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기획 기사] '대통령'은 부먹일까요 찍먹일까요(황용연)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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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부먹일까요 찍먹일까요



황용연(제3시대 연구기획위원장)


1.



위의 짤방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부먹이니 찍먹이니 하는 이야기가 어제 오늘 나온 것도 아니고 이제는 어쩌면 놀이 비슷하게 되어 버린 감도 있습니다만, 작심하고 말싸움을 하자고 붙으면 저렇게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올 수 있다는 게 새삼 좀 웃깁니다.

 

사실 부먹/찍먹뿐 아니라 말싸움이라는 게 저런 식으로 빠지기 십상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이 입장을 택했다가 아니라, 어느새 왜 이런 입장을 택했느냐는 사라지고 그저 ‘지금 내가 이 입장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 돼’라는 식으로 상대를 깔 수 있는 건 있는 대로 다 갖다붙이고 자기 편을 추어올릴 수 있는 건 있는 대로 다 갖다붙이는 꼴 말이죠. 그러면서 그 갖다붙인 걸로 '자기 입장'이란 걸 더 디테일하게 만들어가기도 하고요.

 


2.


제목에 ‘대통령’이란 말이 들어가는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대통령 선거는 분명히 5년에 한 번씩인데요. 해마다 국회의원 총선거, 지방선거, 보궐선거,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모든 선거가 다들 모의 대통령 선거 비슷하게 진행되는 것 같지 않나요? 그 선거 결과로 대통령 지지율이 왔다갔다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음 대통령 선거 후보(?) 지지율도 왔다갔다하고 말이죠.

 

물론 모든 선거가 정부 중간평가가 되어 버리는 건 꼭 대통령제에만 있는 현상은 아닐 것 같습니다만, 대통령제에서 그 현상이 좀 더 심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듭니다. 특히나 한국은 단임제라 한번 대통령이 선출되어도 그게 바로 다음 대통령에 대한 질문을 불러오게 마련이니, 그런 경향을 더욱 촉진하겠다 싶죠.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드는 생각이 뭐냐면, 대통령/대통령 선거를 두고 벌어지는 양상 중에 앞에서 이야기했던 저 부먹/찍먹 말싸움과 비슷한 측면도 꽤 있겠더라 하는 겁니다. 그저 지금 내가 이 입장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겨야 돼 이런 감정으로 자기 입장에 맞다 싶은 건 다 갖다붙이는 상황 말이죠. 그 갖다붙인 걸로 '자기 입장'이 더 디테일해지는 것까지.

 

이런 말싸움에서 특히 대통령이란 자리는 어쩌면 그 말싸움의 아이템 비슷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싶어요. 다 갖다붙여서 어떻게든 이기면 얻게 되는 아이템 중에서도 단연 최고급 아이템이랄까. 한국의 대통령제를 흔히 권한이 너무 강력하다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들 하는데, 그 말이 일리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겠지만 '제왕적'이란 말이 실감이 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저 '최고급' 아이템이라는 데 더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3.


그런데 최고급 아이템을 얻으려는 말싸움에는 큰 패거리들만 주로 가담하기 십상이겠네요. 박이대승 선생의 말을 빌리면, 현 정권을 싫어하는 패거리와 윤석열을 싫어하는 패거리라는 두 패거리 말입니다. 사실 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2년 반 전까지만 해도 윤석열이 바로 지금 윤석열을 싫어하는 그 패거리의 기대와 칭송을 받으며 검찰총장으로 고속승진했다가 (다시 박이대승 선생의 말을 빌리면) "우연한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윤석열을 증오하는 집단적 의지가 형성됐고, 윤석열은 그들의 증오 덕분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 됐"다는 것이겠지만요.

 

그런데 이 패거리 두 개가 너무 크니까, 이 패거리들끼리 대립하면서 만들어지는 각종 말잔치들이,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어떤 프레임이고 기준점인 양 많이 받아들여지더라 이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 흔히 하는 말로 윤석열을 싫어하는 패거리는 '진보'라고 지칭되고, 현 정권을 싫어하는 패거리는 '보수'라고 지칭될 터인데요. 정의당 등의 진보정당에서는 윤석열을 싫어하는 패거리가 왜 '진보'냐고 질색을 할 테지만 (저도 백번 동의합니다만) 그 패거리가 '진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진보'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은 현실인 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네요.

