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봄, 기획 기사] 진보정당 정치의 조건과 쟁점 찾기 : 틈새정당이론과 좌파적 비판을 중심으로(강태경)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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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 정치의 조건과 쟁점 찾기

틈새정당이론과 좌파적 비판을 중심으로

 

강태경(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박사수료)

 

들어가며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윤석열이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을 아슬아슬한 표차로 이기고 당선되었다. 정의당의 심상정은 3위로 80만 3,358표(득표율 2.37%)를 얻었다. 그 외에도 진보정당에 해당하는 후보들은 진보당의 김재연 후보(37,366표),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후보(18,105표), 노동당의 이백윤 후보(9,176표)가 있었다. 건설국민승리21(약칭: 국민승리21) 창당(1997) 이래 25년째를 맞이하는 지금, 진보정당의 총 득표율이 약 87만에 못 미치는 이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씁쓸하면서도 난감한 이 현실에 대해 정의당은 자체적으로 “패배한 선거”라는 평가를 내렸다. 정의당 전국위원회는 이러한 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했다. “기존 지지층은 붕괴되고 2030 여성 지지율은 이탈로 이어졌다. 전통적 지지 기반뿐 아니라 노동, 청년, 여성 지지율이 하락한 결과”(경향신문 2022.03.20.).

 

진보정당의 성패를 진보정당 내부의 문제만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진보정당의 열악한 환경, 불리한 제도적 조건, 그리고 양당제에 가까운 한국의 정치세력 구도를 고려해야 한다. 좌파들로부터는 의제의 선명성을 요구받고, 이념적으로 가까운 거대정당으로부터는 정책시행을 위한 제휴·포섭의 유혹을 받으며,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의 선거에서는 항상 단일화의 요구에 시달리는 상황은1) 진보정당을 다각도로 압박한다.

 

이러한 조건에 있는 진보정당의 과제는 자신의 입장을 양당과 차별화하면서도, 꼭 실현해야 하는 것은 양당의 힘을 빌려 관철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을 전략적으로 해결해가며 세력을 키우는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에 대한 평가와 대안의 모색은 이와 같은 현실적 장벽에 대한 고려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 정치가 위치한 상황의 난점들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되는 문헌들을 소개하고 몇 가지 해석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진보정당 운동과정에 대한 ‘좌파적 비판’

 

진보정당 운동이 시작된 이유는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이다. 이를 위해, 지하에서 진행되었던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의회정치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당이 구체적인 정치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운동의 구상과 의도와는 달리 ‘타협’이 만들어진다. ‘좌파적 비판’은 이런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의회정치에 포섭되는 것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진보정당이 국가의 제도 내로 들어가면서 권력카르텔에 가담해 버렸다거나(김영수 2013), 정권심판론과 야권연대 등의 전략으로 기존의 차별적 정책들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배성인 2014)는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대표적인 좌파적 비판일 것이다. 진보정당이 내부 운영방식의 문제점, 즉 분파주의적·과두적 문제로 인해 갈등관리에 취약했다는 비판도 존재한다(손우정 2015). 결국 이러한 입장들은 노동계급 중심성, 사회주의적 지향과 같은 이념의 부족, 진보정당과 민주노총의 적절한 관계 형성의 실패, 진보정당의 활동과 운영상의 패권주의를 지적하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민택 2016).


좌파적 입장에서 진보정당에게 이념적·정책적 차별성을 강조하는 것은 오래된 요구이기 때문에, 이는 분파주의적인 요구 혹은 좌파들의 관성적 비판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의회로 진출한 이상 보다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중도에 가까워져야 한다는 반박도 쉽게 발견된다. 국민의힘 계열의 보수정당을 최대한 위축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민주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야권연대의 요구 역시 무시하기 어렵다. 이념적 존재 이유를 강조하는 좌파들의 주장과 정당의 단기적 생존전략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시각으로 정당의 정체성과 생존전략을 논하는 이론을 참고하고자 한다.



