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여름, 기획기사] 증언의 자리에서 연대의 자리로 (이성철)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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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의 자리에서 연대의 자리로

     







    

이성철(제3시대 연구원)                 

        

서울의 한복판 세워진 얇은 천막의 지퍼를 올린다. 천막의 지퍼를 열고 들어가면 맞은편에 두꺼운 철문이 있다. 강제집행 계고장이 붙은 주방 만게츠 앞의 천막이 세워지고 농성을 시작한 지 56일이 지나간다. 사람이 외면하고, 사회가 부추기고, 신의 존재가 부재한 도시의 거리와 천막에서 기도회와 예배가 진행된다. 일요일 낮도, 교회도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는 거리에서 끊임없이 매주 기도를 한다. 신이 부재한 고통의 장소에서 신의 이름을 부른다.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목요기도회

1973년 민청학련 관련 구속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구속기독자대책위원회’와 함께 대책을 논의했다.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사회 각층이 관심을 가졌지만, 인혁당 관련자에게는 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가 기감의 선교사 오글(George Ogle, 吳明杰) 목사가 처음으로 인혁당 사건에 대해 발언함으로 교회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오글 목사는 10월 10일에 열린 목요기도회에서 설교를 통해 증거도 없이 중형을 선고받는 등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했다. 이 설교로 인해 오글 목사는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고, 출입국 관리법 제31조 제3호에 저촉되었다고 12월 14일 강제로 추방당했다. 


그리고 목요기도회가 시작되었다. 목요기도회는 처음에는 개인 차원에서 시작되었지만 곧 민주회복과 인권회복을 위한 정기적인 예배로 정착되었다.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공개적으로 기도하고 호소 할 수 있는 장소로는 국내에서도 유일하게 허용된 이 기도의 공간을 통해 구속자 가족, 교역자, 평신도 및 비신자들까지도 한 자리에 모여 고난의 현장을 보고하고 그 해결을 위해 기도하며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곤 했다.


기도모임은 1974년 7월 18일 한국기독교회관 2층 소회의실에서 허병섭. 김상근. 이해동. 문동환 목사 등을 중심으로 하여 구속자 가족 등 22명이 민청학련 사건 관련 구속자 및 기타 긴급조치 위반혐의 구속자들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당국의 방해와 협박 등이 있었지만, 오히려 기도회의 진지함과 열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참석하는 사람과 기관. 단체 등이 늘어갔다.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사회가 오기를 기도하는 기도회가 구속자들 뿐 아니라 참석자들에게도 위로와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기도회의 기도 내용은 정의와 자유의 구현, 민주회복, 구속자 석방, 고문당한 자, 노동자, 농민의 권익, 학원의 자유 등을 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기도회의 범주를 벗어나는 정치적 집회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구속자 가족들을 위로할 뿐만 아니라 언론이 통제된 상황 속에서 민주화운동으로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알리고, 그들이 관련된 사건에 대한 교회의 의견을 밝히는 중요한 모임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므로 금요기도회는 “한국 교회가 선교의 자유를 지키고 억눌린 자와 고난당하는 자와 하나가 되는 교회사적 전기를 마련했던” 기도회였다.1)


증언에서 연대로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2023년. 더 이상 종교를 경유하지 않아도 사회운동은 효과적으로 운동의 영역을 자리잡았다. 더 이상 기독교사회운동의 언어는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기독교사회운동은 기도회의 형식을 한 집회의 수단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말이다.하지만  그 의미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고집스럽게 종교의 이름으로 모이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재능교육, 삼표시멘트, 파인텍, 옥바라지 골목, 아현동 포차거리, 경의선 공유지, 궁중족발, 노량진수산시장, 삼성해고노동자, 아시아나케이오, 을지OB베어, 명동 재개발2지구의 현장에 연대하며 오늘도 수많은 고통의 현장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사회선교연대 단체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기독교 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이제 목요일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일에 여러 장소에서 기도회와 다양한 연대로, 고통의 현장에 신앙의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다. 


과거 목요기도회가 국가의 통제 속에서 말할 수 없던 고통을 말하여 알리는 증언의 자리를 지켰다면, 오늘 현장기도회는 연대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철저히 개인화 시키고 존재를 지워내는 자본의 시대에 고통의 상황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선언을 지키고 있다. 영성은 마주할 때 생기는 애틋함으로 법이 지키지 못한 사람의 곁에 설 수 있을 힘을 만들어낸다. 무력함과 약함을 고백하는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위로가 되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나눈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은 이들을 찾아와 손을 잡고 위로한다. 내가 겪은 아픔을 또 다른 누군가가 겪고 있다는 현실을 미안해하며 함께 한다. 


가장 어려운 일은 자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마음이 쓰여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현장을 찾는다. 연대해서, 연대하지 못해서, 오랜만에 찾아와서, 또 너무 자주와서 오는 이도, 맞이하는 이도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 많지 않은 기독교사회선교연대 단체들과 개인들이 많은 기도회를 주관하고 현장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연대인들은 긴급한 사안의 기도회가 동시에 진행되면 어느 기도회를 가야할지 고민하고 결국 가지 못한 현장에 미안한 마음을 삼킨다. 그만큼 위급하고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는 시절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 서로의 품이 되어줄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파편화된 고통들 속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품을 보듬는 그 성스러움이 오히려 무력한 현실을 뚫고 나갈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 웹진 〈3era〉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교회 인권운동 30년사』, 2005, 84~9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