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겨울, 기획 기사] [대담] ‘매끄럽지 않은’ 변화의 여정: 목회 현장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이은주·정혜진)

202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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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매끄럽지 않은’ 변화의 여정

목회 현장에서 페미니스트로 살기


이은주(미국장로교 파송 선교동역자—동아시아 리에종)


정혜진(제3시대 연구원)

 

들어가며

정혜진: 이은주 목사님께서는 어린 시절 브라질과 미국으로 이민을 가신 후 30대 중반에 신학과 목회를 시작하셨고, 미국장로교 총회 여성 사역부에서 ‘여성 옹호 코디네이터’로, ‘장로교 여성 지도력 계발 스텝’으로 근 20년 동안 일하셨습니다. 현재는 50년만에 한국에 돌아오셔서 미국장로교 파송 선교동역자로서 한국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이 대담에서는 목사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하셨던 두 번의 강의인 〈코로나 이후, 민주적이고 평등한 공동체 세우기〉(2022.3)와 〈기장 양성평등 위원회 주제 발표〉(2022.6)의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 신학자로서 목사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기독교 공동체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여쭙고자 합니다. 먼저 기장 여신도회와 양성평등위원회에서 하신 이 두 번의 강의는 어떤 점에 착목해서 진행하셨나요?

 

이은주: 특별히 성평등한 변화를 이끌어 나가는 과정, 차이에 대한 인식의 프로세스를 보여 주고자 했어요. 그것은 바깥이 아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진행하는 것인데요. 흔히들 배제와 포용이라고 말하는데, 포용이라는 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한 번에 다 들여오는 것이 아니고, 우리 내면의 갈등과 구조적 방해가 계속해서 일어나기 때문에, ‘변화의 과정’을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도구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연대란 무엇인가?

정혜진: 그럼, 본격적으로 강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강의에서 ‘연대’란 위계적인 태도로 타인을 돕는 것이 아닌, “당신의 해방을 나의 해방과 떼어 놓을 수 없으니, 서로의 해방을 위한 움직임에 참여하는 것”(호주의 원주민 여성 Lilla Watson)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경험, 즉 타인의 해방이 나 자신의 해방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한국의 한 여자대학교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 간의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이 갈등은 연대 관계 속에서 풀려나가지 못했고, 여성과 노동자의 적대로 전개되었습니다. 학생들이 “노동자 out”을 외치며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을 비난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이러한 적대는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할 ‘여성 총장’에 대한 옹호로, 그리고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의 정당성을 폄훼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처럼 ‘나의 해방’과 ‘너의 해방’이 연결되어 있음을 진정으로 알고 그 안에서 연대한다는 것은 너무도 훼손되기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너의 해방’이 ‘나의 해방’을 위협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혹시 목사님께서는 이와 관련된 경험이 있으신지, 이해관계를 넘는 실제적인 연대가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맞물린 정체성들과 책임

이은주: 맞습니다. 각 그룹이 독립적으로 있는 게 아니고 서로 다 물려 있는 거잖아요. 서로가 해방이 되려면 전체를 바꿔야 하는데, 전체를 바꾸지 않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충족시키고 촉진하게 되니까 계속 경쟁을 하게 되는 거죠. 전체 구조 안에서는 내가 혜택을 받는 것도 있고 다른 이들을 착취하는 것도 있고, 내가 가진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핍박할 수도 있으니 모든 사람이 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죠. 그런데 그런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쟁취할 것만을 생각하니까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총장의 경우는 그 사람의 정체성이 왜 여자로만 규정이 되나요?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권력, 운영자로서의 책임, 엘리트 계급 같은 게 다 그 사람 안에 맞물려 있는 거잖아요.


그렇게 하나의 정체성만 가지고 여성과 남성이 싸우는 것은, 가부장제 억압의 성격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한 말 중에 “Injustice anywhere is a threat to justice everywhere.(불의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불의는 모든 곳의 정의를 위협한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한 사람이 불의를 겪는다면 내가 그 일에 영향을 받는지 아닌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전체의 정의가 위협받는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고 모두가 이익집단으로 나뉘어 경쟁을 하게 되면 연대는 정말 불가능한 것 같아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볼게요.