‘틈새정당이론’을 활용한 진보정당 분석

 

틈새정당(niche party)이론은 메귀드가 유럽의 극우정당과 녹색당을 분석하면서 제시한 이론이다(Meguid 2008). 그에 따르면 주류 정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면서 등장하는 틈새정당의 생존은 오히려 ‘주류 정당의 대응’에 좌우된다. 기존의 양당이 의제를 무시하거나, 적응(의제 수용)해버리면 틈새정당은 약화되어 사라진다. 반면 양당 중 하나 이상이 틈새정당의 의제에 적대적인 입장일 때 틈새정당의 존재 이유는 유지되고 득표에 유리해진다.

 

틈새정당이론은 유럽의 극우정당과 녹색당을 분석하면서 정립된 이론이었으나, 지은주(2013)가 이 이론으로 대만과 한국의 노동계급정당의 생성과 소멸을 설명함으로써 한국의 진보정당 분석에 도입되었다. 지은주는 대만의 주류정당이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적응 전략’을 쓴 반면, 한국은 특히 97년 외환위기 이후 주류정당이 ‘적대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진보정당이 생존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었다고 분석한다.


정재관, 김인원, 정은아(2016)는 메귀드(2008)와 지은주(2013)가 간과했던 ‘틈새정당의 전략적 능동성’을 이론에 추가했다. 즉, 틈새정당도 주류정당의 판단에 대응해서 능동적 전략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 따르면 진보정당이 중장기적으로 생존하는 최적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자신과 이념적 거리가 가까운 민주당과는 차별성을 내세워서 ‘적응(의제 수용)의 효과를 중화’하고, 자신과 이념적 거리가 먼 보수정당은 진보정당에게 적대적 입장을 유지하도록 ‘갈등을 유인’하는 전략이다(중화-유인전략). 


다만, 이런 전략은 새로운 의제들을 적절히 계속 만들어내고 당원들을 훈련하면서 대중을 설득해야 하므로 제도적, 조직적, 평판적 비용이 많이 발생해 쉽지 않다. 반면에 선거연합, 합당 등으로 단기적 의석을 확보하는 전략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효과도 즉각적인데, 이는 주류정당의 적응 전략에 스스로 포섭되는 효과를 만들면서 자기 기반을 잠식한다.

 

이러한 선택지들 속에서 틈새정당이 최적의 판단을 해나가기 위해서는 정당의 ‘제도화 수준을 향상’해야 한다. 정당의 제도화는 “당내 조직적 체계성”,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 자율성”, “구성원 사이 지향하는 가치의 동질화”, “유권자들로부터 얻는 지속적 실체성”(정재관, 김인원, 정은아 2016: 136)으로 구성된다.

 


교차적 고찰

 

틈새정당이론과 좌파적 비판을 교차해서 보면, 진보정당의 생존을 위해 한편으로는 ‘선명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정당 자체의 존재 이유가 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정당 운동의 고질이었던 정파 갈등,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관계, 이와 연관된 정당 내부 의사결정 과정의 대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하여 틈새정당이론의 정당 제도화 주장이 ‘의견수렴 과정에의 제도화와 정책 연구’, ‘외부세력으로부터의 지도부의 자율성’을 강조한다면, 좌파적 비판은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전망에 입각한 노동계급 및 노동조합과의 연계 강화’를 강조하는 쟁점을 도출한다. 진보정당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립하는 길과 노동계급 정치세력화의 길은 결합될 수 있을까?

 


