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모멘텀
정혜진(제3시대 기획실장)
지난 몇 년간 제3시대는 열심히 여성주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여성 필자와 강사를 섭외하며 여러 여성들과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웹진의 필자를 섭외하면서는 당신과 그리고 또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고 싶다, 웹진 기고가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는 식의 열렬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나 여성들과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여성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여성주의 담론을 생산하는 연구소이기를 넘어 여성들이 함께하는 연구소가 되는 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의 여러 정황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고, 연구소 운영 외의 연대 활동이나 회원 및 수강자와의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사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소 구성원의 성비가 극히 불균형하고, 여성주의 조직문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소의 동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동료애를 나눠 주었지만, 나는 연구소의 유일한 여성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때때로 나 자신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혹자는 의아할 수도 있다. 연구원들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게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종종 싸움을 걸었으니까. 그러나 여성들은 이해할 것이다. 스스로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이 감각을. 조직 내에서 스스로가 토큰으로 위치하고 있는지 경계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구조, ‘제도로서의 남성’1)이라는 구조를 극복하고 여성주의 동료애를 형성하는 과정의 필요에 대한 진정한 동감을 바랐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여성주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다시금 마음을 모았다. 제한적인 환경에서나마 조직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서로 씨름했고, 양보했고, 인내해 주었다. 연구소와의 만남의 첫 마음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겐 함께할 새로운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은 나 자신을 보이게, 들리게 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 왔던 것 같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보이게, 들리게 하는 데 마음을 쏟고 싶다. 이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여성 연구자들, 함께 방황할 동료를 찾는 이들이 연구소에 머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난 십수 년간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다함없이 헌신해 주신 정용택 전 연구실장, 김윤동 전 기획실장께, 이름도 빛도 없이 실무노동으로 연구소를 지탱해 주는 이성철, 유영상 연구원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새로운 기조 중 하나는 대외적 성과보다 여성주의 조직문화를 위한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보가 대단치는 않을 것이나, ‘별일’일 것이다.
1) 김나미, 「인용의 정치학: 맨사이팅(man-citing)을 넘어서」, 웹진 제3시대, 2023년 가을호, 참조.
ⓒ 웹진 <제3시대>
여성주의 모멘텀
정혜진(제3시대 기획실장)
지난 몇 년간 제3시대는 열심히 여성주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여성 필자와 강사를 섭외하며 여러 여성들과 온·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웹진의 필자를 섭외하면서는 당신과 그리고 또 다른 여성들과 연결되고 싶다, 웹진 기고가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는 식의 열렬한 편지를 쓰곤 했다. 그러나 여성들과 실질적으로 연결되어 ‘여성주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여성주의 담론을 생산하는 연구소이기를 넘어 여성들이 함께하는 연구소가 되는 데에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코로나 이후의 여러 정황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고, 연구소 운영 외의 연대 활동이나 회원 및 수강자와의 교류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사정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연구소 구성원의 성비가 극히 불균형하고, 여성주의 조직문화를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구소의 동료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동료애를 나눠 주었지만, 나는 연구소의 유일한 여성 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때때로 나 자신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혹자는 의아할 수도 있다. 연구원들 중에서 둘째 가라면 서럽게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종종 싸움을 걸었으니까. 그러나 여성들은 이해할 것이다. 스스로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는 이 감각을. 조직 내에서 스스로가 토큰으로 위치하고 있는지 경계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인 구조, ‘제도로서의 남성’1)이라는 구조를 극복하고 여성주의 동료애를 형성하는 과정의 필요에 대한 진정한 동감을 바랐다.
그리고 연구원들은 ‘여성주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다시금 마음을 모았다. 제한적인 환경에서나마 조직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해 서로 씨름했고, 양보했고, 인내해 주었다. 연구소와의 만남의 첫 마음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우리에겐 함께할 새로운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간은 나 자신을 보이게, 들리게 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워 왔던 것 같다. 이제는 여유를 갖고 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보이게, 들리게 하는 데 마음을 쏟고 싶다. 이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여성 연구자들, 함께 방황할 동료를 찾는 이들이 연구소에 머물며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지난 십수 년간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다함없이 헌신해 주신 정용택 전 연구실장, 김윤동 전 기획실장께, 이름도 빛도 없이 실무노동으로 연구소를 지탱해 주는 이성철, 유영상 연구원에게 특별히 감사를 전하고 싶다. 우리의 새로운 기조 중 하나는 대외적 성과보다 여성주의 조직문화를 위한 내실을 다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행보가 대단치는 않을 것이나, ‘별일’일 것이다.
1) 김나미, 「인용의 정치학: 맨사이팅(man-citing)을 넘어서」, 웹진 제3시대, 2023년 가을호, 참조.
ⓒ 웹진 <제3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