 

∎ 연대의 와해: 노예해방 이후의 참정권 운동

이은주: 연대의 와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면, 미국에서 1860년대에 노예해방운동을 할 때는 흑인 여성과 흑인 남성, 백인 여성이 다 연대를 했어요. 그런데 노예해방이 된 후에 참정권 문제로 싸우게 되자, 일부 백인 여성들은 교육도 정치 제도도 모르는 흑인 남성이 아니라 교육받은 백인 여성에게 투표권이 우선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러한 갈등 속에서, 흑인 여성은 흑인 남성과 연대를 해야 할까요, 백인 여성과 연대를 해야 할까요? 그렇게 연대로 시작했던 참정권 운동은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의 권리를 쟁취한 후에는 또 다른 의제들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보지 않으면 항상 연대가 무너질 위험이 따릅니다.

 

∎ 연대의 가능성: ‘안티 아파르트헤이트(anti-apartheid)’와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Women Employed by the Church)’

이은주: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로는 제가 개인적으로 겪은 일을 말씀드릴게요. 제가 1990년대 초에 목회학 박사를 할 때는 남아공에 아직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정책)가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닌 학교에 남아공에서 온 여학생 두 명이 있었어요.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백인이었는데, 그 두 여학생은 박사논문을 공저(共著)로 함께 썼습니다. 두 사람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이 사라질 경우 한 사람(백인 여성)은 자기가 가졌던 특권을 잃게 되고, 다른 한 사람(흑인 여성)은 자기가 잃었던 권리를 찾게 될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그러나 이들이 ‘이익’으로 만난 게 아니고 살고 싶은 세상에 대한 ‘욕망(desire)’에 초점을 두고 만난 것이기 때문에, “나의 특권 때문에 누군가의 권리가 부인당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논문을 같이 쓴 것입니다. 그게 진짜 연대죠.

 

그리고 미국 북장로교에서는 여성 목사 안수를 1956년부터, 여성 장로 안수를 1932년부터 주었는데 남장로교는 1964년에 여성 장로와 목사 안수를 한꺼번에 주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되니 여성들 사이에 위계질서가 생기는 거예요. 제도라는 게 남자들이 갖고 있는 특권을 공유하게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 안에도 성차별이 있지만 획일화되거든요. 그렇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성들이 획일화되고 위계화되면서 연대가 깨집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이미 직원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요. 비서들, 교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교회 교육 담당자들은 거의 다 여자죠. 그러고 보니까 교직원, 즉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이 목사 외에도 여럿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장로 그룹, 목사 그룹, 교육자 그룹이 아니라,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Women Employed by the Church)’이라는 그룹을 만들었어요. 서로의 필요와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힘을 합친 거예요. 저는 이것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주 심플합니다. 교회에 고용된 사람들. 저는 매우 감명받았습니다. 우리는 전체 시스템을 바꿔야 하고 나의 이익만 추구하면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연대한 거죠.

 

‘정체성들’과 여성 조직

정혜진: 다음 질문은 앞서 이야기해 주신 내용과도 관련되는데요. 목사님께서는 본인이 여성이자 유색인종, 한국계 미국인, 이산가족, 이민자, 언어적 소수자, 교육받은 사람, 전문가, 사무직 노동자, 기독교인, 목사라는 여러 정체성을 가지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렇게 정체성이 ‘하나’가 아닌 ‘여럿’임을 중요하게 인식하게 되신 데는 특히 ‘여성이자 유색인종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자각할 수밖에 없었던 실존적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일까요? 한국에서 여전히 정체성은 서열화된 것으로 인식되곤 하는 것 같고, 기독교 문화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인식에서 왜 벗어나야 하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은주: 이게 참 역설적인 이야기일 텐데, 정체성의 분투는 대부분 자신의 정체성이 부인당할 때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영어를 못하는데 외국으로 갔으니 언어적 소수자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는 거고,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살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과연 여자로 산다는 건 뭔가 하는 생각도 할 수밖에 없었고요. 지배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은 정체성으로 분투할 이유가 거의 없죠. 저는 여러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 자꾸 변두리로 밀려나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공부를 통해서, 페미니즘을 하면서 구조적인 것을 보게 되니까, ‘내가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기만 한 게 아니고 센터에 들어가 있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기존에 고려하지 않았던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자랄 때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은 변호할 필요가 전혀 없었어요. 당시 기독교인의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때 이미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에서 기독교는 지배종교였던 것 같아요. 제가 지배종교의 전통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힘에 대해 깨닫게 된 건 아주 나중이었어요. 그때 정체성은 누리는 것이었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죠. 그러다가 제가 나중에 프린스턴 신학교에 가게 됐어요. 원래는 다른 곳에 가려다가 그리로 가게 되었는데요. 다른 학교의 여학생들은 주로 다른 일을 하다가 제2의 직업으로 신학을 하거나, 아이들이 다 큰 다음에 또는 이혼을 한 후에 신학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굉장히 많아요. 저는 그 생각만 하고 갔고, 당시 저부터도 교사를 하다가 신학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이가 많았어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프린스턴 학생들은 여자나 남자나 다 20대 초반이었고 그들의 대다수가 미국장로교회 전통 안에서 내로라하는 가정에서 왔더라고요. 그리고 그들은 다 백인이더라고요……. 한국 사람으로 장로교 집안에서 자라서 마치 기독교가 우리 민족의 종교라고 착각하고 살던 제가 백인들의 종교인 기독교와 맞닥뜨린 거죠. ‘그런데 나는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자문하게 되었고, 기독교인 정체성과 분투를 했어요. 아까 이야기한 대로, 정체성의 혜택을 받고 있을 때는 몰랐던 아이러니가 자꾸만 보여서, 기독교인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했죠. 저는 아직도 분투하고 있어요.

