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특별 연재] 그대를 찾아서 12(강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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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찾아서 12



강윤아(청소년 극연구자)


 

이 연재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91년 예술제인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당시 공연 체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40대가 된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경동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초반에 소개한 바 있다.

*이전 연재 보기 _ 클릭


K는 “그대” 당시 중3이었고 극 중 코러스였다. 현재는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며 20년째 워킹맘으로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인터뷰는 2020년 여름, 네 시간에 걸쳐 전화로 진행하였다. 대화 내용 중 주요 부분을 발췌한 후 K와 함께 윤문해서 소개한다. 아래 대화에서 Y는 나다. K와의 어린 시절 친분으로 서로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K: 제일 많이 기억나는 것은 친구들이 모두 공부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 그리고 부모님의 잔소리 속에서도 너무 열심히 교회 예술제 연습에 왔던 게 생각나. 그 입시 지옥 속에서 1주일에 두세 번 평일에 5시쯤 모여서 밤 11시까지 연습하고 막차 타고 집에 가는 걸 세 달은 넘게 했던 것 같아. 근데 그렇게 힘들게 왔으면 연습만 열심히 하고 빨리 집에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막상 와서는 엄청 떠들고 장난만 쳐서 맨날 연출 선생님께 수 없이 혼나고 연습 끝나도 다들 집에 갈 생각들을 안 했던 기억이 많이 나네. 

그 다음에 생각나는 거는 난 코러스를 해서 항상 뒤에서 너희가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실제로 너희가 춤도 너무 잘 추고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했어. 그 당시에 다른 교회들도 청소년부에서 “문학의 밤”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제 같은 문화 행사를 많이 했는데 친구들 교회 행사랑은 비교도 안 되게 멋지고 화려한 무대를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차별성에서 나오는 자부심도 상당했고 “역시 우리 교회는 달라”라는 생각도 많이 했지. 학교에 있지만 마음은 이미 장충동에 가 있었고 종일 학교 수업하면서도 연습하러 갈 생각만 하고 학교에서 친구들 보면 “너희는 학교 말고는 다른 세상을 모르고 성적 고민만 하지? 하지만 난 너희랑 다른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이런 생각하며 지냈던 것 같아. 그래서 난 사실 학교에서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친구 문제로 크게 고민을 안 했어. 교회 가면 친구들이 늘 있었고 언제나 많은 고민을 교회 친구들이나 후배들이랑 했으니까. 특히 너랑 많이 했지(웃음). 학교 친구들하고는 왠지 그냥 겉으로만 웃고 있다는 느낌, 진실한 관계 맺음을 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 컸던 것 같아. 그래도 학교에서 외롭거나 힘들진 않았어. 일요일마다 교회 가서 충분히 관계 맺음을 하며 인간관계의 채워짐을 경험하고 왔으니까. 

Y: 그게 뭐였을까... 그게 그냥 어리고 학교가 아닌 곳에서의 동아리였기 때문에 사심 없이 그럴 수 있었던 걸까 아니면 뭔가 교제였기 때문이었을까?

K: 만약 하나님이라는 구심점이 없이 그런 모임을 했다면 깊은 교제가 어려웠을 것 같아. 내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혹은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친구 따라 그냥 교회 출석만 했든지 간에 일단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과 사랑의 띠로 묶인 공동체니까 겉으로라도 더 이타적으로 행동하려 애쓰고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 고민하잖아. 그런 마음이 좀 더 진실한 관계 맺음을 가능하게 한 것 아닐까?

Y: 서로 진실하게 챙기면서 느끼는 편안함이 사람한테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아.

K: 진짜 중요하지. [...] 아마 순수한 시절이라 더 가능했던 것 같아. 우리가 이제 세상에 찌들어서 그런가? 사람에 대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잖아. 관계 맺음을 해야 할 때도 적당히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만 나를 드러내게 되고.

K: 그때는 “우리는 사랑의 띠로...”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겠네...” [자주 부르던 노래 가사] 하면 진짜 믿었지. 

