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 특별 연재] “그대를 찾아서”를 마치며(강윤아)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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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를 마치며



강윤아(청소년 극연구자)

 


이 글은 웹진 <제3시대>에서 14번에 걸쳐 연재한 “그대를 찾아서”를 마무리하는 글이다.

1991년 11월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에서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 혹은 “예술제”라는 이름으로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를 올렸다. 경동 중고등부의 몸으로 드리는 예배/예술제는 절기마다 축제로 예배드리던 교회 문화 속에서 자라던 청소년들이 일년에 한 번 공연으로 올리는 예배였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예술제는 교회에서 하는 연극이기 때문에 복합적인 성격을 띄지만 청소년들이 창작한 연극이었다는 점에서는 청소년극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91년 <그대> 공연은 창작자와 관객 모두가 이례적으로 크게 호응한 성공적인 청소년극 사례라는 점에서 그 특징을 이해하는 것은 청소년극 연구의 관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그대를 찾아서”를 통해서 <그대> 참가자 12명을 만나서 청소년이었던 당시의 연극 경험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것이 30년이 지난 현재의 삶에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인터뷰하였다. 지금까지 각 인터뷰의 핵심 내용을 소개했다면 그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알게된 <그대> 체험의 특성이 무엇이며 특히 청소년극으로서의 <그대>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웹진 지면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대 버려졌나> 공연 영상 보기 >> 클릭

 


어떤 점이 기억에 남는가?

 

#1 재미, 즐거움, 몰입

많은 이들이 <그대 버려졌나> 혹은 그를 둘러싼 중고등부 활동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그에 열정적으로 몰입했다고 하였다. [인터뷰 1,3,6,9,11] 몰입도를 이야기할 때는 “완전한 몰입”이었다거나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다” “열과 성을 다했다” “당시 생활의 중심이었다”고 표현하였다. 간혹 예술제를 통해서 극도의 행복감을 느꼈고 공연 무렵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거나 공연 중 느낀 찰나의 행복감을 이후 계속 추구해왔다고 하는 경우들도 있었다.

 

#2 공동체와 소속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중고등부 공동체의 끈끈한 교제와 소통에 대한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렸다. [인터뷰 1,3,5,6,7,8,9,11,12] 대부분의 교회에서 서로 챙기고 소외되는 이가 없게 하는 것을 표방하기는 하지만 참가자들이 체감하기에 당시 장충동에서는 보다 정직하고 진지하게 그렇게 했던 것 같다. “다 챙기고 두루두루 재미있어 하는게 중요했다”, “누군가 [소외되서] 쭈뼛거리면 못 참았다”, 당시 중고등부가 “목적이 없고 경쟁하지 않으며 소외감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교제와 소통이 “가장 큰 재미”, “행복감의 핵심”, “충일감”의 원천이었다고도 하였다. 한편 청소년기에 소속감을 느끼거나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필요했다면 그런 면에서 교회가 “둥지가 되어주었다”고도 하였다. 교제와 소통 가운데 하나님이 계셨는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했다.

 

# 3 자기 주도성

참가자들은 당시 본인들의 자기 주도성이 매우 높았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 1,3,7,8,10,12] 청소년들의 책임과 권한의 영역은 대본 선정, 각색, 연출 섭외, 홍보, 연습 일정을 짜는 일, 청소년들이 밥 먹을 식당을 섭외하는 일, 팀에서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합을 이끌어내거나 공연 참가를 걱정하는 부모님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까지 광범위하였다. 그러한 자기 주도성은 중고등부 전통 상 당연한 것이었고 당시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주도권을 주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몇몇은 그와 같은 자기 주도성이 당시에도 지금도 본인들이 느끼는 희열과 행복의 주된 요건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4 자유함