 

정혜진: 목사님께서는 기독교인 정체성을 인종 문제와 맞물린 것으로서 경험하신 거네요. 그래서 목사님께서는, “우리가 ‘여성’이라는 성정체성을 가진 공통분모로 한 그룹으로 모이고 있지만 모두가 시스젠더 여성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우리 각자의 정체성은 복합적이고 우리 안에도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감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목사님께서는 교회 안에서 평면적인 여성그룹을 조직하는 것을 넘어, 여성들의 경험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세분화된 조직 구성이 필요함을 강조하셨어요. “평신도, 장로, 목사 등 교회 안의 신분에 기초하지 않고, 다양한 관심사나 문제의식에 기초한 여성 조직”이 필요하다는 말씀인데요. 그 사례로는 아까 말씀해 주신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이 있겠고, 더불어 ‘여성정의단체(Justice for Women)’와 ‘유색인종 여성그룹(Committee of Women of Color)’도 소개해 주셨습니다. 뒤의 두 그룹의 활동에 대해 좀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두 그룹은 어떤 성격을 갖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룹 간의 갈등이나 차이는 어떤 방식으로 조율되어 왔는지 궁금합니다.

 

이은주: 그 조직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게 아니고, 조직이 만들어지기 전에 선례가 있었어요. 1983년에 남장로교와 북장로교가 통합되던 당시 굉장한 포부가 있었던 것 같아요. 총회의 9개 목회부서에 ‘여성 목회부’와 ‘유색인종 목회부’를 신설했어요. 그때까지 여성과 유색인종이 다 교회에 있었음에도 이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제도교회에 항상 주기만 하지 받지는 못하는 사람들이었잖아요. 저는 미국장로교회의 ‘여성 목회부’와 ‘유색인종 목회부’의 신설이 교회가 역사적으로 배제해 온 그룹들에 대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LGBTQ 그룹도 포함되고요. 1988년에 ‘여성 목회부’는 기존의 다양한 그룹을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 ‘여성정의단체’, ‘유색인종 여성그룹’, ‘장로교 여성그룹’의 네 그룹으로 조직했고, 네 그룹의 대표들이 모인 ‘여성 사역부’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연대 행위는 절대로 매끄럽지 않습니다. 서로의 의제가 다르고 갈등은 필연적이지만, 이 조직들은 따로 존재하지 않고 이렇게 공존하면서 갈등을 소통하고 협상할 수 있었습니다.

 

‘여성정의단체’는 모두를 위해 있었던 단체였는데, 꼭 여자들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었고 성차별에 반대하는 남자들도 멤버로 있었습니다. 다수는 백인이었어요. 그래서 유색인종들은 “우리는 성차별만 경험하는 게 아니고 인종차별도 경험한다”고 주장했어요. 가부장제에서는 젠더와 인종, 계급 억압이 다 교차되어 작동하고,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이러한 억압들을 다 경험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렇게 유색인종 여성들이 자신의 의제를 주체적으로 설정하겠다고 주장해서 ‘유색인종 여성그룹’이 결성된 것이죠. 그런데 ‘여성정의단체’에서 제대로 일을 하자면 유색인종 여성들의 목소리도 들어야 하니, ‘여성 사역부’를 만들어서 다 같이 연대할 수 있게 했어요. ‘교회에 고용된 여성들’은 우리가 밖에서만 사회정의를 외칠 게 아니라 교회 안의 사회정의도 외쳐야 하니 함께 했고요. 그렇게 교회 안팎의 정의 구현을 함께 하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유색인종 여성그룹’의 경우는 굉장히 흥미로운 게, 당시는 제3세계라는 말을 많이 쓸 때였는데 이 사람들은 자신을 ‘미국에 있는 제3세계 사람들’로 정의했어요. 그래서 지구적 이슈를 굉장히 많이 가져왔습니다. 특별히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서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문제와 군사문화 등을 다루었어요. 이를 통해 문제의식이 크게 확장되었죠.

