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봄, 활동가의 글쓰기] 비장애중심주의 정치에 균열을 내다! : 20대 대선과 탈시설장애인당(유진우)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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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애중심주의 정치에 균열을 내다!

20대 대선과 탈시설장애인당 

유진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탈시설장애인당’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출범한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계가 2020년 4월 7일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겨냥해서 만든 ‘가짜 정당’입니다. 59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되어 있는 이 ‘가짜 정당’은 탈시설을 비롯한 장애 관련 정책요구안을 서울시장 후보에게 전달했으며, 정책에 관한 구체적인 실천계획과 예산반영을 요구하고, 약속을 받아내기 위한 정당 활동을 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과 그 후보는 ‘가짜 정당’, ‘가짜 후보’이기에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하지 않고,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기간까지만 활동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2020년에는 2021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2021년에는 2022년의 20대 대선을 겨냥해서 활동했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의 정책요구안에는 2020년에 11개, 2021년에 9개의 의제가 제시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20대 대선을 대상으로 한 2021년의 활동과 ‘그 이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21년에 탈시설장애인당은 ‘가짜 대선 후보 경선’을 진행했습니다. ‘가짜 경선 후보’들은 ‘지역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자!’라는 목표하에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권리, 활동지원서비스 등 다양한 의제 중 하나씩을 담당해 장애 정치를 가시화하였습니다. 이동권, 노동권, 교육권, 탈시설권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하 CRPD)에 명시된 것이기도 한데요. CRPD의 골자는 장애인이 탈시설을 하여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삶을 영위할 때 걸림돌이 없도록 인프라를 구축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걸림돌이란 장애 정책의 부재로 인한 지역사회에서의 배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탈시설장애인당의 9명의 경선 후보들이 각 의제에 맞는 슬로건을 가지고 경선에 뛰어들어 거리 유세를 시작했습니다.

 

‘가짜 후보’들의 유세는 ‘탈탈원정대’와 ‘거리선전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탈탈원정대는 2021년 11월 22일~26일, 수원에서 출발하여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종료하였습니다. 탈탈원정대는 ‘탈탈 털자! 비장애중심사회를!’이라는 주제로 후보 9명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애 의제와 장애 정책을 알린 유세입니다. 탈탈원정대를 마친 후인 2022년 1월 12일~2월 14일에는 광화문역 1-1 승강장에서 거리선전전이 진행되었습니다. 광화문역은 ‘장판’에서 오랜 기간 투쟁한 곳으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투쟁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러한 광화문역 투쟁은 무려 1842일 간의 투쟁 끝에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을 받고 종료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화문역은 역사 내 엘리베이터 설치를 오랜 투쟁 끝에 이루어낸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장애인 투쟁의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곳에서 거리선전전이 진행되었습니다.

 

탈탈원정대 출정식 현장(출처 : 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


위와 같은 유세 이후, 경선의 과정을 통해 대선 후보가 결정되었습니다. 경선은 ‘베스트포토상’, ‘이것도 노래다’, ‘후보자 사다리타기’, ‘최종후보자 발표’의 절차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탈시설장애인당의 경선 방식은 기존 정당의 경선 방식과 매우 다릅니다. 기존 정당의 경선이 몇 가지 주제로 토론을 한 뒤 투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반면, 탈시설장애인당의 경선은 어떤 후보가 시민들에게 장애 정책을 더 잘 알렸는지, 투쟁현장에 많이 참여했는지, 독창적이었는지를 평가하는 절차로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선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닌 ‘장애 정책과 의제를 가시화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특히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 정책의 세팅을 근본적으로 새로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습니다. 기존의 장애 정책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구조를 유지하면서 장애인에게 파이를 나누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간 기업의 경우 2.3%, 공공기관은 3.4%의 장애인을 채용하도록 하는 장애인의무고용제는 장애인에 대한 시혜적이고 동정적인 태도를 넘어서지 못 한다는 한계를 가집니다. 이처럼 기존의 비장애중심주의적 정치가 장애인을 정책의 ‘수혜자’로 규정했다면,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 의제를 직접 알리고 시민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장애인을 ‘주체’로 선언하며 장애인 권리 보장을 당당히 주장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20대 대선 당선인 윤석열의 장애 정책을 살펴봄으로써, 비장애중심적인 기존 장애 정책의 한계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윤석열 당선인의 장애 정책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인예산제’입니다. 개인예산제는 주어진 장애 예산 내에서 본인이 원하는 복지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이는 누군가가 활동지원 서비스를 이용하면 다른 이가 이용하는 서비스의 시간과 비용이 절감됨을 의미합니다. 물론 본인이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장애 예산이 현저히 적은 대한민국에서 예산 증액 없이 적용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정책입니다. 한국의 장애 예산은 2022년 기준 4조 700억이며, 이는 OECD 국가 평균 이하의 수준입니다. OECD 장애 예산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조건에서 개인예산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재 편성된 장애권리보장 예산을 두고 장애인들이 파이 싸움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며 250만 장애인을 대상으로 ‘예산 분배의 효율성’을 추구하겠다는 식의 태도는 윤석열 당선인이 장애인을 시혜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해 줍니다.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판의 투쟁으로 법이 만들어지고 정책이 새롭게 구성되어도 예산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이 요구하는 탈시설권리 예산은 788억입니다. 현재의 탈시설권리 예산은 24억에 불과합니다. 반면 현재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은 6224억입니다. 6224억과 24억이라는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장애인에게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래? 아니면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살래?”라고 묻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소한 탈시설권리 예산과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을 동일하게 구성한 후 장애인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차별적 환경에 고착시키는 행위를 이제는 멈춰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탈시설장애인당의 존재는 의미가 많습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장애인의 현실과 괴리된 시혜적 정책, 비장애중심주의 정치에 균열을 내면서, 새로운 정치를 만드는 운동입니다. 탈시설장애인당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장애 중심 사회에 균열을 낼 것입니다. 여러분 탈시설장애인당에서 함께 활동하지 않으실래요? 함께 나아갑시다. 모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향해서!


출처 : 탈시설장애인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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