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가을, 기획기사]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상담 사례를 중심으로(이은재)

2024-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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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 

: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상담 사례를 중심으로1


이은재(기독교반성폭력센터 활동가)

    

1. 들어가며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기독교 신앙을 매개로 한 선교단체, 개신교 공동체 등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상담·지원하기 위해 2018년 개소했다. 2018년 7월 개소 이후 2022년까지 299건의 성폭력 사건을 접수했는데, 사건은 299건이지만 피해자는 331명이었고, 가해자는 304명2으로 집계되었다.3 교회 성폭력은 목회자에 의한 성폭력은 물론 찬양사역자, 교회 리더(장로, 교사)에 의한 성폭력 등, 다양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매개로 신뢰 관계와 돌봄 관계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은 기존의 목회자 성폭력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목회자나 선교단체 리더의 경우 공동체 내에 권력과 기반이 있기 때문에 공동체 내 사건 해결이 어려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인 간 성폭력은 교회 차원의 강제성이 없어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교회를 떠나며 마무리 되고 있다. 교회 차원에서 해결 과정 자문을 요청하거나 해결 과정 중 목회자에 의한 부적절한 언사로 새로운 사건이 되어 상담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사회에서 목회자는 높은 도덕 수준과 윤리성을 요구받는다. 이와 관련해 목회자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공동체(교회나 교단) 내에서의 사건 해결과 가해자 징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2.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상담 사례


1) 교회 성폭력의 유형

- 그루밍 성폭력 : 교회는 친밀함을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개인적인 어려움(가족관계 갈등, 가정형편 등)과 고민을 공동체 내 리더(목회자/선교단체 리더)에게 공유한다. 상담을 요청하거나 중보기도를 요청하며 털어놓기도 한다. 이는 그루밍 성폭력의 여섯단계4의 패턴이 성립되기 쉬운 환경으로 작용한다. 피해자의 취약성을 파악한 상태로 친밀한 교회 문화와 종교적 신뢰를 이용해 성적 관계에 이르며 교제하는 사이라고 착각하게 하지만, 다른 교인들과 이중 삼중의 성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게 발각되거나 기혼 남성 목회자와의 관계 속에서 목회자를 섬겨야 한다는 종교적 신념이나 협박 속에서 몇 개월간 관계를 지속하다가 공동체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성적 폭력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센터에 상담을 요청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성인 그루밍의 경우 폭행·협박을 중심으로 강간을 판단하는 현행법 체계 아래에서 사회법으로 성폭력을 인정받기 어렵고, 교회나 교단에 공론화하는 경우 자진사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 종교적 권위(순종강요)/행위 빙자 성폭력 : 안수기도/치유기도를 해준다며 추행/강간하는 사례,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하는 행위라며 추행/강간/유사 성행위를 요구하는 사례, 목회를 성적으로 보좌해야 한다며 성관계를 강요하거나 안마를 부탁하고 기습추행하는 사례, 종교적 아버지라며 성적 접촉 강요하는 사례 등이 있다. 종교적 권위를 이용한 성폭력의 경우 교회 안의 종교적 권위로 지지세력을 형성한 경우가 많아 공론화 후 2차 피해가 심각한 경우가 많다. 


- 사기 : 데이트 어플을 통해 교제를 하다가 추후 결혼한 목사/선교사라는 것이 밝혀지는 사례


- 성희롱 : 설교 중 성희롱, 심방 중 언어 성희롱 사례, 교인 간 성희롱 사건 해결과정에서의 목회자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사건이 확대되는 사례


- 여성 사역자 젠더폭력 문제 :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 부교역자는 성희롱, 성추행, 젠더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가해자는 담임목회자 뿐만 아니라 동료 목회자이거나 성도인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서비스직 여성 노동자가 당하는 성희롱 사례와 유사하다. 


2) 심각한 2차 피해 문제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문제시해 일어나는 2차 피해 문제는 성폭력 사건 공론화와 신고를 저해하는 큰 요소이다. 모든 성폭력이 그렇지만, 교회 성폭력의 경우 2차 피해 문제가 심각해 공론화가 어렵다. 종교적 윤리와 도덕성을 유지하려는 압력, ‘모두가 죄인’, 대속과 용서, 성서 오용 등의 신앙 내재화, 친밀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회 문화 속에서 피해자는 교회 성폭력 공론화에 안전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목회자 성폭력의 경우 목회자와 교회를 동일시하는 한국교회의 문화와 목회자의 일방적 발화 권력에 기반한 교인들의 맹목적 지지로 문제제기가 매우 어렵다. 피해자다움이라는 규범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꽃뱀론이나 무고를 들먹인다. 교인 간 성폭력의 경우 교회 안의 성인지감수성의 현저한 차이와 제도의 부재로 당사자 간 화해를 종용하거나 별일 아닌 일로 치부한다. 


