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 여성주의, 교회 담론으로서의 실패와 가능성

백소영 (강남대학교 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
‘담론을 형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상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도 아니요, 여럿이 마음과 열정을 모아도 권력이 없으면 제도 안에 반영되기 어렵죠. 비대면으로 만난 이번 강의에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에, 한 분께서 “연구 빼고 다 하는 연구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저 역시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스무 해 남짓한 세월 동안 주어진(‘강요된’) 다른 일들에 지치고 아팠기에 공감이 되었거든요. 시니어 나이인데 관료제 진입은 21학번, 요즘 시절엔 이도 감사한 일이지만 여전히 저는 고민 중입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관료적 행정을 반복하러 교수가 되었나 싶은 자괴감에 탈주하고 싶다가도, 담론화하고 싶은 ‘기독 여성주의’를 제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은 이런 갈등 중에 쓰게 된 논문입니다. 그래서 학술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기독 여성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씨름하면서도 여전히 교회 내부 담론으로 끌어오는 데 실패한 자괴감을 달래는 과정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신학을 해오기는 했지만 하나의 ‘담론’으로 ‘기독 여성주의’를 생각해본 것은 100주년(2022년)을 기념하는 YWCA의 작업에 참여하면서였습니다. ‘기독 여성주의’를 정체성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그 내용을 담아내려는 Y의 연구 과정에 소위 전문가로서 초청을 받았던 것이죠. 그런데 참여 과정에서 문득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우리는 교회 밖에서 ‘기독 여성주의’를 논하고 있지? 페미니즘이 새롭게 대중화된 이후 제게 쏟아졌던 개인들의 질문에 응답하다 정리하며 썼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2018년)에 관심을 보인 개별 신자들과 목회자들은 있었지만, 제 주장이 ‘교회 내 기독 여성주의 담론화’를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기독 여성주의’로 말하자면 1980년대 이후 축적된 내용이 많은데, 저는 그저 총정리했을 뿐인데, 이 꽉 찬 내용이 왜 내부 담론이 되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질문에 답하며 저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의 내부 담론화에 실패한 원인으로 크게 3가지를 지적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압축적 근현대사가 ‘위기’의 연속 속에 진행되는 동안 권력을 선점한 소수 주체가 독점한 ‘우선성 이데올로기’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독립, 민주, 반공 등의 ‘우선적 담론’을 생산하는 헤게모니 집단의 관심사에 페미니스트적 의제는 배제되어 있었으니까요. 둘째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사고방식 속에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항대립적 사고방식 역시 문제였습니다. 네 편, 내 편 둘로 나눈 방식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적용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한국교회에서는 특히 가중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신학 성향과 유교적 엘리트들이 품었던 ‘척사위정’적 사고방식이 1세대 한국 기독교 남성 지도자들의 의미 구조 안에서 친화성을 가진 태도가 되었다고 풀었습니다. 당시 자유주의적 신학 사조를 ‘사(邪)’로 여기며 담론 싸움에 천착했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여성 장로직을 논하는 총회에서조차 성서 비평 방법론을 놓고 ‘정통 대 이단’ 논쟁에 집중했으니까요. 남자들끼리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 이슈는 사라져버렸죠. 셋째로, 저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 내부의 담론화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로 개신교 가부장제의 여성 담론이 가진 ‘낭만적 봉건화’의 함정을 들었습니다. 근대성과 함께 들어온 개신교가 한국에 유입된 시기엔 ‘부드러운 가부장제(사랑에 기반한 지도력)’만으로도 여성의 권리가 상승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여자가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시절에 ‘사랑받고 존중받는 존재’라는 말에 고무되어 ‘남성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지 ‘근대적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는 데 실패했던 것이죠. 하여, 근대적 가족의 주부가 되는 것이 마치 여성의 소명인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고 내면화하며 실천하였습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 ‘청교도적 여성 담론’이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는 여성들이 많았기에 균열 내지는 분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이 적었죠. 이러한 이유로 인해 ‘기독 여성주의’는 결국 한국교회 안에서 내부 담론화할 “역사적 아 프리오리”(푸코)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으니 여성이 살려면 교회는 버려야겠구나!” 