참가자들은 당시 “자유”했다고 표현하였다. [인터뷰 1,9,10,11,12] 예술제와 그를 둘러싼 중고등부 생활 속에서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었다”거나 “예배, 친교에서 속박이 없었다”고 하였다. 자유로움 혹은 금기 없음을 체험한 일화로는 수능 백일 전 교회와서 샴페인을 마신 일, 스무살이 되면 죽을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해도 모두 편안하게 들어주었던 일, 선배가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하며 기도하던 기억 등 다양한 예를 이야기하였다. 특히 예술제에서는 내용과 장르를 불문하고 원하면 무엇이든 무대화할 수 있었고 그곳이 “모든걸 열어준 해방공간”이었다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 5 공연의 완성도

참가자들은 <그대 버려졌나>의 완성도가 높은 것에 놀라거나 그로 인해 성취감을 느꼈다고 하면서 “잘 했다”, “프로페셔널 했다”, “성공적이었다”, “완성품에 놀랐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터뷰 3,6,8,9,10,12] 완성도와 관련된 기억으로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창작의 쾌, 참가자들의 재능에 놀란 일, 천재적인 친구와 협력하는 즐거움, 효율적인 협업으로 더 큰 것을 만드는 충일감, 연출가, 안무가 등 주변 어른들의 전문성과 리더쉽에 대한 신뢰 등을 이야기하였다.

 

# 6 입시의 부담/학교와 다른 현실을 사는 즐거움

많은 이들이 입시와 그에 대한 부모님들의 걱정으로 인해서 부담을 느끼면서도 교회 생활이 학교 현실과 다른 데서 의미를 찾았다고 했다. [인터뷰 1,3,5,6,8,10,12] 특히 학교의 경쟁적인 관계와 소외감 그리고 교회에서의 친근한 관계와 소속감을 비교하였다. 또한 교회에서 겪는 대안적 현실을 기준으로 학교 교육을 비판하거나 학교 친구들과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였다고 했다.

 

# 7 종교적 신앙적 의미

[교회 제도 내에서 신앙생활을 계속 한 경우] 어른이 된 지금보다 당시에 ‘어린 신앙’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뷰 2,3,6,9,10] 그 경우 당시에는 “스스로의 고백까지는 아니었다”, “예배의 개념이 없었다”, “예수님이나 말씀을 안 것은 나중이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본질이 예배였으며 직접 드러나지는 않았어도 신앙 고백이었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인터뷰 1,6,7,9,10] 그 근거로 성령충만한 교제와 사랑의 기억, 하나님 안에서 마음껏 뛰어논 기억, 공연의 본질이 설교였던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중고등부 생활과 예술제 과정에서 소위 보수 교회에서 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신앙적 접근,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 말씀, 기도가 부재했음을 아쉬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가?

 

#1 특히 공동체 체험이 참가자들의 긍정적 자기 인식과 공동체적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

#1-1 긍정적 자기 인식: 참가자들은 당시 “끈끈한 환경에서 사랑받고” ”누군가 충분히 기다려준” 체험이 자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당시 “나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청소년기가 불안정했을거라”고 하였다. 또한 소속감을 통한 행복감이 성인기의 자신감이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하였다. [인터뷰 1,5,6,7,9,10]

#1-2 공동체적 가치관: 몇몇 참가자들은 당시에 소외받는 이들을 챙기거나 공동체나 화합을 중시하는 태도를 배웠으며 그것이 당시 교회 밖의 삶 그리고 중년이 된 현재의 삶에서 지속되고 있다고 하였다. [인터뷰 1,6,7,8,10,12] “중고등부 생활 이전에는 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중요했는데 다른 삶도 중요함을 알았다”거나 특히 “예술제를 계기로 같이 살아가는 삶의 중요성에 대한 확증을 얻었다”고도 하였다. 당시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세계관의 본격적 변화가 있었다고도 하였다.

