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 기획 기사] 하나님의 형상을 한 ‘여자’로서 신학하기(홍다은)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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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형상을 한 ‘여자’로서 신학하기

 

홍다은(한신대)


“여성은 인간이다.”

이 말을 믿었다. 순진하게도. 하지만 그 어설픈 당위는 비록 취약한 것일지언정 나를 인간으로 키워냈다.

 

자라면서 “여자애가~” 이런 식의 말을 들은 기억이 없다. 실제로 한 번도 듣지 못했을 리야 없지만, 내 기억에 남겨두지 않았다. 내가 여자애여서 뭘 못한다거나 하면 안 되는 건 없다고 믿었다. 물론 나도 가부장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무의식에는 자기혐오의 그림자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그런 생존 전략이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그 우물은 내가 우물을 넘어갈 힘을 기를 때까지 충분히 안전한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가부장주의에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고, 가부장의 눈치를 보지 않는 여자아이가 되었다.

 

그다음으로 내가 넘어간, 조금 더 넓고 조금 더 얕은 담을 가진 우물은 ‘여대’라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인간’이라 생각하고 자랐지만, 사실 ‘여자’였음을 자각했고, ‘여자’가 되는 것이 곧 ‘인간’이 되는 것임을 다시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냥 ‘여자-사람’인 동료들을 만났다. 20대 초중반의 고만고만한 여자애들이 만나 평등하고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관심사도 가치관도 다르지만, 고민을 나누고 같은 지점에 분노할 줄 알만큼은 적당히 비슷했다. 밖에서 ‘여자’로 납작해질 때마다 우리는 서로가 ‘인간’임을 다시 확인하고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분노에 잡아먹히지 않고 분노를 활용하는 법을 점차 배울 수 있었다.

 

처음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공간이 여대였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축복이다. 여대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을 한 사랑받는 자녀로서 신학을 할 수 있었다. 신학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세상을 알고, 나를 아는 일이었다. 내가 여자-사람이었으므로, 나의 신학 함은 자연스럽게 여성신학으로 인도되었다. 굳이 ‘여성신학’이라는 타이틀을 단 수업이 아니더라도, 꼭 여자 교수님의 수업이 아니어도, 여성신학적 주제가 녹아 있었다. 어느 수업에 들어가든 모든 학생은 여성이었고, 교수님도 여자 선배님인 경우가 많았다. 그 모든 것이 여성신학을 하는 토양이 되었다. 나에게는 여자가 신학을 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다.

 

무엇보다 신학을 하면서 교회의 가부장주의에 짓눌리지 않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진보적인 교회에서 태어나 신앙생활을 해온 덕도 있다. 나는 케케묵은 가부장주의적 설교에 비교적 노출되지 않고,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신학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교회에서 내가 배운 것은 교리나 신조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였다. 나는 내가 사랑받는 자녀라는 믿음이 있었고, 여대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신학을 배우면서 그것을 더 확고하게 확인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가부장적이고 여성혐오적인 성서 텍스트 앞에서도 공포가 아닌 의심과 분노로 반응할 수 있었다. 홀로 폭력에 노출되지 않고 함께였으므로, 그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여성신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여대에서 신학을 하면서 배운 가장 값진 것은 바로 여성-인간으로서 신학을 하는 자세였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매인 것을 풀고, 억눌린 자를 해방하시는 분이었으므로, 그 딸인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을 갖고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갖는다는 것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처럼 온 삶이 돌이켜 바뀌는 것(회개(悔改))이었으므로, 성차별이나 성폭력과 같은 여성신학의 ‘주제’가 아니어도, 여성인 나의 경험과 관점으로 관심 두는 신학적 주제들은 모두 여성신학적 주제였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동시에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처음 마주하고 정말 당혹스러웠다.

 

처음에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나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애초에 그 둘의 양립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따져서 된 것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변증하는 것에도 취미가 없었다. 나는 그냥 기독교인이면서 페미니스트로서, 나에게 주어진 더 자유로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서 있는 곳은 양자의 간격을 좁히면서도 진리 안의 자유를 누리는 길인 것 같다. 여성-그리스도, ‘크리스타(Christa)’를 만나면서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크리스타는 여성의 몸을 한 그리스도이다. 처음 십자가 위에 매달린 크리스타 조각상을 보았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그때 든 생각은 그냥 이게 다였다. “굳이?” 하지만 신학을 할수록 ‘굳이’ 여성-그리스도인 크리스타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크리스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서도 한동안은 자기 검열의 시간이 있었다. 이게 맞을까? 가능할까? 해도 될까? 여대에서 배우는 신학 수업은 그것이 가능함을 확인해 주는 시간이었고, 여대에서 만나는 동료들과 교수님들도 내가 만난 크리스타를 지지하고 기대해 주었다.

 

여대에서 신학을 한 10년의 결과를 나는 「여성주의 기독론으로서 ‘크리스타(Christa)’의 가능성과 필요성 연구」라는 논문으로 정리(이자 또 다른 시작…….)하였다. 감히 어떻게 가능하고, 도대체 왜 필요한지 변증하는 것은 여전히 나의 관심이 아니다. 왜 가능한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인간이, 고기가 되어 오셨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자’로도 오실 수 있다. 어떻게 필요한가? 여성을 포함한 소외되고 억눌린 존재들이, 다양한 몸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피조된 자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필요하다. 여성(젊은 여자, 늙은 여자, 뚱뚱한 여자, 마른 여자, 착한 여자, 나쁜 여자, 남자가 된 여자, 남자였던 여자 등등)뿐만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어린이, 외국인노동자, 난민, 비인간동물까지도,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형상을 한 하나님의 몸이다.

 

그래서 나는 여성이 참 인간임을, 하여 서로의 구원자임을 고백한다.

 

ⓒ 웹진 〈3e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