행여 현재의 젊은 여성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봐 희망을 말해본 것이 글의 후반부입니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했지만 간당간당하긴 합니다. 이번 108회 장로교 총회 결과를 보니 갈 길이 더욱 멉니다. 그러나 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한국교회 내에는 기독 여성주의를 위한 “역사적 아 프리오리”가 없다지만, 그건 선택적으로 남성 신학자들이 교회 내부로 가져오지 않아서 그렇지 기독교 유산을 잘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전통을 그렇게나 사랑하는 한국교회인데 유대 전통에서도 풍부하게 찾을 수 있고 초기 기독교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소피아(지혜) 전통’ 텍스트의 발견을 무시하기 힘들 겁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두 이야기, 즉 성차를 차별하는 이야기와 은사를 구별하는 이야기가 존재했습니다. 전자가 계속 내려오면서 전통, 주장, 교리가 되었으나, 후자도 텍스트로 존재하고 실은 더 ‘성경적’입니다. 이 ‘전통’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우리는 ‘기독 여성주의’를 교회 내부 담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로, 우리의 컨텍스트가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제도)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전환기이니까요. 낭만적 상황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젠 전문성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자들의 주장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죠.
이러한 시절에, 저는 성서가 지속적으로 전하는 ‘살아내라’는 존재 명령과 ‘살려내라’는 구원 명령을 함께 붙들며 ‘다양하게 넘나들고 뛰어다니는 주장들’(담론)이 ‘기독 여성주의’라는 한 우산 안에서 꽃피었으면 합니다. 초기 페미니즘이 천착했던 것은 ‘살아내라’는 존재명령이었습니다. 여자는 보조자도, 그림자도, 제2의 성도, 반푼이도 아니다. 온전한 개인으로, 주체로 살아내라. 기독교 안에서도 선배들은 이 부분을 강조했죠. 그런데 ‘기독 여성주의’의 담론화 작업 속에서 제가 기독교 유산 안에 있는 ‘살려내라’를 소환하며 강조한 이유는 우리 상황이 21세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성들은 쭉 살려내는 일을 해왔죠. 돌봄 노동에 배치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20세기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살아내라’를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주류 담론은 무한 경쟁, 각자도생, 서바이벌을 부추기는 ‘자기 계발 담론’입니다. 남을 밟고라도 나만 사는 법을 정당화합니다. 여기 더하여 소비 자본주의는 타자와의 나눔보다는 ‘나를 플렉스(flex)하는’ 문화를 낳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페미니스트들의 수행성 중에는 종종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상승하려는 개인적인 욕망과 페미니즘의 언어가 섞인 ‘부정적 혼종성’이 관찰됩니다. 페미니즘의 근본 과제가 가부장제적 틀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일진대, 수탉들의 쪼기서열을 재구조화하기 위해 ‘기독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로 살아내는’ 과정 중에서 약자들을 ‘살려내는’ 구원명령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때로 구원 명령의 수행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내 존재와 소유의 일정 부분(어쩌면 전부)을 나누고 희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독 여성주의의 ‘살려냄’은 결코 전통이 강요한 수동적 복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내는 주체적 인간의 영성 깊은 선택이죠. ‘나로 살아내고 너를 살려내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 내의 담론이 되고 실천이 되도록, 교회 평신도 중심의 담론화 과정이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그 출발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기독 여성주의, 교회 담론으로서의 실패와 가능성
백소영 (강남대학교 교수, 기독교사회윤리학)
‘담론을 형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상가 한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일도 아니요, 여럿이 마음과 열정을 모아도 권력이 없으면 제도 안에 반영되기 어렵죠. 비대면으로 만난 이번 강의에서 서로 소개하는 시간에, 한 분께서 “연구 빼고 다 하는 연구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저 역시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스무 해 남짓한 세월 동안 주어진(‘강요된’) 다른 일들에 지치고 아팠기에 공감이 되었거든요. 시니어 나이인데 관료제 진입은 21학번, 요즘 시절엔 이도 감사한 일이지만 여전히 저는 고민 중입니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관료적 행정을 반복하러 교수가 되었나 싶은 자괴감에 탈주하고 싶다가도, 담론화하고 싶은 ‘기독 여성주의’를 제도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래도 ‘자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글은 이런 갈등 중에 쓰게 된 논문입니다. 그래서 학술적인 논문이라기보다는, ‘기독 여성주의’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씨름하면서도 여전히 교회 내부 담론으로 끌어오는 데 실패한 자괴감을 달래는 과정이었습니다.