3.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과제


1) 피해자 지원의 한계 - 교회법/사회법 대응

“사회적 문제에 대해 적절하게 정치적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점점 불가능해짐에 따라 사법적 영역을 특권화시키고 갈등의 모든 형태에 대해 법이 해결책을 제시해줄 것으로 기대하는 뚜렷한 경향이 대두된다.”5 교회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 사회법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사회법의 판단과 별도로 자체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징계를 내리는 교단은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제외하고는 없다. 목회자 치리에 대한 교회법은 미비한 수준이고, 있더라도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해 오라는(유죄 판결을 받아 오라는) 요구를 교회로부터 받고 있다. 센터의 지난 5년 동안 법률지원은 46건으로 전체 상담접수의 일부이다. 2차 피해 문제로 공적 문제제기 자체를 회피하기 때문이다. 형법상 강간과 추행의 범위를 최대한 좁게 해석하는 최협의설 체계 안에서 적극적 저항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교회 성폭력은 피해를 인정받기가 어렵다. 교회가 자체적으로 엄격한 규정을 만들지 않고 사회법에 의존한다면 법적으로 성폭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마치 피해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로 흘러갈 위험이 있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피해자를 수동적 섹슈얼리티를 가진 객체로 피해자화하는 역설적 효과를 경계하며 성폭력 문제를 가시화할 수 있을지가 큰 과제이다. 


2) 교단별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의 차이 가시화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는 성폭력 사건 해결과 예방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의사결정구조에 여성 그룹이 없는 교단의 경우, 심각한 성폭력 사건이 드러났을 때 사회적 압력과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매뉴얼을 도입하고 법을 만들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적 비난이 잠잠해진 뒤에는 그러한 제도들이 유명무실해지곤 한다. 반면에 여성 안수가 도입되고 여성들이 의사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교단은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여성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모니터링과 연구를 진행하고 대책 마련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차별이 심한 교단과 교회일수록 성폭력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원인분석과 대책 마련이 미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3) 교회의 성별화된 위계 구조를 드러내기

교회는 목회자/평신도,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적 문화와 제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한국교회는 ‘남성 목회자-여성 평신도’라는 성별화된 신앙이 제도적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 이분법적 위계가 강할수록 권력이 집중되어 교회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다. 한국교회는 설교로 대표되는 목회자의 발화 권력을 비롯해 교회 공간 배치에서부터 예배 구성, 안수기도, 심방 등으로 목회자의 권위를 계속해서 강화하는 방식으로 제도화되어 있다. 목회자-평신도 위계는 담임목회자-부목회자, 장로-집사 등 교회 안의 다양한 관계 안에서 변형 확장된다. 성별은 이 위계를 구성하는 또 다른 토대이다. 성별화된 신앙과 교회 문화, 구조 안에서 여성은 수동적 객체로 남을 수밖에 없다.


4. 나가며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의미 투쟁의 과정’이다.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이 확산되며 우리는 성폭력 담론을 점차 확대해갈 수 있었고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 역시 페미니즘 리부트 현상과 미투운동으로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방향은 다양한 고통을 경청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귀의 확장, 다양한 성별권력과 일상의 애매한 폭력들을 문제제기하는 여성주의 세력의 확장6일 것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사회 정의(justice)로 공유하려는 활동가이자 자신의 삶과 경험의 전문가로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피해 경험과 함께 살아간다. 피해자의 주체성은 살아남기(생존자)-말하기(피해 경험자)-행동하기(활동가)라는 형태로 시간에 따라 달라지고, 피해자의 말을 들어주는 공동체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7 한국교회가 성차별과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사회적 정의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재의미화 작업을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이 공동체 재의미화 작업은 피해자의 주체성이 변화해가는 과정과 함께할 때 가능하다. 



1)  이 글은 새길&제3시대 공동강좌 ‘전환(transition)시대의 신학과 교회’ [여름학기 강좌]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기독교: 교회와 신학의 가부장적이고 젠더화된 지배 구조를 넘어”- 2강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의 현재와 과제(8월 17일) 발제의 뒷부분과 토론에서 나온 고민을 재구성한 글이다. 

2)  2018년 가해자 직분을 중복으로 집계해 사건보다 5명이 추가되었다.

3)  5년간의 자세한 통계와 분석은 내년 초 발표될 예정이다.

4)  범죄과학자이자 법정신의학 박사 마이클 웰너는 그루밍 성폭력에 이르는 6가지 단계를 소개했다. ①피해자의 취약성을 파악해 피해자 고르기 ②피해자의 욕구를 파악하며 따스함을 드러내기 ③피해자의 욕구를 채워 주기 ④일대일로 만나는 상황을 만들어 피해자를 고립시키기 ⑤성적(sexual) 관계를 만들기 ⑥피해자를 회유·비난해 통제하기

5)  권김현영, 『늘 그랬듯이 길을 찾아낼 것이다: 폭력의 시대를 넘는 페미니즘의 응답』, 휴머니스트, 2020, 127쪽에서 재인용.

6) 전희경,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토론회 자료집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2012 >> 전희경,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토론회 자료집: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2012.

7). 권김현영, 같은 책, 1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