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설교 노트] 메시아를 구원하라! : 누가복음 10:25~37를 중심으로(정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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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를 구원하라! : 누가복음 10:25~37를 중심으로1)



 정용택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1.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자세히 읽기

 

오늘 살펴볼 본문은 교회를 안 다니는 사람들도 다 알만큼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10:30-35)가 담긴 본문입니다. 이 비유가 얼마나 유명하면 영어권 사전들에는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이라는 단어가 공식적인 용어로 등재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비유를 모티프로 하여 일명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 또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까지 제정되어 있는데, 이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을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Failure-to-Rescue)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규”라고 합니다. 

 

그런 사실과 별개로 이 비유가 다른 복음서에는 없고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발견되기 때문에 신학자들 역시 오래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비유 관련 본문들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 이 비유를 전후로 포괄하고 있는 예수님과 율법교사의 대화 이야기(10:25-37)는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비유이자 본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레니우스‧터툴리안‧오리겐‧어거스틴 등의 교회사의 전설적인 초대 교부 시대부터 루터와 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개혁 시대를 거쳐 알레고리적 해석과 과감히 단절함으로써 비유연구의 현대적 지평을 연 율리허(A. Jülicher) 이후로 현대 성서학, 그리고 교회의 설교 강단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해석들이 제출되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제출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비유의 역사적 진정성, 즉 이 비유가 복음서 저자를 넘어 역사적 예수에게서 실제로 기원하는가를 물었을 때 예수의 진정한 말씀들을 투표에 붙여 가려낸 후 책까지 냈던 예수세미나(Jesus Seminar)에 속한 의심 많은 성서학자들조차도 대부분 “기탄없이 확신의 표를 준, 예수에게 돌려진 상대적으로 적은 구절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이 본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예수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본문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 본문을 다룰 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앞뒤로 나오는 맥락은 빼고 비유 본문만 먼저 살펴보고, 곧이어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식을 취하곤 합니다. 일단 저도 그렇게 접근해보겠습니다. 비유를 다시 좀 살펴보면,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유대인인지 사마리아인지 헬라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청년인지 노인인지 성직자인지 평신도인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 내려가던 중에 숨어 있던 강도들을 만나, 옷이 벗겨질 정도로 폭행당해, 거의 죽게 된 채로 버려졌습니다. 마침 우연히 한 유대인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다가 그를 발견했지만 피해서 가버립니다. 한 레위인도 그곳을 지나가다 그를 보았지만 역시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인은 생면부지의 그를 발견하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그에게 다가가 그의 상처를 자신이 갖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직접 치료해주고 붕대를 감아주었습니다. 말 그대로 응급처치를 하여 그를 살려낸 것입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어떤 사람을 자기 타고 온 짐승 위에 대신 태워서 여관으로 데려가 정성껏 돌봐주기까지 했습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서 여관 주인에게 지불하고, 이렇게 부탁하고 떠납니다. “나 대신에 이 사람을 당신이 돌보아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러서 이 사람을 먹이고 재우고 돌봐주는 데 들어간 추가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2. 본문의 전체 구조 다시 살펴보기

 

예루살렘, 여리고, 제사장, 레위인, 강도, 사마리아인 등등 역사적으로 의미심장한 배경과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비유 그 자체만으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누가복음은 이 비유의 앞뒤로 또 다른 맥락을 추가합니다. 바로 예수님과 율법교사의 대화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앞에서 그 서론의 역할을 하는 25-29절과 그 뒤에 추가된 36-37절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까지 포함해서 이 본문의 전체 구조를 보자면, 



