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민중신학 다시 읽기] 종합발제에 대한 논평 : '관계적 다원주의'와 정치적 코이노니아(안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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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종합발제에 대한 논평 : '관계적 다원주의'와 정치적 코이노니아」, 『신학사상』 83, 한국신학연구소, 1993 겨울.


 



어떻게 보면 순더마이어가 우리에게 아첨을 한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의 현실을 말하면서 우리의 미래를 아주 친절하게 제시한 것 같습니다. 저는 독일어로 된 원고를 미리 다 읽고 왔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내가 할 말은 별로 없구나, 내가 할 말을 다 막아 놓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먼저 간단히 언급하겠습니다.

 

'모더니즘'이라는 말과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을 아주 잘 설명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건축을 비유로 해서 설명한 것은 아주 좋은 교훈이라 보여졌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근본주의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또 근본주의와 다원주의를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를 연결시킨 것과 근본주의에 대해 다시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새로 배웠습니다. 사실 그 한계는 잘 알고 있었으나 적극적인 면을 거의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1950년대 말경에 제가 친구 순더마이어에게 우리나라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근본주의라고 한 것을 기억하고 있는 데 놀랐습니다. 사실 민중신학이 태동한 당시의 동기를 돌이켜 보면, 정치적 폭력과 교회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근본주의에 대한 저항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사무치는 원수였습니다. '모더니즘'에 대한 정의도 순더마이어에게서 새로 배웠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WCC의 활동도 오랫동안 모더니즘에 근거해 있었고 '교회일치'의 추구가 바로 그 예라고 설명한 것도 새롭게 배웠습니다. '일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결국 단일화된 세계질서를 강요하는 저의를 깔고 있다는 것, 그런 것을 우리는 언제나 우려해 왔습니다. 세계가 단일화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늘 걱정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걱정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소련이 아주 망해 양 블럭이 무너져 버려 그 걱정은 더 심해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도 역시 다원주의를 지지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동의하는 내용들을 말했는데, 이제 순더마이어가 말한 인상적인 것 몇 가지만 잡히는 대로 말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일치'라든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 가장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무서운 함정이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렇게 해서 경색된 세계의 미래를 미리 걱정하면서 그것을 깨려고 나선 운동의 하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를 그 주요 특성으로 한다는 지적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순더마이어는 영을 크게 내세웠습니다. 영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이 다원주의로 나가는 그리스도교인의 방향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첫번째로 문제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말한 ‘영'이라는 것을 새롭게 정의하지 않아도 되겠는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새롭게 정의하지 않으면 또다시 근본주의로 들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운동 속에서 '프뉴마'의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민중운동의 모습이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프뉴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우리 나라에서는 똑같이 '영'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기'라는 말로 바꾸면 어떻겠나 하는 제안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 ‘기'에 대한 설명을 이 자리에서 자세히 할 수는 없으나, 단 하나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순더마이어가 파악하는 다원주의보다 훨씬 포괄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개념이 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기'라는 말은 단순히 인간 사회의 관계만이 아니고 자연 전체의 관계까지 포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이 ‘영’이라는 말을 해석 없이 그대로 사용하면 또다시 과거의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나 하는 걱정과 더불어 코이노니아와 관련하여 무슨 새로운 제안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관계적 다원주의'라는 말을 쓴 것에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코이노니아는 자기와 같은 자들을 찾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찾아나서는 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다시 강조를 해둡니다.

 

이제 민중신학과 관련된 순더마이어 교수의 견해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순더마이어의 견해는 민중신학 자체보다는 민중신학을 전제로 한 민중교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가 이미 지적한 대로 민중교회가 이미 100여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제를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사건'이라는 것이 민중신학의 대단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70년대, 80년대 중반까지도 사건이 연속되었기 때문에 그 사건 사이에 공백이 없이 연속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민중교회도 민중운동이 연속됨과 더불어 맥을 같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민중운동의 양상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민중교회를 하는 젊은 목사들이 회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중운동이라는 의미의 교회'에 대한 관심에서 '교회' 자체의 의미를 찾아야 겠다는 관심으로 바뀐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건만이 연속된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일상성 속에 몰입이 되어 가는 현장에서 어떻게 근본주의로 무장한 교회가 아닌 민중의 교회로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한마디로 순더마이어가 지적한 대로 일상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그는 '잔치'라는 것을 크게 부각시키고 설명을 아주 잘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러한 노력의 뿌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놀라울 정도로, 아주 긴장된 70년대부터 민중신학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는 않던 선구자들이 놀이를 가장 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저기 앉아 있는 박형규 목사입니다. 박형규는 이른바 '민중신학' 이 나오기 전부터 민중들과 더불어 살았는데, 그들의 '놀이'에 아주 능합니다. 그리고 춤을 기가 막히게 잘 춥니다. 군수사기관에 의해 구타를 당하고 병원에 입원한 상황에서도 놀이를 통해 체득한 여유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통해 그는 절망과 어려움을 극복하는 훈련을 했다고 봅니다. 또한 사람은 나보다 한 살 위인 현영학 교수입니다. 이 사람은 신학보다 미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춤, 탈춤, 병신춤, 무당춤입니다. 그에게는 점점 예수보다 무당이 높이 보일 정도로 거기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축제와 춤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은 이론으로보다도 민중과 더불어 살면서 절실함을 그들은 느꼈던 것입니다.

