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기획 기사] 끌어 모으지 못하는 영혼들에게(이성철)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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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어 모으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이성철(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

 


213호에 사는 친구가 222호 방문을 두드렸다. “야 성철, 성철, 너 지금 1억이 생기면 뭐 할 거냐? 지금 바로” 아무래도 배가 고프거나, 신형 차가 출시 됐다거나, 친구가 비트코인으로 돈을 벌었다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1억이면 지금 바로 수업 끄고 치킨이랑 맥주 시키고 남은 돈은 통장에 넣어둘래” “그럼 차는 뭐로 살 건데?” 독일에서 맘에 드는 차가 나왔나보다. 1억,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금액이다. 그래도 어느 날 계좌로 1억이 입금 되었다는 알람이 울렸을 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로또를 사기 시작했다. 1억이 생기면 치맥과 뭘 살 수 있을까?

 

청년세대는 2019년 조국 사태와 2020년 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노력해도 기성세대만큼의 성공을 보장받지 못하는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청년들에겐 능력에 맞는 ‘공정한 경쟁’의 기회와 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이슈화되고, 사람들은 이것이 현재의 청년담론이며 청년세대의 독특한 현상이라면서 주목한다. 한편 전셋값과 집값이 폭등하고 있다는 기사가 매일 같이 보도된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빚투’(빚내서 투자)하는 2030세대가 크게 늘어났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넘쳐 난 지도 오래다. 빠르게 오르는 집값에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집을 사지 못할까 불안해진 2030세대들이 대출과 부모님의 도움을 포함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고 있다.

 

그렇다면 영끌과 비트코인이 청년들이 마주한 절망적인 미래를 타개할 창구인가? 어쩌면 그마저도 청년세대가 갖춰야할 또 다른 ‘스펙’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공정담론은 더 늦기 전에 영혼을 끌어 모아 빚낸 집을 마련하고 적금을 깨고 코인열차에 탑승하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한 공정한 경쟁이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젊음의 가능성과 도전의 기회를 저버리는 것은 손해라며 비난하는 현실이 우리의 삶을 개인의 능력으로 헤쳐나가야 하는 각자의 싸움으로 만들고 있다. 모두에게서 공정하게 희망만 가져가버린 사회는 끌어 모을 영혼이 있는 사람들만 살아남는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살아가느라 평범함을 잃어버린다. 모나지 않고 평범한 보통의 삶이 꿈이었는데, 나를 두고 멀어지는 ‘평균’ 때문에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지난 웹진에서 이야기한 쉐어하우스를 떠나 방을 옮겼다. 거리 둘 수 없는 공간에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한 것이 코로나 때문은 아니었다. 코로나 이전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끝나도 진행될 가난한 통장 사정으로 월 25만원인 방에서 한 학기에 40만원인 기숙사로 옮겨왔다. 그래도 미래를 위해 다들 하는 주택청약을 시작한 지도 3년쯤 되어 간다. 지난달까지 5만 원씩 넣던 주택청약인데, 10만 원 이하로 넣으면 의미도 없다는 친구의 말에 발을 동동 구르며, 그러나 고민 없이 10만 원으로 변경했다. 주택청약을 10만 원으로 늘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김밥 집에 들러 돈가스 김밥을 먹을까 제육 김밥을 먹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야채 김밥 한 줄을 포장했다. 미래를 위해 오늘 한 끼는 아쉽지 않았다. 다만 작고 소중한 내 청약통장으로 힘들게 당첨된 아파트를 살 수 있을지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절망적이게 지금도 집값은 오르고 있다.

 

222호로 들어와 혼자 책상에 앉아 유튜브를 켜고 김밥을 먹는다. 이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신다. 책상 옆에는 실내건조용 다우니 두 컵을 넣어 세탁한 빨래가 널려 있다. 나는 여기 살아있다. 이 방에서, 아마 또 다른 방으로. 조금 작은 방에서 더 큰 방으로, 다시 큰 방에서 혼자 살기엔 적당할 거란 방으로. 아마 앞으로도 집보다는 여러 모양의 ‘방’에서 살아있을지 모른다. 옆방의 친구도, 여러 형태의 방에서 홀로 또 같이 지내는 많은 이들도 말이다.

 

우리, 각자의 방에서 공정함이라는 환상에 씐 혼자만의 싸움을 멈추고 서로 살아있음을 확인하자. 골방에 갇힌 우리 가난한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흩어진 영혼들을 함께 살피고 다시 끌어 모을 날을 위해, 들숨에 재력과 날숨에 건강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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