이 본문은 전체적으로 율법교사의 질문-예수의 반문-율법교사의 대답-예수의 긍정 및 명령의 대화 패턴이 반복되는 완벽한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그 앞에 나오는 대화와 그 뒤에 나오는 대화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 이유로 일부 학자들은 비유의 본문(30-35절)만이 실제로 예수에게 기원을 두고 있고, 그것을 전후로 감싸고 있는 예수와 율법교사 간의 논쟁설화는 누가복음 저자에 의해 나중에 첨가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해석이 전혀 설득력 없진 않은데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영생에 관한 대화를 주고받고 있는 25-28절은 마가복음 12:28-31과 마태복음 22:34-40에서 그 평행본문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가복음의 대화에서는 영생이 주제이고,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서는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인가가 쟁점으로 부각되며, 마가와 마태는 두 계명을 예수님이 답하지만, 누가복음은 반대로 율법교사가 답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공관복음 모두 율법교사와 예수의 논쟁설화의 형태를 띠고 있고, 율법의 정신을 집약하는 사랑의 이중계명이 답변의 주제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마가와 마태에는 없고 누가에서만 발견되므로, 이 비유는 확실히 누가만의 특수한 자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 비유가 역사적 예수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더욱이 영생에 관한 율법교사의 첫 번째 질문과 이웃이 누구냐는 두 번째 질문, 그리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준 다음에 누가 이웃이 되어주었냐는 예수의 질문이 논리적으로 연결이 잘 안 된다는 지적 역시 일견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대체로 학자들은 누가복음에서 이 비유가 자리 잡은 문맥이 다소 어색할 뿐만 아니라, 누가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이 비유와 그 앞뒤의 다른 두 복음서와의 평행본문으로 인정되는 논쟁설화 간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두 복음서와 차별화된 누가만의 편집의 흔적이 엿보이므로, 오히려 이 비유 자체는 역사적 예수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둘째, 비유 앞에 놓인 대화에서 율법교사가 언급하는 이웃과 비유 뒤에 추가된 대화에서 예수께서 언급하는 이웃의 의미가 다르기에, 즉 앞에서 율법교사는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뒤에서 예수님은 사랑을 베푼 주체로서의 이웃이 누구냐고 되묻고 있기 때문에, 다른 두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공관복음 자료에 속하는 25-28절의 이야기에 누가가 자신만이 갖고 있었던 30-35절의 비유를 덧붙이는 과정에서, 임의로 만들어낸 것이 29절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과 36-37절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가에 관한 대화가 아니냐는 것이지요. 여기서 다시 학자들마다 의견이 갈리는데요. 어떤 학자들은 36-37절은 30-35절과 원래부터 한 덩어리였다고 보고 누가의 편집(특히 29절)을 거쳐서 첨가된 것은 다른 두 복음서와 평행하는 25-29절의 대화일 뿐이라고 보는 반면에, 또 다른 학자들은 36-37절 역시 누가에 의해 추가된 것이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오직 30-35절에만 해당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자에 속하는 학자들은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여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이 비유의 장르를 규정한다고 보고, 이 비유를 자신의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도덕적 원리를 예시하기 위해 제시된 예화(example story) 혹은 본보기 비유의 하나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누가의 문맥 속에서 관찰하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이웃이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 이웃을 설명하기 위한 예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이웃이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는 사람”이므로 비유 자체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측은히 여기고 살 수 있게끔 도와준 사람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김판임,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30-35) 연구」, 『신약논단』 제14권 제4호, 2007년 겨울, 1020).

 

그러나 후자의 학자들은 “누가가 예수 전승에서 두 개의 독립적인 단락들―두 가지 계명에 관한 대화와 착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비유―을 하나로 연결시켰고, 또한 앞의 것을 사용해서 뒤의 것을 해석했다”고 이해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누가는 예수의 도전하는 비유를 본보기 비유로 바꾸어놓았다”고 주장합니다(존 도미닉 크로산, 『비유의 위력』, 2012, 89-90).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원래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교훈을 전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당시에 엄존했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간의 갈등을 배경으로 하여, 제사장‧레위인으로 대표되는 유대인들의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적 편견을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였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선한 유대인들에게 사마리아인들이 혼혈과 변절자로 간주되어 차별과 혐오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면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인을 영웅으로 제시함으로써 유대인들이 갖고 있었던 인종주의적 편견에 인식론적 충격을 가하고 선행은 유대인들만의 독점물이라는 우월주의에 도전하고 있는 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선행에 관한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예화로 보는 것보다는 그 자체로 인종주의적 편견과 혐오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전복하는 도전적인 메시지로 보는 것에 공감해왔습니다.