페미니스트적 시각에서 신학을 해오기는 했지만 하나의 ‘담론’으로 ‘기독 여성주의’를 생각해본 것은 100주년(2022년)을 기념하는 YWCA의 작업에 참여하면서였습니다. ‘기독 여성주의’를 정체성으로 삼겠다고 선언하고 그 내용을 담아내려는 Y의 연구 과정에 소위 전문가로서 초청을 받았던 것이죠. 그런데 참여 과정에서 문득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우리는 교회 밖에서 ‘기독 여성주의’를 논하고 있지? 페미니즘이 새롭게 대중화된 이후 제게 쏟아졌던 개인들의 질문에 응답하다 정리하며 썼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2018년)에 관심을 보인 개별 신자들과 목회자들은 있었지만, 제 주장이 ‘교회 내 기독 여성주의 담론화’를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기독 여성주의’로 말하자면 1980년대 이후 축적된 내용이 많은데, 저는 그저 총정리했을 뿐인데, 이 꽉 찬 내용이 왜 내부 담론이 되지 못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이 들었습니다.
스스로 질문에 답하며 저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의 내부 담론화에 실패한 원인으로 크게 3가지를 지적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압축적 근현대사가 ‘위기’의 연속 속에 진행되는 동안 권력을 선점한 소수 주체가 독점한 ‘우선성 이데올로기’를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독립, 민주, 반공 등의 ‘우선적 담론’을 생산하는 헤게모니 집단의 관심사에 페미니스트적 의제는 배제되어 있었으니까요. 둘째로,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사고방식 속에 ‘정통과 이단’이라는 이항대립적 사고방식 역시 문제였습니다. 네 편, 내 편 둘로 나눈 방식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적용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한국교회에서는 특히 가중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기독교의 근본주의적 신학 성향과 유교적 엘리트들이 품었던 ‘척사위정’적 사고방식이 1세대 한국 기독교 남성 지도자들의 의미 구조 안에서 친화성을 가진 태도가 되었다고 풀었습니다. 당시 자유주의적 신학 사조를 ‘사(邪)’로 여기며 담론 싸움에 천착했던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여성 장로직을 논하는 총회에서조차 성서 비평 방법론을 놓고 ‘정통 대 이단’ 논쟁에 집중했으니까요. 남자들끼리 싸우는 과정에서 여성 이슈는 사라져버렸죠. 셋째로, 저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 내부의 담론화 작업을 시작하지 못한 이유로 개신교 가부장제의 여성 담론이 가진 ‘낭만적 봉건화’의 함정을 들었습니다. 근대성과 함께 들어온 개신교가 한국에 유입된 시기엔 ‘부드러운 가부장제(사랑에 기반한 지도력)’만으로도 여성의 권리가 상승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여자가 사람 취급을 못 받던 시절에 ‘사랑받고 존중받는 존재’라는 말에 고무되어 ‘남성의 보조자’가 되는 것이지 ‘근대적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는 데 실패했던 것이죠. 하여, 근대적 가족의 주부가 되는 것이 마치 여성의 소명인 것처럼 가르치고 배우고 내면화하며 실천하였습니다.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이런 ‘청교도적 여성 담론’이 자신들의 삶을 설명하는 여성들이 많았기에 균열 내지는 분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진 여성들이 적었죠. 이러한 이유로 인해 ‘기독 여성주의’는 결국 한국교회 안에서 내부 담론화할 “역사적 아 프리오리”(푸코)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으니 여성이 살려면 교회는 버려야겠구나!” 행여 현재의 젊은 여성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할까 봐 희망을 말해본 것이 글의 후반부입니다. 하나의 가능성으로 제시했지만 간당간당하긴 합니다. 이번 108회 장로교 총회 결과를 보니 갈 길이 더욱 멉니다. 