 

#2 공연 체험이 진로, 적성의 발견으로 이어지거나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다. [인터뷰 1,2,3,5,6,8,10]

#2-1 진로 발견에 영향을 끼친 경우: <그대> 등에서 느낀 협력의 즐거움이 좋아서 ‘크레이티브’가 가능한 진로를 택한 경우, 당시 겪었던 찰나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 맑스주의 연구자가 되거나 연극을 공부하게 된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2-2 적성 발견에 영향을 끼친 경우: 본인이 사람들을 화합시켜 팀웍을 만드는 일을 잘한다는 것, 특정 프로젝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책임지는 데서 쾌를 느끼는 것, 당시 대본을 집필한 일이 글쓰기의 시발점이 된 경우 등의 예가 있다.

#2-3 평생에 걸쳐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친 경우: 협업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경우, 당시 교사들이 아직까지 본인이 추구하는 민주적 리더의 롤모델이 된 경우, 그 시절 주도성을 체험한 후 스스로 선택하고 주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대 버려졌나>가 참가자와 관객 모두의 호응을 크게 이끌어낸 성공적인 청소년극 사례라는 점에서 그 특성을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면 위에서 탐색한 <그대> 체험의 요소를 청소년극 연구의 관점에서 해석해보고자 한다. 우선 작업 과정에서 청소년들이 즐거움과 재미를 느끼고 충분한 몰입했다는 것은 청소년들이 창작의 바탕이 되는 놀이성이나 즉흥성을 발휘하기 수월한 환경 속에 있었음을 의미하지 않은가 한다. 또한 자기 주도성, 자유로움, 금기 없음은 모든 예술가에게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그대> 청소년들이 극작, 연기, 기획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각자의 예술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극 매체의 특성상 앙상블의 호흡이 중요하다면 참가자들의 공동체적 관계는 연습 과정과 공연 과정에서 긴밀한 협업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한편 위의 모든 것이 충족되어도 결과물의 의미가 객석에 전달되지 못할 경우 공연이 완성될 수 없다면 <그대>는 교회의 전통과 풍부한 자원 덕분에 완성도를 꽤 갖추었기 때문에 관객과의 열정적인 소통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리고 위 각각의 요소들은 다양한 면에서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데 몇 가지 예만 들어보면 공동체성은 일종의 안전망을 형성하여 참가자들의 자기 검열을 줄이거나 상상과 표현의 자유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다른 예로 자기 주도성을 통해서 참가자들의 창의성이나 퍼포먼스가 극대화되면 이것은 다시 극적 완성도에 기여할 수 있다. 결국 <그대>가 참고할 가치가 있는 청소년극 사례이고 그 체험의 특성에 대해서 위와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대> 체험의 요소 혹은 그 조합이 청소년극 창작과정에서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어서 <그대 버려졌나>와 참가자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공동체, 소속감과 타인의 인정, 자기 주도성, 자유로움, 문화와 예술의 경험 등을 포함해서 <그대>의 체험은 당시 청소년들이 갈급하게 원했지만 교회 밖 현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경험을 제공해준 셈이다. 그 점에서 <그대>와 경동교회 중고등부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아니었나 한다. 한편 <그대>를 둘러싼 체험이 참가자들의 긍정적인 자기 인식, 공동체적 가치관, 진로나 적성의 발견 등의 측면에서 삼십년이 지나도록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어른이 된 많은 참가자들이 당시 행복감을 공동체성과 연관짓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아직까지도 공동체 경험에 가장 크게 영향 받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그리고 새삼 청소년/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공동체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또한 공동체 경험을 포함해서 자기 주도성이나 자유로움 등 <그대> 체험의 가치 있는 요소들을 청소년과 어른 모두의 현실에서 만나기 어렵다면 현실 속 진공과도 같은 청소년극 혹은 드라마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묻게 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극에 관한 논의는 아니나 예배로서의 <그대 버려졌나>를 생각한다. 당시 경동교회 구성원들이 ‘하나님이 누구시라고 믿었길래’ 아름다운 축제로 예배를 올렸는지 알고 싶다. 그리고 이제는 중2 때처럼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춤추는 일은 거의 없지만 여전히 그날 일어난 모든 일의 배후는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춤추시는 하나님이 인간/예술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리고 누구나 자기 모습대로 충만할 수 있는 드라마 공간이 예배소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