 

 

3. 상호의존적 관계로서의 이웃

 

그런데 저는 요즘 들어 현대 학계에서의 이러한 해석학적 대립이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보는 입장으로 점점 기울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해석이든 후자의 해석이든 기본적으로 영생에 관한 최초의 질문과 이후에 나타나는 이웃에 관한 두 개의 질문(“내 이웃이 누구입니까”와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은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보는데, 그런 입장에 잘 동의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일차적으로 저는 영생 혹은 구원에 관한 문제와 이웃 사랑에 관한 문제, 요컨대 구원론과 윤리학은 하나님 사랑을 매개로 하여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29절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는 율법교사의 두 번째 질문이 30-35절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도입하기 위해 누가복음 저자가 공관복음의 공통자료(25-28절)에 무리하게 갖다 붙인 편집구로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29절에선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object)으로서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정작 37절에서는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subject)로서의 이웃이 누구냐고 물었기 때문에,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앞에 놓인 대화 부분과 비유의 뒤에 놓인 대화는 이웃의 의미에 관해 서로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는 주장 역시 이웃이라는 개념에 내포된 상호의존성을 간과하고 있는 신학자들의 주객 이분법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고 봅니다.

 

최근에 EBS에서 각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 40인의 강연을 담은 시리즈를 제작해서 방영하고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역사), 마이클 샌델(정치철학), 폴 크루그먼(경제), 조지프 나이(정치), 리처드 도킨스(생물) 등 세계적으로 높은 지명도를 가진 학자들의 강연을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전달하여 많은 호응을 얻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에서 유독 한 사람에 대해서만 논란이 일어났지요. 학문적인 논란은 물론 아니고요. 한국의 극우개신교를 중심으로 하는 혐오세력들이 젠더이론가이자 퀴어이론가이며 정치철학자인 주디스 버틀러 미국 버클리대 교수의 방송을 철회하라고 그야말로 방송사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난리를 치고, 말도 안 되는 온갖 음해성 기사와 논리적 비약으로 가득한 글을 우후죽순으로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나 버틀러는 젠더이론 및 퀴어이론에 대한 혁신적 기여를 넘어, 우리 시대의 철학적 논의를 선도하고 있는 매우 뛰어나고 중요한 철학자이며, 그분의 이론과 저작들은 현대신학의 담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조건으로서의 ‘불안정 상태’(precariousness)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서부터 금융적‧신자유주의적‧노동배제적 축적체제에 의해 차별적으로 배분된 특정 인구의 ‘폐기 가능성’(처분 가능성)에 관한 사회비판적 논의, 그리고 ‘불안정 상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보편적 조건을 나타내는 존재론적 범주로서 주로 타자의 폭력에 노출된 인간의 ‘육체적 취약성’(corporeal vulnerability)에 관한 논의에 이르기까지 저 역시 버틀러의 작업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앞서 말한 오늘의 본문에서 세 차례 언급되는 이웃에 관한 상반된 개념화, 즉 사랑의 실천 대상으로서의 이웃(27, 29절)과 사랑의 실천 주체로서의 이웃(36절)에 관한 신학자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버틀러를 참조해서 비판해보자면, 강도를 만나 죽어가다가 사마리아인을 통해 다시 살아난 그 어떤 사람의 관점에서 “상해를 입은 뒤에 할 수 있게 되는 한 가지 생각은 내 삶이 저 밖의 타인, 내가 알지 못하고 또 절대로 알게 되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통찰”이 신학자들에게는 부재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버틀러는 이처럼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이름 모를 타인에 대한 이 근원적 의존”을 상호의존성이라 명명하고 우리는 이러한 상호의존적 조건으로부터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 2018, 9).

 

“타인의 삶들은 나를 넘어서서 존재하는 삶의 일부로서 이해될 때 내 존재의 조건이기 때문에, 나의 삶만이 삶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결국 “살아 있다는 사실은 이미 나 스스로를 넘어서, 그리고 나의 인간성을 넘어서 다른 살아 있는 존재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버틀러,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2020, 65).