그러나 저는 텍스트와 컨텍스트, 두 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을 봅니다. 한국교회 내에는 기독 여성주의를 위한 “역사적 아 프리오리”가 없다지만, 그건 선택적으로 남성 신학자들이 교회 내부로 가져오지 않아서 그렇지 기독교 유산을 잘 살펴보면 역사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전통을 그렇게나 사랑하는 한국교회인데 유대 전통에서도 풍부하게 찾을 수 있고 초기 기독교에서도 영향력이 있었던 ‘소피아(지혜) 전통’ 텍스트의 발견을 무시하기 힘들 겁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두 이야기, 즉 성차를 차별하는 이야기와 은사를 구별하는 이야기가 존재했습니다. 전자가 계속 내려오면서 전통, 주장, 교리가 되었으나, 후자도 텍스트로 존재하고 실은 더 ‘성경적’입니다. 이 ‘전통’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우리는 ‘기독 여성주의’를 교회 내부 담론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요? 둘째로, 우리의 컨텍스트가 우리를 돕고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제도)을 전체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전환기이니까요. 낭만적 상황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젠 전문성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여자들의 주장이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죠.
이러한 시절에, 저는 성서가 지속적으로 전하는 ‘살아내라’는 존재 명령과 ‘살려내라’는 구원 명령을 함께 붙들며 ‘다양하게 넘나들고 뛰어다니는 주장들’(담론)이 ‘기독 여성주의’라는 한 우산 안에서 꽃피었으면 합니다. 초기 페미니즘이 천착했던 것은 ‘살아내라’는 존재명령이었습니다. 여자는 보조자도, 그림자도, 제2의 성도, 반푼이도 아니다. 온전한 개인으로, 주체로 살아내라. 기독교 안에서도 선배들은 이 부분을 강조했죠. 그런데 ‘기독 여성주의’의 담론화 작업 속에서 제가 기독교 유산 안에 있는 ‘살려내라’를 소환하며 강조한 이유는 우리 상황이 21세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여성들은 쭉 살려내는 일을 해왔죠. 돌봄 노동에 배치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20세기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살아내라’를 더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주류 담론은 무한 경쟁, 각자도생, 서바이벌을 부추기는 ‘자기 계발 담론’입니다. 남을 밟고라도 나만 사는 법을 정당화합니다. 여기 더하여 소비 자본주의는 타자와의 나눔보다는 ‘나를 플렉스(flex)하는’ 문화를 낳았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페미니스트들의 수행성 중에는 종종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상승하려는 개인적인 욕망과 페미니즘의 언어가 섞인 ‘부정적 혼종성’이 관찰됩니다. 페미니즘의 근본 과제가 가부장제적 틀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일진대, 수탉들의 쪼기서열을 재구조화하기 위해 ‘기독 여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나로 살아내는’ 과정 중에서 약자들을 ‘살려내는’ 구원명령을 잊으면 안 되겠습니다. 때로 구원 명령의 수행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내 존재와 소유의 일정 부분(어쩌면 전부)을 나누고 희생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기독 여성주의의 ‘살려냄’은 결코 전통이 강요한 수동적 복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내는 주체적 인간의 영성 깊은 선택이죠. ‘나로 살아내고 너를 살려내는’ 기독 여성주의가 교회 내의 담론이 되고 실천이 되도록, 교회 평신도 중심의 담론화 과정이 시작되면 좋겠습니다. 그 출발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