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프로그램 리뷰] 한 여름 밤의 강의(이현지)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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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밤의 강의



이현지(기독연구원 느헤미야 목회학연구과정)

 


휴가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병무학교 여름학기 “오클로스 속 여성-민중의 목소리를 찾아서”강의는 여름밤의 무더위만큼이나 뜨거웠다. 4회에 걸쳐 ‘갈등, 몸의 정치학, 약자들의 저항, 여성들’이라는 반짝이는 별자리를 찾아 이끌어주셨다. 정혜진 박사님의 열정적인 준비와 밀도 있는 강의는 무더위도 잊고 마가복음의 이야기 속으로 퐁당 빠져들게 했다.

 

정혜진 박사님의 마가복음 소개는 민중신학의 맥락에 있다. 그러한 자신의 해석의 경향을 거슬러 올라가면 안병무 선생님이 해놓으신 해석의 큰 틀이 있다고 안내해주셨다. 아래로부터 읽는 마가복음이라는 분명한 시선과 문학비평, 사회학적 비평이라는 방법론을 더해 소개해 주시는 내용들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의 듣는 내내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해주셨고, 마가복음 서사 구조에 익숙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이해할 수 있게 반복해서 설명해주셨다.

 

마가복음서의 몇몇 단편들만을 읽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읽을 때 저자가 의도하는 핵심을 주시할 수 있다. 강의를 통해 마가복음 전체를 다루지 못했지만, 전체 흐름을 볼 수 있도록 ‘성좌적 읽기’를 시도했다. 성좌적 읽기는 순차적으로 읽는 시간적 독해가 아닌 전체 에피소드 안에서 반짝이는 몇몇 본문을 중심으로 마가복음이라는 은하수에 별자리를 그리는 방식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와 다른 에피소드 간의 상호연관 속에서 공간적인 독서로 확장되는 읽기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소개해주신 사회계층구조 속에서 마가복음의 논쟁/대화를 들여다보는 방식은 마가복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 즉 서사의 주인공 예수의 주장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1강에서는 예수가 마비환자를 치유하면서 죄사유의 권한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을 들여다봤다. 이 장면은 예수와 성전 체계의 갈등을 설정하는 첫 대목인데, 죄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성전을 향한 예수의 비판 정신과 그 논리를 들여다보면서 예수의 죽음을 초래한 마가복음의 핵심 갈등을 살펴볼 수 있었다.

 

2강에서는 ‘몸의 정치학으로 보는 하혈하는 여인의 치유’라는 주제로 당시 사회에서 ‘정결’이라는 경계선이 하는 기능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다루었다. 경계 바깥에 있는 ‘부정한’ 사람들로부터 경계 안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려하는 방어의 체계를 주목한다. 하혈하는 여인을 ‘정결’이 젠더와 질병을 중심으로 교차적 차별을 양산했던 현실에 저항했던 인물로 읽어내는 방식은 묵종을 강요받았던 교회 안에서의 경험과 교차하면서 뜨거우면서도 묵직한 울림이 있었다. 경계 바깥에서 손을 뻗어 예수에게서 하나님을 능력을 훔쳐간 한 여인을 통해 마가가 그리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몸의 정치학’이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는 경험은 오늘날 사회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을 떠오르게 했다.

 

3강에서는 마가 서사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권위논쟁’을 다루었다. 권위논쟁은 예수가 성전에서 시위를 일으킨 후 성전 엘리트들과 만나 나누는 첫 대화 장면이다. 적대자들 앞에서 예수가 자기를 방어하면서 한 발언을 정치학자 제임스 스코트의 ‘약자들의 화법’을 참고하여 읽는 방식을 소개해주셨다. 이 방식을 통해 적들의 무능을 겨냥한 날카로운 공격을 목격한 순간은 통쾌했다.

 

4강에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최후를 지켰고 그가 살아난 빈 무덤을 처음으로 목격한 증인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성들을 소개한다. 마가복음 서사 전체에서 ‘제자’, ‘사도’로 칭해진 것은 남성들이었지만, 그들이 다 떠나간 자리에서 예수를 끝까지 따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따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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