K: (웃음) 그거지. “친구야 우리 우정 영원히 간직하자.”가 진심인 시절~

   

당시 중고등부 경험이 K에게 끼친 영향에 관해서 이야기하였다. 

   

K: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친 것 같아. 늘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니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객관적으로 나를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아. 이 외에도 나랑 맞지 않는 사람과 잘 지내는 방법, 갈등이 생겼을 때 원만하게 해결하는 방법, 소외감을 느낄 때 대처법 등... 나는 거의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교회 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같아. 우리가 중고등학교 때 맨날 고민했잖아. 소외된 친구들이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이 공동체 안으로 새 교우가 들어와서 잘 적응할 수 있게 해줄 것인가? 늘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이런 사고가 기본적으로 몸에 배어 있어. 어릴 때부터 훈련된 그런 배려와 이타심이 사회생활 할 때 그대로 나타나더라고. 예를 들어 회사 생활을 할 때도 업무 성과가 좋아서 승진하는 것보다 사람들하고 좋은 관계 맺음을 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도움이 되어 줄 때 진짜 보람을 느낀다거나. 아이들을 키워보니 아이들이 친구들하고 놀 때 보면 꼭 그룹에서 소외되는 애들이 생기거든. 그러면 자꾸 소외되는 아이들에게 신경이 쓰여.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자꾸 소외된 친구들을 챙기라는 얘기를 하게 돼. 내가 착해서 그런 생각을 태어날 때부터 했겠냐고?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동안 내가 경험한 기독교적 공동체 생활이 저절로 나에게 더불어 사는 삶의 태도를 가르쳐 준 것 같아. 

   

특히 예술제가 K에게 끼친 영향이 무엇인지 질문하였다.

   

K: 우리가 경험한 독특한 교회 생활이 다 복합적으로 영향을 준 거라서 예술제만이 준 영향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굳이 꼽아야 한다면 “자기 주도성” 같아. 다른 교회 활동은 선생님들이 어쨌든 큰 아웃라인을 그려 놓고 진행하시는 데 예술제는 온전히 A부터 Z까지 선생님이 전혀 개입을 안 하시잖아. 기획부터 극본, 연출가 섭외, 무대 준비, 연습 일정, 심지어 팜플렛까지 전부 학생들 힘으로만 진행했지. 입시라는 인생의 첫 관문을 향해 달려 가야 하는 수동적이고 획일적인 학창 시절에 자기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었다는 것! 근데 심지어 그 활동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 심장 떨리는 설레임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혜택이었던 것 같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추억할 수 있는 엄청난 자산을 가진 거지.

[...]

하지만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신앙적 체험을 한 이후에 그 시절을 생각할 때 깨닫게 된 아쉬운 점은 분명히 있어. 예술제 준비부터 공연까지의 모든 과정을 철저하게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를 잘 올려드릴 수 있을지 좀 더 신앙적으로 접근하는 훈련이 목회자나 선생님을 통해 좀 있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이 많이 아쉬워.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는 건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준비한다는 것이 어떤 과정을 필요로 하는 건지 전혀 모른 채 “몸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구호만 있었던 것 같아. 그냥 우리 느낌, 우리 고민... 우리만의 방식으로 행사를 잘 진행하고 잘 마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겠거니 약간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그 큰 행사를 치렀다는 게 두고두고 아쉬워.

[...]

Y: [인터뷰한 사람 중에] 신앙생활을 계속 한 사람들은 그 비슷한 한계에 관해서 얘기하기도 해. 그래도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우리가 당시로서는 감성이나 지성을 총동원해서 했던 것 같아. 

K: 응. 그랬던 것 같아. 기억나지? 목포 디아코니아 수녀회 갔을 때. 거기가 너무 잊히지 않아. 

Y: 나도 그래. 예배당 가던 숲길도 기억나고. 

K: 그때 장소도 특별했고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가지면서 영성을 훈련하는 시간도 좋았고 너가 갑자기 없어져 버려서 우리가 온 숲을 헤매며 찾아다녔던 것 기억나? 

Y: 내가 산에 가서 풀을 보면서 명상하다가 정신을 놓아버려서 밥때를 잊어버린 거지... 