 

이러한 상호의존성의 논리로 보자면, 내가 사랑을 실천해야 할 대상으로의 이웃과 나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로서의 이웃은 서로 분리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나에게 사랑의 실천 대상으로서 이웃일 수 있지만, 나는 그에게 사랑을 베푼 주체는 아닐 수 있다면, 그런 이웃 관계는 일방적 시혜 관계일 뿐, 온전한 의미에서의 이웃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웃일 수 있지만, 상대방은 나에게 이웃이 아닌 그런 일방적 관계는 애초부터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누가복음이 이웃을 이중적 의미로 사용한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차원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그 개념의 본질적인 양면성을 정확히 포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 강도 만난 사람과의 만남이 그리스도 사건이다

 

지금까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 그리고 예수와 율법교사의 논쟁적 대화에 관해 제가 들려드린 해석들은 모두 현대 신약성서학의 해석을 전제로 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어렵고 재미없는 학문적 해석보다 우리에게 더욱 친숙한 해석은 이런 것 아닐까요?



지금 들려드린 이야기는 교회사의 위대한 교부인 어거스틴의 해석이었습니다. 이른바 ‘알레고리적 해석’이라 불리는 이러한 해석은 학문적 비유 연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폐기된 접근이지만, 한국의 교회 강단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해석 방법으로 남아 있습니다. 복음서의 비유들 가운데는 알레고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한 비유들도 있긴 하지만(대표적으로는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씨 뿌리는 비유”), 현대의 학자들은 대체로 알레고리적 해석이 예수님의 비유를 해독되어야 할 암호와 같은 것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잘못된 접근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알레고리적 해석은 비유가 말해진 원래의 역사적 자리를 제거하고 비유를 무역사적으로 추상화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김창락, 『귀로 보는 비유의 세계』, 1997, 199-205).

 

그런데 민중신학 1세대를 대표하는 신학자이신 서남동 선생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관해 당시에도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학계에서 평가되고 있었던 알레고리적 해석을 비틀어서,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강도 만난 사람 가운데 그리스도의 역할을 담당한 것은 전통적인 해석처럼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오히려 ‘강도 만난 사람’이라는 독특한 해석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서남동, 「한(恨)의 형상화와 그 신학적 성찰」, 『민중신학의 탐구』, 1983, 107). 서남동 선생은 왜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생각한 것인지 설명하기 전에 일단 서남동 선생이 자신의 해석의 전거를 현대 신약학의 비유 해석이 아니라 전통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에서 찾았다는 사실의 중요성부터 짚어보겠습니다. 현대신학의 안테나라 불릴 정도로 신학의 최신 동향에 밝았던 서남동 선생은 왜 뜬금없이 시대착오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을 비틀어서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주장한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서남동 선생은 알레고리적 해석에선 영생 혹은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서남동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강도를 만나서 얻어맞고 빼앗기고 사경에 처해서 도움을 부르짖는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신음소리(한)가 바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부름인 것이다. 그 사람에게 대한 태도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태도다. 그 신음소리에 대한 각자의 응답과 행동에서 인간 속에 잠재해 있는 인간성이 실현되기도 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질식되어 버리기도 한다. 거기에 구원과 멸망의 갈림길이 있다. 필자는 이렇게 찾아오시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세속적 그리스도’라고 명명한 바 있는데 … 그 모습을 다시 ‘한의 그리스도’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고통당하는 이웃의 절규에 응답함으로써 우리가 예수의 고통에 동참하게 되는, 즉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과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가 고통받는 이웃의 모습으로 세계 가운데 현존한다는 것은 예수를 본받아 우리가 우리 자신과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있는 이웃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예수의 삶과 죽음에 신앙으로 동참하는 구원의 과정과 이웃의 해방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윤리적 실천의 과정이 하나로 합치됨으로써 신앙과 실천, 구원과 윤리가 통합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와 율법교사의 대화 주제가 영생이고, 그 영생의 방법으로 사랑의 이중계명이 제시되며, 그 예시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제시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생, 즉 영원한 삶/생명[원어로는 조엔 아이오니온(ξωην αιωνιον)]은 명백히 종말론적인 개념으로서 다니엘서 12장 2절에 처음 나온 후로 유대 문헌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에 주목한다면, 서남동 선생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굳이 전통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에 전거를 두고 재해석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서남동 선생은 이 비유를 예수와 율법교사의 논쟁설화를 포함하여 그 앞의 본문들에서부터 이어지는 현재적 종말론의 전망에서 파악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고라신과 벳새다, 가버나움에 대한 일련의 심판 선언(10:12-15)과 바로 이어지는 예수의 사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곧 예수 자신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단언(16절), 그리고 시차를 두고서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귀신들의 항복을 보고하는 70인(또는 72인)의 제자들을 묘사하는 가운데 나타나는 사탄의 패퇴에 대한 예수의 확정(17-18절), 제자들의 권능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특권의 축복에 대한 선언까지(19-20절),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놓인 누가복음 10장은 일관되게 현재적 종말론의 정조(情調)로 충만합니다. 최후의 심판과 축복이 베풀어준 종말의 날이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복음 10장 전체는 종말의 때에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영생의 축복을, 그리고 구원받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저주를 내리며 도래할 것으로 알려져 있던 메시아가 지금 여기에 이미 와있다는 것, 지금 현재가 바로 종말의 때임을 확증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런 문맥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의미를 파악한다면, 이 비유는 이미 도래한 메시아를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되며, 또 어떻게 그 만남에 임해야 하는지를 비유로서 전달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그러므로, 너도 가서 메시아를 구원하라!

