의 나치가 장애인의 돌봄과 비장애인의 양육 중 무엇이 더 효율적인지를 판단하여 장애인을 돌보는 데 비용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을 확인하고 30만 명의 장애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이렇게 사회에서 장애인은 점점 사라져 갔다.

 

우생학이 활발했던 시절에는 장애인의 성생활이 잘못된 행위로 간주되었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산전 검사와 선별적 낙태이다. 더 이상 장애인이라는 존재를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데 일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는 장애인에게서 섹슈얼리티를 지워버렸고, 비장애인 이성애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장애인은 점차 섹슈얼리티에서 멀어져 갔다.

 

요즘 운동에 관심이 많은 나는 길을 돌아다니다가 헬스장을 유심히 본다. 헬스장의 홍보물에는 비장애인 남성이 옷을 벗어 던진 채 올곧은 몸을 하고 찍은 ‘바디 프로필’이 실려 있다. 그 사진은 “나는 ‘정상적인 몸’이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사진을 본 후 바로 나의 몸을 바라본다. 근육은 있지만 비틀어진 몸, 설 수 없는 몸, 경직이라도 오는 경우에는 손은 하늘로 뻗고, 다리는 앞으로, 뒤로 향하고, 머리는 45도 각도로 돌아가는 몸을 발견한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섹슈얼리티는 올곧은 허리와 복근, 역삼각형의 남성의 몸에만 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생각은 장애인, 여성, 퀴어 등 무수히 많은 존재를 곧바로 배제한다. 그리고 “너희도 성적인 몸이 되고 싶으면 몸을 올곧게 만들어!”라고 말한다.

 

이처럼 장애인을 무성의 존재로 여겨지도록 하고 당사자 또한 그렇게 적응하여 살게 만든 정상 섹슈얼리티 이데올로기를 전복해야 한다. 비틀어진 몸도 성적인 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장애인은 열등한 존재라서 쓸모없고 성생활을 하지 못하며 해서도 안 된다는 우생학적 인식과 싸워야 하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성적 권리의 다층적인 문제를 함께 다뤄 나가야 한다. 그럴 때 더 많은 장애인들이 본인의 (무)성적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비틀어진 몸이 어떻게 하면 올곧은 몸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가 아닌, 나의 비틀어진 몸이 어떻게 성적인 몸으로 변화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동안 비장애인 남성의 몸을 기준으로 규범화된 ‘정상 섹슈얼리티’, ‘정상인의 몸’을 향해, “너희가 말하는 성적인 몸은 없어, 다양한 몸이 존재할 뿐이야!”라고 한 방 먹여 주고 싶다.



1) 홍성은, 「중증장애인도 성(性)을 누릴 권리 있다」, 이천뉴스, 2007.03.27.

2) 핑크 팰리스(Pink Palace) 상세정보, 씨네21, http://www.cine21.com/movie/info/?movie_id=18528

3) 김은정, 강진경·강진영 역,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 후마니타스, 2022.

4) 위의 책, 322-324쪽.

5) 위의 책, 329쪽.

6) 위의 책, 330쪽.

7) 천자오루, 강영희 역,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 사계절, 2020.

8) 위의 책, 78쪽.

9) 김도현, 『장애학의 도전: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 오월의 봄, 2019.

10) 위의 책, 91쪽.

11) 위의 책, 같은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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