 

문제는 '진보' 패거리와 '보수' 패거리끼리의 싸움이 프레임이고 기준점이 되다 보니, 한국 사회의 현상들이 마치 이 두 패거리 중에 어느 쪽에 이득이 되느냐로 판단하면 끝나는 것인 양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특히나 지금 '현 정권을 싫어하는 패거리'와 '윤석열을 싫어하는 패거리'의 싸움에서는, 그 '이득'이라는 게 양쪽 모두에게 아예 직접적인 해먹기 수준으로 생각이 되는 경우가 많아졌고요. 예를 들어 시민단체라는 언어가 나오면 이제 '보수' 패거리들은 이런 말을 대놓고 하죠. 정부에 붙어서 돈 받아먹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라고요.

 

그러다 보니 저처럼 노동운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현상에 어리둥절하게 되죠. 민주노총 위원장을 집회했다고 코로나 운운하며 구속시킨 게 현재의 정부인데, 조선일보 같은 데서는 심심하면 한번씩 이 정부가 '사회악'인 민주노총을 감싸 주지 못해 안달이 났다 이렇게 욕을 하더란 말이죠. 하기사, 노동자들이 '보수' 패거리 정부 시기에 파업을 하면 '보수' 패거리한테만 욕을 먹을 텐데, '진보' 패거리 정부 시기에 파업을 하면 '보수' 패거리와 '진보' 패거리 양쪽에서 욕을 먹는다는 건 익히 경험했으니, 이렇게 생각하면 어리둥절할 일도 아니긴 합니다만.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번 대통령 선거를 두고 역대급 비호감 후보들끼리 1, 2위를 다투는 선거라고들 하는데요. 물론 한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자신의 발언에 항의하는 성소수자들의 항의를 듣고 나서 "다했죠?" 한 마디 남기고 등돌려 버리고, 다른 후보는 꾸준히 주 52시간은 너무 짧다 120시간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쩌고 최저임금이 어쩌고 망언을 남발하는 중이니 역대급 비호감이 안 될 수도 없겠지만요. 오히려 저런 비호감 후보들이 설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 선거가 '진보' 패거리와 '보수' 패거리끼리 서로 이기기만 하면, 대통령이란 최고급 아이템을 따기만 하면 된다는 선거가 되어 버려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네요.

 

이기기 위해서 무슨 말이든 다 갖다붙여야 할 텐데, 갖다붙이는 말의 수준이 딱 이 정도인 것이 현재 두 패거리의 싸움의 실상을 보여 준단 말이죠. 사실 소위 주 52시간을 예로 들어 보면, 분명히 규정은 주 40시간인데 주 52시간이 마치 '정규' 시간인 양 대놓고 통용될 수 있게 만들어 준 큰 원인은 현재의 '진보' 패거리 정부가 계속 그것으로 간보기를 열심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니, 이런 걸 보면 소위 '진보' 패거리가 이런 수준 낮은 말싸움은 모두 '보수' 패거리 때문이야라고 발뺌하기도 창피하겠죠?

 


4.


아무리 '진보' 패거리와 '보수' 패거리가 큰 패거리라고 한들 이 두 패거리의 싸움에 모든 걸 다 끼워 맞추려면 삑사리가 안 날 도리가 없겠죠. 예를 들어 '청년'이란 말은 그런 삑시라가 발생하는 대표적인 지점 아닐까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뭔가 공간과 자리를 마련해 줘야 한다는 말은 넘쳐나는데 사실 그 속을 뜯어 보면 우리 패거리에 어떻게 좀 포섭을 잘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들뿐이라서, 그게 잘 안 되는 듯 보이니까 결국 이대남이니 이대녀니 이런 말만 떠돌게 되고요. 정작 그 '청년'들은 자신이 사회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항상 '청년'이라는 카테고리에만 묶이고 그런 카테고리의 말만 들으려 한다고 항변하는 상황까지. 이런 삑사리가 계속 난다는 것도 앞에서 이야기했던, 두 패거리의 말싸움이 되어 버린 대통령 선거에 갖다붙이는 말이 딱 저 정도 수준이어도 통한다는 현실의 이유가 되겠거니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대통령 선거라는 것이 내년 3월에나 한다면, 어쨌든 저 두 패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말도 그나마 조금 더 들어 주는 시기가 지금이기도 하죠. 이 글을 읽으실 독자 여러분들은 어차피 저 두 패거리 중에 어느 쪽이 말싸움을 더 잘하나 하는 것에 관심은 없으실 테니, 차별금지법 제정이 되었든 비정규직 노동자 이슈가 되었든, '우리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들어 주기를 바라고 열심히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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