 

실제로 서남동 선생의 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비유에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이 비유의 청자들/복음서의 독자들에게 갖는 역사적 함의를 무시하고 단순히 그가 예수를 상징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보았던 전통적인 알레고리적 해석에서처럼 강도 만난 사람을 그리스도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현대적 비유 해석처럼 서남동 선생도 당시 유대인들에게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었던 사마리아인들의 삶의 자리를 전제하고 이런 해석을 펼친 것입니다. 이처럼 서남동 선생이 강도 만난 사람이 그리스도라는 주장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이 비유에서 누가 진짜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냐는 알레고리적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과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이 차례로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종말론적이고 민중사건론적 함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강도 만난 사람과의 마주침은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는 구원사건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만남을 메시아와 만남으로 마주하기를 회피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이웃의 고통에 적극적으로 응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메시아의 고통에 동참하는 구원사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을 서남동 선생을 따라 민중신학적으로 해석했을 때 도달하는 충격적인 결론은 우리가 이웃에 대한 사랑,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연대를 실천할 때, 우리는 메시아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그 어떤 사람을 자신이 사랑을 실천해야 할 이웃으로 인식하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그것이 결국 고통 받는 이웃의 모습으로 나타난 메시아를 구원한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입니다. 이웃이 상호의존적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듯이, 이웃으로서의 그리스도, 민중사건으로서의 예수사건 속에 현존하는 민중예수 역시 우리를 구원하는 존재인 동시에 우리에 의해 구원받는 존재입니다. 메시아가 우리의 이웃의 모습으로 현존하는 이상 그분과 우리 역시 상호의존적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고통 받는 이웃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는 메시아를 구원하는 행위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궁극의 윤리적 행위일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나의 마음을 다하고 나의 목숨을 다하고 나의 힘을 다하고 나의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와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는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구원과 윤리를 하나로 완성하는 영원한 삶/생명의 길이 될 것입니다. 아무 자격도 없는 우리가 은혜로 의롭게 됨을 얻은 것에 합당한 자로서 고통받는 우리의 이웃들―민중신학이 민중이라 명명해온 이들―에게, 더 정확히는 그러한 이웃/민중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신 메시아의 고통에 동참할 때, 심판과 축복의 종말의 현재적 도래를 선언하신 메시아의 구원사건 역시 우리의 행동에 의해 현실화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하심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롭게 하심 역시 소급하여 적절했던 것으로 정당화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의 마음을 다하고 나의 목숨을 다하고 나의 힘을 다하고 나의 뜻을 다하여, 우리의 이웃, 우리의 메시아를 구원하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이 글은 2021년 10월 10일, 천안살림교회 예배의 설교 원고를 수정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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