유권자들의 인식과 이론틀의 대조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이론틀을 진보정당 관련 유권자들에 대한 경험적 분석결과(지병근 2014; 김기동, 이재묵 2020)에 비추어 보자. 이들의 분석 중에서 앞서 논의한 이론적 작업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결과물들을 몇 가지 추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결과는 2005년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지지가 높았을 때를 제외하면 민주당 지지자와 진보정당 지지자 사이의 의미 있는 이념적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기동, 이재묵 2020). 실제 지지자의 범주에서 이념 차이가 희박하다는 사실은 현재 진보정당의 이념적 차별성이 상당히 부족하며, 거의 전무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한 진보정당의 존재 이유를 정당이 (최소한 이념의 측면에서는) 능동적으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민주당의 ‘적응 전략’에 정의당이 상당히 취약한 상황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반면에 이 조사의 가장 선명한 결과는 “현 정권에 대한 국정운영 평가”가 부정적일수록 진보정당 지지도가 높았다는 사실이 2003년 이래 여러 해에 걸쳐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틈새정당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 결과는 ‘주요 정당과의 차별성’이 간접적으로 부각되는 요소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역대 정부에 비해 말년의 국정 지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점이 진보정당에 대한 선택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편 2010년 조사결과에서 노동조합 가입 여부와 진보정당 지지 여부가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관계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볼 때, 이미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연결고리는 많이 약화된 것으로 확인된다(지병근 2014). 김기동의 연구에서도 개별 연도로는 노조에 대한 인식과 진보정당 지지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지 않았다. 다만 2003~2013년 간의 9개년 조사결과를 통합해 분석했을 때는 ‘노동조합 지도자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그리고 한국의 노동조합 활동이 온건하다고 생각할수록’(김기동 2020: 181) 진보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노조와 진보정당의 관계는 한 해 단위로는 효과가 미비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틈새정당이론의 관점은 민주노총이라는 정당 외부세력과의 연계보다는 정당 자체의 제도화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좌파적 입장은 진보정당이 민주노총 혹은 노동운동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함을 역설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은 노동조합과의 연계성 강화가 과연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이냐를 고민하게 된다.

 

과연 위의 조사결과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이번 20대 대선에서 ‘진보진영 대선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구조적/정세적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이번에 단일화 협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이슈들이 있었지만, 달리 보면 진보정당들이 협의하지 못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단일화 협의가 진보정당들의 표를 결집하는 결정적인 이슈가 아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진보진영 대선후보 단일화는 조합원이나 대중의 관심은 적었던 반면, 상대적으로 활동가들 위주로 주목했던 이슈는 아니었을까.

 

이념적 차이와 마찬가지로, 김기동(2020)의 연구에 의하면 민주당 지지자와 정의당 지지자는 젠더 의제에서도 큰 차이를 나타내지 못했다. 물론 이 논문은 2016년까지의 조사결과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수년 사이에 민주당에서 발생한 위계형 성폭력 사건들에 대한 실망이 반영되어있지 않다. 틈새정당이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번 대선에서는 막판까지 페미니즘 쟁점만큼은 정의당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잘 어필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당의 2030 남성 일부를 동원한 우파적 포퓰리즘을 비판하며 ‘유인 전략’을 시행했고, 페미니즘 의제에 소극적이었던 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했다. 하지만 투표 직전과 직후, ‘추적단 불꽃’ 박지현씨가 민주당 선대위 여성위원회 부위원장 및 공동비상대책위원장직을 맡게 되면서 민주당의 ‘적응 전략’이 다시 작동했고 그 효과는 컸다고 볼 수 있다. 정의당에 전달된 후원금 12억 원은, 다소 희망적이긴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표를 옮겨간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젠더 의제에서 민주당과 정의당 지지자들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추정되는 상황에서, 정의당이 민주당과 차별점을 드러낼 수 있는 중화 전략을 쓸 여지가 많지 않다는 것은 정의당의 분명한 곤혹으로 읽을 수 있다.

 


나가며

 

틈새정당이론의 진보정당의 차별성 강조가 ‘무조건 급진적이면 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무조건적인 차별화가 아닌 의제를 설정해내는 능력 자체를 강조한 정당 제도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글에서 좌파적 비판과 틈새정당이론을 대조한 것은 둘 사이에서 ‘어떤 차별화인가’에 대한 쟁점이 도출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기 위해서였다. 좌파적 입장은 다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를 원칙으로 견지하고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의 연계를 강화하고자 할 것이다. 반면 틈새정당이론은 정당이 세운 원칙을 안정적으로 제도화하면서 당원과 지지세력이 의제를 발전시키고 합의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필자는 두 입장을 대립시켜 보았지만, 이 둘은 양립불가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진보정당에 대한 논의가 더 발전하여 보다 뛰어난 분석과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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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guid, Bonnie M. (2008), Party Competition between Unequals Strategies and Electoral Fortunes in Western Europe, Cambridge University Press: New York.

경향신문, 「정의당 “패배한 선거”…대선 이후 첫 자체 평가」, 김윤나영, 2022.03.20.

 


1) 선거제도는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의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다당제가 가능한 제도 없이는 다당제의 구현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글은 제도보다는 틈새정당이론과 유권자 지지기반을 중심으로 서술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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