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여름, 기획기사] 기사련 운동을 옹호하며 (김민아)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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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련 운동을 옹호하며









김민아(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이하 기사련)는 한국의 진보적 개신교 사회운동 단체들의 연대 모임으로 2023년 현재 창립 52주년을 맞았습니다. 1971년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현장 조직 및 연대활동으로서의 운동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현재는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기빈협),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 기독여민회(기여민), 기장생명선교연대, 새시대목회자모임, 영등포산업선교회, 생명평화기독연대, 일하는예수회, 큐앤에이, 평화교회연구소,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한기연),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K),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이렇게 14개 단체가 회원단체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사련은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과 민중생존권 투쟁에 적극 참여하며 군사독재 정권의 탄압 아래 일반 사회운동이 숨죽일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을 보호하고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기사련 운동은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합니다. 기사련 소속 단체들은 변화된 환경에 맞춰 새로운 운동 주제를 발굴하고 그에 맞는 조직 체계를 구축해야 했습니다. 후속 활동가 세대를 모으고 훈련해야 함과 동시에, 부족한 재정을 채우기 위해 후원조직도 확립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제를 발 빠르게 성취하지 못한 단체들은 해소 위기를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 기사련 운동의 필요성과 가치는 더욱 커졌습니다.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적 모순과 빈부 격차는 심화되어만 갑니다. 노동에 대한 자본의 통제는 더욱 세밀하고 세련되어져서, 자본가 대 노동자라는 이분법적 구조로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권력은 노동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화적, 상징적으로 더욱 촘촘한 억압 기제들을 작동시키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기사련 운동은 여러 다양한 민중현장에서 다시금 요청되고 있습니다. 투쟁 노동자 수가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사업장, 몇 년을 끌어오는 지난한 투쟁, 명확하지 않은 전선 때문에 어떤 시민단체에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사람들, 억울하고 답답해서 뭐라도 해보려 하는데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를 낼 수 없는 이들이 기사련을 찾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요청이 있는 곳으로 기사련은 갑니다. 승리로 이끌 투쟁 전략이 없어 보여도, 당사자의 요청이 정치적으로 완전히 정당하지 않아 보일지라도, 한없이 무모하고 끝이 나지 않을 싸움이어도 기사련은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숨죽이고 있는 민중과 함께 머뭅니다. 이렇다 할 성공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패배하지도 않는 민중의 투쟁에 기사련은 함께 하고, 이로써 민중 현장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사회운동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현장 중심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현장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가 현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기사련 운동에서 현장은 언제나 명확합니다. 투쟁하는 이들이 있는 곳, 그곳이 현장입니다. 다소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나, 2023년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억압당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생명과 인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기사련은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현장 운동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자기 초월적인 역사의 주체로서의 민중 담론이 유효하고 필요합니다. 민중 메시아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논의를 넘어 자기 구원의 몸짓이 자기 존재를 초월하여 예수의 구원사적인 맥과 이어지는 민중 담론은 운동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요청되고 있습니다. 고난을 견디는 민중, 살아남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민중, 그러한 과정에서 결국은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획득하는 민중, 희망 없는 세상에 희망이 될 수 있는 민중의 투쟁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언어화하는 작업이 현장으로부터 요청되는 것입니다. 기사련은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소중하게 여기려고 노력합니다. 도무지 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 속에서, 혹여 답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민중의 고난과 투쟁, 그리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향으로 인해 기사련 운동이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시각을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왕왕 받습니다. 저는 현장 중심의 기사련 운동이 역사적 흐름을 일궈가는 작은 점들을 찍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란 것이 민중의 주체성과 창발성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민중 현장에 집중하는 것이 결코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과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현안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응과 연대 속에서 거창하고 값진 하루하루를 쌓아나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기사련 운동을 응원해주시고 한 명 한 명의 활동가들을 편들어주시기를 조심스럽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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