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기획 기사] 우리가 아끼는 것들(이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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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끼는 것들



이성철(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

 


아끼다보면 더 애틋해 지는 것들이 있다. 돈, 새로 산 옷, 시간, 읽고 싶던 책, 사랑, 먹고 싶은 음식, 용서, 친구. 느린 나는 이런 것들을 아주 소중히 또 천천히 묵혀둔다.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책을 어느 날 꺼내 읽으면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용서와 냉장고 안의 음식은 입에 담지 못하고 버려진다. 아마 내게 아끼는 마음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함부로 쓰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밖에 나가 밥 먹을 시간을 아껴 책상에 앉아 회의를 하며 밥을 먹고, 만나지 못해 더 이상 취향을 모르는 친구에겐 선물목록 베스트 선물을 카톡으로 보낸다.

 

어떤 것을 마주해야할 때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미루고 미루다, 아끼다 똥이 되는 그 직전의 순간을 사랑하며 쓸모 있음과 없음, 그 사이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을 지금 하느냐, 할 이야기가 있을 때 하느냐. 이 안주를 지금 이 술과 함께 먹느냐, 나중에 다른 술과 함께 먹느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날도 배달 어플로 어렵게 저녁메뉴를 고르고 배달 도착 전, 기숙사 앞으로 나가는 길에 Y를 만났다.

 

몇 년 전에 알고 지내던 Y는 3년 만에 만나 복도를 마주하고 서로의 앞방에 살고 있다. 마주보며 산 지 반년이 지나가지만 배달음식을 받으러 방을 나오다 마주칠 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서로의 방 앞에서 마주치면 안부와 손에 든 배달음식 메뉴를 물었다. 그날 친구는 메뉴가 아니라 본인이 요새 살이 빠진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원래 마른 체형의 친구였는데 정말 살이 더 빠져보였다. “야 임마 우리 지금껏 헛살았어, 살을 빼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라며 배달 음식 봉지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는 책상에서 약봉투를 가져와서 알록달록한 약들을 보여줬다.

 

이야기인즉슨, 살 빼는 약을 처방받아 먹는 친구가 추천해줘 약을 먹으니 3주 만에 5키로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계속 식욕억제제를 먹고 있다고. 정상체중이지만 직장생활로 살을 뺄 시간이 없어 스트레스라고 말하니 체중도 BMI도 재보지 않고 약을 처방해줬다는 것이다. 처방받은 약은 탄수화물 흡수를 방해하는 마약류인데, 하루에 6개의 알약이 들어있는 약 한 봉지와 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닭가슴살 하나, 치즈 한 장 정도를 먹으면 문제없이 살이 빠진다고 했다. Y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약의 효과를 설명해줬다. 전엔 식욕억제제나 다이어트 약을 먹는 사람들은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이어트 한다고 굶은 뒤 늦은 밤 폭식하고 오는 자괴감이 없어져서 좋고 무엇보다 약 한 봉지가 밥값보다 가성비가 좋아 매끼 먹을 메뉴 고르지 않아도 된다, 싸고 배고프지 않으니 약을 먹지 않는 게 바보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등등. 그래도 같이 나가서 삼겹살은 한번 먹자고 약속을 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Y는 약을 먹은 후로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아도 먹는 양이 줄었다고. 같이 먹는 밥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서로의 안부 묻기를 주저하고, ‘조만간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를 아끼며 살아간다. 약속이 없으니 머리를 자르는 기간이 미뤄지고 계절이 지나도 새 옷 사기를 주저한다. 연결되려던 노력이 줄어들고 우리는 이제 무언가를 하지 않음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배달 어플에 1인분 주문이 있지만 가격과 양은 1인분스럽지 않아 1인 가구의 식사는 대단하거나 초라하다. 돈을 아끼거나 건강을 아낀다지만 사실 둘 다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서로가 아끼는 것들에 조금씩 가까워져 서로를 아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좋겠다. 오늘 저녁엔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다면, 한 끼 밥이 처리하고 때워야 하는 일에서 조금은 의미 있는 일로 변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가 상하기 전에 나는 내 방문을 열고 너의 문을 두드려 우리 같이 밥 한 끼를 먹자. 시간이 늦었으면 조금 식상하지만 치킨도 좋아. 맥주는 내가 가져갈게. 그렇게 조금씩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아끼지 말고 서로를 아끼자.

 

Y와 인사를 하고 들어와 배달 봉투를 풀고 조금 식은 삼겹살을 먹었다. 1인 세트였으니까, 그뿐이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포기하거나 방치하지 않았다. 삶과 힘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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