 

아까 개회 예배중에 유동식 박사가 세 가지 그림을 그리면서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를 말했는데, 민중신학은 꼭 '그리스도와의 코이노니아‘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민중과 더불어 사는 속에서 코이노니아를 말하고 있고 거기에서 예수를 경험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코이노니아는 절대로 정치적 성격을 결여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 점에서 순더마이어에게 묻고 싶습니다. 순더마이어가 말한 코이노니아 개념에는 우리가 70, 80년대 그렇게 강력하게 부각시킨 정치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지는 않나 하는 것입니다. 악한 권력과 싸우는 과정에서 우리가 놀이를 필요로 했던 점을 좀더 강조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순더마이어는 순복음교회를 방문해서 거기에서 일원화된 현대성, 종교가 현대화된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민중의 모임인 것은 틀림없으나 거기에는 정치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바탕에 깔린 근본주의에 대해 말하자면, 순더마이어가 마지막에 잘 지적한 대로 그것도 역시 세상과 투쟁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도피구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이기주의, 개인주의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피안사상입니다. 근본주의가 세상의 악마와 싸우는 무기는 아까 순더마이어가 말한 대로 다섯 가지 기둥입니다. 이것은 물론 교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밀고 나가지 못할 경우에는 자기들이 숨을 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개인주의입니다. 개인구원을 사회구원하고 구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교분리라는 것을 내세웁니다. 마지막에는 성서무오설 같은 것을 내세워 누구하고도 대화를 단절합니다. 순복음주의는 이런 근본주의는 아닙니다. 비교적 그런 교리적 근본주의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정치적 강조점이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그 말은 바로 그것이 우리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민중이 모임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아편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순더마이어가 한 이야기를 대체로 다 동의합니다만, 특별히 잔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역시 정치적 성격을 뺀 잔치는 성서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 한국의 전통에서 탈춤을 비롯한 모든 민중들의 춤은 정치적 탄압구조 속에서 민중이 누리는 잔치였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성격은 탄압의 모양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상관이 없이 언제나 가질 수 있는 성격이라고 봅니다. 정치적 탄압이 있는 곳에서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도 잔치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황이 너무 긴장되어서 그 잔치마저 할 수 있는 폭이 너무 좁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적을 너무나 단순화시켰기 때문에 우리의 이론도 너무 단순화되어 있었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적도 다원화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투쟁―이 말을 저는 잔치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씁니다―도 다원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독일에 있어서의 잔치와 우리의 잔치는 모양이 다를 것입니다. 순더마이어는 잔치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최후 만찬을 예로 들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예입니다. 그런데 복음서가 최후 만찬을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되기 전야에 이루어졌다고 한 것은 가장 정치적인 표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고린토 교회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위 사랑의 만찬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없어지고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사크라멘트만 남았습니다. 역시 사랑의 만찬은 정치적인 성격이 희박하고 일상성에 빠져 버려서 점점 그 의미가 희박해지고 또 문제가 복잡해서 계층성만 노출시켰기 때문에 초대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것을 배제하고 최후 만찬을 기념하는 사크라멘트로 그들의 잔치를 성격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우리의 현장에서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볼 때에도, 그것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고 역시 탄압하에 있던 농민들이 저항을 내포한 또는 자기절망을 극복하며 우리끼리의 일치를 위한 축제라는 것을 전제하고 보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민중교회가 일상성를 극복하려면 잔치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을 아직도 우리가 해결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이를 보고 있는 친구 순더마이어가, 이 민중교회가 일상성을 극복할 수 있는 잔치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지 한 예를 들어 준다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끝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인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순더마이어 교수를 가리키며), 독일 교수들은 굉장히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가르쳐만 주었지 들을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일차되는 것만 찾았지 차이있는 것은 언제나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순더마이어는 차이 있는 것을 자꾸 찾으려고 노력하고 귀가 굉장히 크게 열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더마이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구체적 증거입니다. 그러나 보통 다원주의가 아니고 '관계적 다원주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도 그러한 모임이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 : 심원 안병무 아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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