 

정혜진: 그런 여성그룹들이 교회 안에 국한된 문제만 다뤘던 게 아니었군요.

 

이은주: 전혀 아니었죠. 교회 안의 문제 같은 경우는 ‘여성정의단체’에서 정책뿐 아니라 문화를 바꾸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기독교 문화의 남성 상징체계를 바꾸는 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당시에는 변화를 만든다는 게 언어 자체에서부터 평등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여성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그에 대한 투자를 많이 했습니다.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으로 인해 생기는 ‘재생산 정의(reproductive justice)’의 문제를 중요한 이슈로 삼아 계속 고투하기도 했죠. 그래서 임신과 낙태에 대한 정책이 나오기도 했어요. 교회 성폭력 문제와 가정폭력 문제도 다루었고요.

 

차이의 부채화를 넘어

정혜진: 목사님께서는 강의에서 ‘차이의 차별화’의 근간에는 사회적 정체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구조가 있음을 말씀하셨고, 차이를 차별화하지 않으면서도 직면하고 나아가 그것을 자산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때 ‘차이를 자산 삼는 것’이란 무엇인지 좀 더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은주: 지배세력은 차이를 자산이 아닌 부채로 여기고, 그러한 부채를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몇 가지 방식으로 관리해 왔습니다. 미국은 1980년대에 ‘백인 중산층의 이주(white flight)’ 현상이 있었어요. 백인들끼리 살던 지역에 유색인종이 거주하게 되자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 백인들이 도망을 가는 거예요. 차이를 부채로 의미화하는 사례죠. 남자들이 자신이 차지하고 있던 영역에 여자가 들어가면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차이를 차별화하는 거죠. 그래야 내 영역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차이 자체가 아니라, 차이를 차별화하도록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문제입니다.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을 넘어 차이를 삭제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의 연좌제나 반공법, 미국과 유럽의 원주민 말살, 나치의 유대인·집시·동성애자 학살 등이 있죠.

 

차이 자체에는 가치가 없지만 우리가 가치 부여를 하는 것인데, 지배세력은 ‘없애야 할 것’으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죠. 한편 차이가 자산이 된다는 것은, 예를 들면 여성의 성을 통제해 온 역사에 대항해서 여성들이 생물학적 차이를 통해 ‘성파업(sex strike)’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러면 인류의 지속이 불가능해지겠죠. 그러한 재생산의 힘을 자산으로 생각한다면 여성을 차별할 수가 없겠죠. 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것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하기 때문에 세상이 훨씬 풍요로운 것 아니에요? 그렇지 않다면 창조성이 어디에 있겠어요. 문제 하나에도 경험이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면 이해의 깊이와 폭이 확장되고 해결 방법도 훨씬 더 풍부해질 테고요. 그러나 우리는 차이를 위협이라 생각해서 없애거나 관리해야 한다고 여기죠.

 

여성 안수와 토크니즘(tokenism)