K: 그래. 그때 난리가 났었는데 어떤 선생님이 널 찾아가지고 데리고 내려 오셨는데 그때 너의 너무 진지했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

Y: 우리가 말씀을 충분히 못 읽었다거나 그런 얘기들을 하는데 그렇게 뭔가 감각적으로... 

K: 감각적으로 정서적인 터치를 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이 많았어. 중고등부에서 했던 활동들 중에... 그게 너무 독특해가지고 대학에 갔는데 너무 유치한 거야. 나 저거 다 중고등학교 때 해봤고 심지어 우리가 다 준비해봤는데. 그래서 대학생활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재미없게 지냈던 것 같아. 심드렁...

Y: 그래. 그러니까 감각적인 게 열등한 게 아니고. 물론 성경 공부도 그렇고 다 중요하지만 뭔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하고...

K: 터치하는 게 있어. 

Y: 맞아. 그런데 그게 어떻게 모자란 거라고 폄하할 수 있냐는 말이지 내 말은. 이렇게 생생한데. 

K: 응 무슨 말인지 알겠어. 분명히 네 말 대로 그게 거짓이 아니고 감각적으로만 사람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야. 다른 게 뒤에 흐르지. 근데 중요한 것은 중고등학교 때 우리가 느꼈던 정서적 터치가 거짓은 아닌데 그게 전부는 분명 아닌 것 같아.

[...] 

Y: 재미있는 게 사람들이 중고등부 한 가지를 놓고 이야기하는데 다 관점이 달라. 예를 들면 A는 그게 일종의 자유로운 철학 교육 같았고 그래서 [A의] 아이들도 우리가 했던 것처럼 사유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고... 

K: 그건 진짜 탁월하지. 경동교회만 한 곳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나도 그 말 너무 이해하고 실제로 우리가 너무 많은 걸 받았기 때문에. 그 풍성한 문화의 향유를 내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나도 있어. 나도 그것 때문에 실제로 엄청 고민하고 있어

Y: 언니가 말하는 그게 뭐지?

K: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거,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거!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엄청난 장점이지. 특히나 교회라는 특수한 곳에서... 강목사님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잖아. 어떤 형식과 모습으로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온전한 자유를 허락해 주셨지. 그런데 인간에게 허락된 자유란 것이 사실 너무너무 위험한 거라서... 본질을 확실히 붙잡고 자유로우면 괜찮은데 본질이 흔들리는데 자유가 커지면 되게 위험한 것 같아. 

Y: 자유롭다는 게 어떤 거지?

K: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거. 어디에도 한계를 두지 않고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질문 할 수 있는 거. 그게 얼마나 특별한 건지 몰라. [...] 우리가 실제로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슈에 대해서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 울 때가 있잖아. 근데 하물며 복음을 이야기하는데 내 멋대로 말하고 생각하는거를 허용하는 교회가 있고 내가 그곳에서 젊음을 보냈다는 것이 특별한 혜택이었지. 우리는 그때 이해가 안 되면 뭐든 다 질문할 수 있었고 말도 안 되는 개인적인 생각도 다 말할 수 있었어. 그 자유가 주는 의미와 장점이 분명이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자유가 과연 가장 중요한가에 대해서 여전히 질문이 있어. 나 같은 경우 너무 자유로운 사고 안에서 하나님을 반쪽만 알다가 이제서야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가는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라서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경험한 순서 말고 흔히 말하는 보수적 신앙의 토대 위에 아이가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찾아가도록 해주고 싶어졌어. 왜냐하면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만 이해하는 건 되게 위험한 신앙이더라고 지나고 보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수학 공부하듯 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 내 시간과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나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알려면 너의 자유는 포기하라 한다면 난 기꺼이 자유를 포기할 의사가 있어. 지식적으로 많이 알지 못해도 그냥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 같거든. 절대자가 인도하는 삶...그것보다 더 안전한 삶이 어디 또 있을까? 안전하니까 행복하고 행복하니까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는 것 같아.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말이야. 

(끝)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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