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기획 기사] ‘스우파’를 보고 : 경연 프로그램과 ‘존재를 드러내는 무대들’(최시내)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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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우파’를 보고

경연 프로그램과 ‘존재를 드러내는 무대들’



최시내(사과나무 디자인 노동자)



독일에서 유학하던 친구가 1년여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나름 트렌드에 민감한 친구였다. 원래 유행이나 K팝에 빠삭한 친구였는데, 1년 넘게 독일에 있던 탓에 귀국 무렵에는 한국의 트렌드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친구의 귀국 당시 국내에서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프로그램이 큰 이슈가 되었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hey, mama’의 전주만 나오면 댄서 노제가 만든 안무를 자동으로 따라하곤 했다. 그런 우리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그 친구에게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한국 여자들이랑 말하려면 ‘스트릿 우먼 파이터’를 봐야 돼.”라고.

 

사실 나는 경쟁심을 자극하고 간절함을 드러내게 하는 경연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 꿈을 걸고 간절함을 드러내도록 하고 그것을 이용해 방송의 몰입도를 올리는 경연 프로그램 특유의 방식이 불편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우파’를 처음 본 날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저 센 언니들이 다 어디서 나왔는지, 어리둥절했다. 승부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상대팀을 자극하는 데도 거침이 없었다. 처음 참가 팀들이 하나씩 등장할 때, 착석하면서 서로를 경계하는 장면은 정말 오싹했다. 그런 날 선 경쟁심을 드러내는 게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작위적이고 과장되게 느껴져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댄서들의 무대를 보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각 크루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무대를 보며 매번 감탄했다. 이런 느낌의 춤도 있고, 저런 느낌의 춤도 있구나! 이를테면 ‘메가크루 미션’에서 ‘코카앤버터’는 의상 때문에 동양적이면서도 섹시하다고 생각했고, ‘홀리뱅’의 무대에서는 큰 동작 없이도 전체가 움직이는 인상이 멋지다고 느꼈다. ‘훅’의 무대를 보면서는 춤 안에서 위트와 유머를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춤에 대한 감상을 처음으로 가져보는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춤’을 중심으로 무대를 본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크루마다 색이 다르고 장르가 다르다. 그런데 춤은 다들 너무 너무 잘춘다. 과연 평가가 가능할까 싶었다. 심사위원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아, 그래서 잘 춘 춤인가보다.’, ‘이건 별론가?’하고 생각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더 잘 춘 춤’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보기에 좀 더 멋지거나, 잘 모르겠거나 하는 정도였다. 댄서들이 다른 댄서의 춤을 보며 감탄하는 장면에서는 나는 그 감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춤을 춰 본 적이 없고, 어떤 부분이 기술적으로 좀 더 어려운지 감도 안 왔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유튜브에 선공개 되는 영상에 시청자들이 직접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참여했지만 투표의 시간은 그저 취향을 발견하는 시간이었지, 누가 누구보다 낫다거나 못하다거나 하는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고마워서, ‘좋아요’를 눌렀다. 내 투표가 결과에 반영되고 그에 따라 무대의 순위가 매겨진다는 사실은 투표를 권위있는 행위처럼 느끼게 한다. 내가 무대를 평가할 수 있다는 우월감 같은 것.

 

하지만 방송에서도 반복적으로 소개했듯이, 스우파에 나온 댄서들은 이미 번듯한 커리어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단지 그들의 무대를 내가 잘 몰랐고, 무대에서 실제로 일하는 특정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을 뿐, 그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을 대중들에게 보여왔다. 그래서 나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라는 프로그램이 여성 댄서들과 안무가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그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스우파는 그 소개를 엠넷이 가장 잘하는 서바이벌 형식으로 보여줬다.

 

엠넷이 짜놓은 프레임 안에서 드디어 자신들을 세상에 보여줄 기회를 얻은 댄서들은 조금은 이용당하면서, 그러나 과감히, 자신들이 품어온 메세지를 펼쳐 보였다. 나를 처음에 가장 힘들게 했던 캐릭터들은 가비와 모니카였다. 가장 센 척 한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경쟁심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을 과장되게 드러내며,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한다고 느꼈고,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혼성 미션’에서 가비가 속한 크루인 ‘라치카’와 모니카가 속한 크루인 ‘프라우드먼’이 보여준 무대들을 보고 나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이전에 그들은 엠넷의 프레임 안에서 경쟁에 충실한 캐릭터들로 보였는데, 혼성 무대를 보고서는 그들이 왜 그런 캐릭터로 보이면서까지 무대를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대중들이 원하는 것만을 보여주고 경쟁에서 1위가 되는 것만을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 법한 선택을 했던 것 같다. 그들은 미디어가 교묘히 존재를 감추려고 하는 ‘트랜스 젠더’와 ‘퀴어’를 내세운 무대를 꾸렸다. 가비가 말한 것처럼 조금은 ‘별난’ 사람들을 대변하는 무대를 너무도 세련된 방식으로 방송에서 보여줬다. 존재를 맘껏 드러내는 그 무대들이 기억에 남는다. 나에겐 그런 무대들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에서 순위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한 무대 한 무대를 기대하며 지켜봤다. 그리고 프라우드먼이 탈락할 때 모니카가 했던 말처럼, 그들은 단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 뿐이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단단히 인상을 남겼으니, 이제 그들의 존재감은 어디서나 드러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여러 무대에서 그들의 존재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다!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