정혜진: 목사님께서는 교회 안에 성평등한 정책을 세우는 것과 더불어, 성차별적 행태 아래에 깔려 있는 문화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여성 목회자 안수 운동’을 성찰하셨습니다. 여성 안수 운동은 교회 성평등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사례이지만, 한편으로는 “남성만 들어갈 수 있던 방에 의자를 몇 개 더 갖다 놓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여성이 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된 정책 변화 하나만으로는 성평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여성 안수가 성평등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성찰하고 교회 안의 여전한 성차별을 더 깊이 분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미국장로교회를 사례로 들어 그러한 분석을 실제로 해 주셨는데요. 여성이 안수를 받게 되었지만 교회는 전통적인 성별분업에 따라 운영되고 있고, 교회가 하나의 정치체로 인식되지 못해 여성의 정치적 참여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며, 여성 성도의 임직 구조가 여전히 성차별적이고, 여성 안수의 허용이 곧 여성 목회자/임직자의 적극적 초빙/추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여성 목사 중에서도 한인계 여성 목사는 극소수여서 평신도 여성 리더십과 여성 목사 간의 실질적인 연대가 어렵고, 안수받은 여성이 남성 사회에 동화되기도 쉬운 현실을 상세히 지적해 주셨어요. 이처럼 정책 하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더 넒은 문화적, 구조적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신 구체적 맥락과 개인적 경험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남성만 들어갈 수 있던 방에 의자를 몇 개 더 갖다 놓은 것 같다’고 느끼시는 감각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은주: 제가 보기에는 한국의 진보세력도 여자는 여자들끼리, 남자는 남자들끼리 일하고, 남자들이 이따금씩 여자들을 ‘토큰(token)’, 즉 상징이나 구색 맞추기로 데려다 씁니다. 그러니 통합이 안 되고, 남성중심적인 문화가 바뀌지 않습니다.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가 들어가야 바뀌거든요. 한두 명 들어가는 건, 그냥 의자 갖다 놓은 겁니다. 결정적 다수가 들어가야 변화를 도모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안수를 받아도 주체적인 힘을 발휘하며 운동을 전개하기는 어렵고, 안수를 받은 후에는 각자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연대가 어려워지고 너와 내가 경쟁 상대가 됩니다.

 

정혜진: 토크니즘(tokenism, 사회적 소수자를 조직의 일원으로 들이나 실질적인 힘은 주지 않고 명목상의 구색을 갖추는 것)의 문제는 사회에 만연한 것 같습니다. 조직에 여성 한두 명을 데려와서 성평등과 젠더 관련 문제를 일임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한 것 같아요. “여성운동을 당신이 담당해라.” 이렇게 위탁하는 경우가 너무 많죠.

 

이은주: 여성문제가 사실은 남성문제이기도 하거든요. 운동은 다양한 플레이어들이 하는 거지 한 명이 하는 게 절대 아닌데, 대체로 그런 인식이 없어요. 힘을 가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소수자들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는데, 그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변화가 안 되죠. 힘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힘을 내놓지 않죠. 하지만 조직 안에 구조를 바꾸려는 사람들이 없는 게 아니니 그 완강한 벽에 구멍을 내서 물이 흐르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발굴해야 합니다. 단지 투트랙(two-track)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청년 세대와 새롭게 관계 맺기

정혜진: 목사님께서는 교회 내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서 “젊은 여성들에게 길을 묻자”고 하셨어요. 미국교회는 젊은 세대가 장기적인 관계(long term commitment)를 맺지 않으려 하고 조직의 멤버가 되는 것에 큰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교회의 멤버가 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들을 프로젝트에 초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년 여성’들이 교회라는 조직에 많은 회의감을 갖고 있지 않을까 해요. 저도 청년들이 조직에서 배치되는 방식에 회의를 많이 느껴 왔는데요. 그들이 목소리를 낸다 한들 그 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조직을 개선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 조직이 그들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한정적인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골치만 아파지니 굳이 기성 조직 안에서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합니다. 그보다는 자기 세대들끼리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의 제안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청년들을 기존의 조직 구도 안의 멤버가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주도하도록 그들을 지원하면서 그들 스스로가 원하는 방식으로 교회에 개입하게 하면 새로운 관계 맺기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씀이신 것 같아요. 그런데 과연 기성 조직이 장기적인 계약을 맺지 않은 이들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그들에게 조직의 변화를 보여 줄 수 있을까요? 기성 조직에서 청년의 말을 듣는 자리는 많이 마련해도, 이야기를 들었다는 데 만족하는 경우가 많고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가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그래서 청년들이 전에 했던 얘기를 매번 반복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목사님께서 소개해 주신 프로젝트의 사례를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이은주: 그 말이 맞아요. 전적으로 동의하고요. 제가 말을 쉽게 했는데, 사실 그 딜레마가 있고요. 지교회 같은 경우에, 이건 내가 지교회 목회를 안 한 사람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한 사례로 얘기하는 건 아닌데요. 지교회는 커뮤니티 서비스 같은 프로젝트를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멤버가 아니더라도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젊은 사람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그들의 기독교인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의 선교적 차원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죠. 교인이 되는 것이나, ‘우리 사람’이라는 요구 없이요. 그렇게 자발적인 동기부여에서 교회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을 하다가 멤버가 되는 경우도 있죠. 하여튼 미국의 경험에 비춰 보면, 요새 젊은 친구들은 장기적인 계약으로 멤버가 되는 것을 아주 싫어해요. 그것에 대한 기대는 전혀 안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여성 목회부’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일을 하게끔 하고 뒤에서 서포트만 하는 ‘NNPCW’라는 조직을 구성했어요. 그게 그렇게 매끄럽지만은 않았어요. 한번은 사건이 터졌는데,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의 지도력 개발 교재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섹슈얼리티에 대한 내용이 가득 들어 있었어요. 거기에는 당연히 여러 정체성을 존중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어서 총회에서 큰 사건으로 불거졌고 결국 그 서포트 조직은 없애는 것으로 결론이 났었는데요. 그 조직에 반대표를 주었던 분이 다음날 의견을 정정하게 되면서 안건이 다시 상정되어 조직의 폐지가 ‘연구하자’로 변경되었어요. 장로교회는 뭐 하다가 안 되면 꼭 연구를 하자고 한다니까요.(웃음) 그렇게 분투가 굉장히 많았는데 결국은 그 조직이 살아남았고, 그 이후에 온 ‘여성 목회부’ 디렉터가 NNPCW와 또 다른 유색인종 청년조직에 투자를 왕창 한 거예요. 결국 거기서 상당히 영향력을 가진 젊은 친구들이 리더로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간섭은 전혀 없이, 리스크를 감당할 각오를 하면서, 서포트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리스크를 위협으로 느끼거나 항상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해서 놓지를 못하는 거죠. 실패를 하더라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냐는 거죠. 미래에는 내가 있을 게 아닌데, 젊은 사람들이 있을 건데, 그들이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거 아니에요. 그걸 서포트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공회 같은 경우는 1974년에 필라델피아에 있는 비숍 한 명이, 교단 차원에서는 여성 안수가 불가능한데 자신이 위험부담을 지고 여성 안수를 했어요. 그렇게 11명의 여성을 안수했고, 제가 졸업한 신학교에서 그중 세 명을 고용했어요. 이들이 사제가 됐지만 비정규 서품(irregular ordination)이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일자리를 준 것이죠. 그러고 난 후 다음 해인가, 다다음 해인가에, 여성 안수가 됐어요. 교단의 정치 형태에 따라 누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가 달라요. 장로교, 감리교, 성공회 각각의 시스템에 따라 다 다르죠.

 

‘독성의 남성성(toxic masculinity)’에 대한 인식

정혜진: 목사님께서는 미국장로교회 안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시행해왔고, 근래에는 ‘독성의 남성성(toxic masculinity)’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남성성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점이 흥미로웠는데요. ‘독성의 남성성’에 대한 성찰이 확산되고 남성성 논의가 활발해진 사회적 맥락이 있을까요?

 

이은주: 네, 맥락이 있는데요. ‘toxic masculinity’라는 용어는 특별히 2015년 이후로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근래에 들어 미국에 굉장한 규모의 총격 사건이 많았잖아요. 그 총격 사건의 주범들은 거의 다 젊은 백인 남자예요. 한국에서 ‘이대남’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인 거예요. 가부장제가 만들어 내는 남성성이라는 게 남자들에게도 좋은 게 아니고 해롭다는 것이죠. 전형적인 남성성, 힘이 있고 근육질인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는 남자들은 굉장히 위축되는 거죠. 영어로는 ‘sissy’라고 하는데요. 그렇게 되니까 남성성을 더 과장해서, ‘독성을 가진 남성성’이 되는 거예요. 폭력적이게 되고, 여성을 통제를 해야 하는 거죠. 그게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총격 사건입니다. 젠더 역학관계의 변화의 기로에 있는 현시점에, 남성들이 사회적으로 내면화한 남성중심주의와 여성과 경쟁해야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이 혐오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제공한 것은 남성중심적인 사회죠.

 

자산 없음을 인정하기

정혜진: 강의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목사님께서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우리는 평등하게 살아 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었습니다. “평등하게 살아 본 경험이 너무 없으니 이러한 불평등한 우리의 현실을 평등한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 노력한 역사적인 자산도 별로 없다. 우리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는 길은 멀고 지난하므로 연대가 더 필요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인류의 역사 속에서 평등을 위한 투쟁이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평등을 이룩해 낸 경험, 평등을 경험하고 살아낸 경험은 너무나도 미약함을 직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으로 이해했습니다. 사실 누구도 진정한 평등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시행착오를 반복할 뿐임을 명심하자는 것인데, 이것을 안다면 우리는 무엇이 달라지게 될까요? 조금 더 말씀을 청해 듣고 싶습니다.

 

이은주: ‘자산 없음’의 맥락을 살펴보자면, 한국도 사실 분단이 안 됐으면 자산이 더 많이 축적되었을 거예요. 분단이 되고 국가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완전히 억압하고 자본주의가 가속화되면서 급진적인 운동이 많이 위축되었죠. 미국에서도 남북전쟁 때 여성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여성운동에 동기를 주게 되었는데, 전쟁이 끝나고 남자들이 돌아오자 남자들에게 일자리가 제공되면서 여자들은 빅토리아 스타일의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가 계속 반복되었는데요. 자산 없음을 인정하자는 건, 나부터 평등한 게 뭔지를 잘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우리 모두가 그렇게 겸손하게 시작해야 서로를 도와 평등한 관계를 계속 연습하고 만들어 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죠.

 

신학이란?

정혜진: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서 어린 시절 언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적응하고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되셨던 과정은 아주 녹록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특히 목사님께서는 대학원까지 마치시고 교사로 6년 동안이나 재직하시다가 30대 중반에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셨는데요. 그렇게 늦은 나이에 신학과 목회의 길을 가게 되신 것은 어떠한 이유에서였는지요? 그리고 30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여성 신학자로 살아오시면서, ‘신학을 한다는 것’ 혹은 ‘신학하는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해 오셨는지도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은주: 순전히 해석의 영역이겠지요. 저는 청소년기에 계속 뿌리가 뽑힌 삶을 살면서 굉장히 불안정했고, 자신도 하나도 없었고, 내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나이만 자꾸 들었어요. 저는 솔직히 크리스천이 대단히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스토리가 나에게 방향을 주었어요. 삶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지, 의미구조도 주었고요. 커뮤니티도 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지하게 분투를 하면서도 기독교를 못 떠났어요. 떠나지 못한 이유가, 저의 삶의 모든 기반이 변하는데 기독교 문화는 연속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내가 완전히 뿌리가 뽑힌 거 같지만 연결될 수 있는 사람들과 공통의 언어나 상징체계가 있어서 뿌리 뽑힌 채로 그래도 살 수 있었어요. 신앙 전통이 저에게 삶의 근거를 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다닌 교회가 한인 이민교회였는데, 이 교회는 1970년대에 한국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많이 도망쳐 와서 모인 곳이었어요. 그래서 미국에 있으면서도 한국의 역사를 경험하는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어요. 교회 안에 창의적인 사람들도 많았고요. 기독교인들의 위선 같은 건 어려서부터 정말 많이 봤기 때문에 하나도 놀라울 게 없었지만, 교회에서 의식화가 되고 신앙의 전통에서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기독교를 못 놓았죠. 그리고 제가 공립학교 교사였을 때 미국 교육의 목적은 ‘미국화’였는데요. 그렇다면 교회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이민교회는 고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제공하는 소중한 장소인데 이 교회가 어떻게 존재해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종교적 의례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그렇게 신학을 하게 되었지요.

 

언제나 제가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었어요. 변화를 약속하는 이념은 ‘내적 작업’ 없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변화를 모색하는 내가 추구해야 할 방법론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면서 영성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저는 기관에서 일을 했지만 계속 변화를 만들어 내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제가 ‘페미니스트 신학자’로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페미니스트’로 산 것 같아요. 그것을 목회 현장, 교회라는 맥락에서 교회 사람들과 주로 한 것이고요.

 

정혜진: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아오신 거네요.

 

이은주: 네. 교회 안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산 거죠. 1980~1990년대 미국에서는 ‘신학하기(doing theology)’라는 말을 아주 많이 했어요. 저는 그렇게 산 것 같아요. 그리고 별로 후회하지 않아요. 굉장히 치열하게, 제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에. 제가 여성 신학자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저는 타자의 동의나 설득에 구애받지 않는 페미니스트(unapologetic feminist)예요. 여자라서가 아니고 가부장제를 반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부장제를 변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정혜진: 네, 그럼 이번 대담은 이렇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대화 나눠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많이 배우고, 감명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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