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가을, 활동가의 글쓰기] 장애인의 몸과 꿈 : 새로운 몸, 새로운 감각을 향해(유진우)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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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몸과 꿈

새로운 몸, 새로운 감각을 향해

유진우(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의 몸과 꿈

기억을 거슬러 초등학생 시절을 떠올리면, 그때 나의 꿈은 ‘목사’나 ‘가수’였다. 목사라는 꿈을 갖게 된 이유는 사람들 앞에서 성서를 해석하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며, 가수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그것이 수천 명 앞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끼’를 마음껏 뽐내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중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부모님에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해서 보컬학원을 3개월 정도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에 있는 학원을 부모님의 지원으로 올라가서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부모님이나 형이 데리러 왔던 기억이 있다. 사실 보컬학원 다니는 순간에는 진짜 가수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장애의 특성상,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긴장하고, 긴장하면 몸이 뒤틀려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며 몸의 움직임도 삐거덕거리는 듯 뻣뻣해진다. 보컬학원을 3개월 다닌 후, 나는 가수의 꿈은 접고 목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대학원까지 갔다. 하지만 대학원에서도 장애인의 몸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고, 개교회 역시 장애인의 몸을 받아주지 않았다. 개인의 노력으로 교회에 청빙이 되는 시스템에서 장애인은 도저히 목사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17년간 꾸어온 목사라는 꿈은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렸다.

 

장애인으로서 가수나 목사가 되는 것은 장애인 ‘개인’에게 달린 일이 아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는 상품 가치가 뛰어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가수나 목사는 늘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기에, 이를 장애인이 감당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한 번도 뇌병변 가수를 보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수는 외모와 재능으로 돈을 번다. 얼굴 근육이 긴장되어 얼굴이 뒤틀려 못생겨 보이고, 노래를 잘 부르더라도 과호흡으로 인해 음이탈이 나게 되면 가수의 상품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장애를 가진 가수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목사의 경우에는 소수의 장애를 가진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비장애인 남성이 담임목사나 노회의 대표로 활동한다. 장애인인 나는 목사가 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 노력은 비장애인들에게 비할 게 안 되었고, 그저 “장애인이 노력하는구나.”라는 반응 정도로 끝이 났다.

 

나는 장애를 가진 몸으로 두 가지의 직업에 도전했지만, 거부당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를 ‘실패’로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거부당했다고 생각한다. 장애인이라서 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의 몸은 ‘거부당한 몸’, ‘쓸데없는 몸’으로 여겨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이러한 거부의 경험을 가지고 장판(장애운동판)에 입문하게 된 것은 행운일 수도 있다.

 

각자의 ‘특성 있는 몸’으로 표현하기

처음 장판에 들어갔을 무렵 본 것은 노들장애인야학의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의 공연이었다. 그들은 ‘노들테크노전사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직접 작사, 작곡을 하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노동자들이다. 처음에는 약간 소음에 가까운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각자 특성 있는 몸으로 노래를 부르고 리듬에 맞는 춤까지 추면서 무대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몸을 가지고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들단위에는 사단법인 ‘노란들판’이라는 곳이 있다. 나는 거기 소속인 몸짓패 ‘야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이 생겨, 단원으로 활동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나에게 춤이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교회에서 율동을 했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라고 못할 게 뭐야!”라는 마음도 있었다.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한 달간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 연습을 할 때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해서 움직임이 둔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연습을 하면 할수록 근육들이 풀어졌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동작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 당일에는 긴장감이 온몸을 지배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내심 했다. 그러나 함께 공연을 준비한 동지들, 앞에서 응원해 주는 동지들이 있어 긴장을 풀고 마음껏 끼를 뽐낼 수 있었다. 공연 종료 후에는 온몸에 희열이 가득했고, 공연을 끝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콘서트를 끝낸 가수가 느끼는 감동과 희열이 바로 이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장애의 몸을 가지고 몸짓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장애 특성에 맞는 동작 하나하나를 새로 만들어야 하고, 그 동작을 익히는 데 드는 시간, 공연 당일의 몸 상태와 긴장감의 수준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다 끝낸 후의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고,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몸짓패 ‘야수’의 공연은 거부당한 몸에서 환대받는 몸으로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꼈다.

 

바디프로필을 꿈꾸다

‘정상적인 몸’에 맞춘 바디프로필. 몸에 대한 또 하나의 기억이다. 바디프로필을 떠올리면 ‘정상인’의 몸이 떠오른다. 역삼각형의 몸, 8등신을 가진 몸, 올곧은 몸이 정상적인 몸이다. 여기서 장애인의 몸은 제외된다. 외국에는 휠체어를 탄 보디빌더가 더러 있긴 하지만 한국에는 거의 없다. 나는 ‘정상’이 무엇인지, ‘정상적인 몸’이란 어떤 몸인지, 비장애가 곧 정상인지를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면 거기에 균열을 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의미 있는 작업이 되겠다고 생각하여 바디프로필 준비를 시작했다.

 

또 한편 장애인은 오랫동안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겨져 왔고, 장애인이 연애와 결혼을 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하는 비장애인들이 여전히 많다. 왜 장애인은 무성의 몸으로 될 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했다. 섹슈얼하다고 여겨지는 몸 중에 장애인의 몸은 없었다. 장애인은 단 한 번도 ‘섹슈얼한 몸’이 된 적이 없었고, 그래서 연애 경험이 부재하거나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이러한 몸의 기억들과 맞서기 위해 바디프로필을 준비해 나갔던 것 같다.

 

처음 할 일은 헬스장 등록이었다. 예전에 헬스장에서 거부당한 기억이 있기도 했고, 주변 장애인들이 헬스장에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경험을 들려준 바가 있어, 헬스장 방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순조롭게 헬스장에 등록을 하고 운동을 했다. 아마 장애인에게 맞는 운동기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몸을 헬스장에 있는 기구에 끼어 맞추는 식으로 운동을 했다. 헬스장에서 잘 움직일 수 있도록 공간과 동선에 적응하고, 휠체어에서 운동기구로 몸을 옮길 때 기구를 잡고 기구에 앉는 과정에 적응하고, 기구에서 운동하는 움직임에 적응하는 데 딱 1개월이 걸렸다. 그 뒤에는 적응한 몸을 믿고 운동을 해 나갔다.

 

지금은 두 가지 깨달음으로 인해 바디프로필 준비를 그만두었다. 내가 다이어트를 하면서 섭취하는 음식은 다 동물성 음식이었는데, 동물해방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공부를 하던 중 장애해방과 동물해방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인간성이 동물을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면서 애초의 동기와 의미가 오염될 경우에는 그만두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준비 과정에서 나의 남성성을 뽐내고 싶은 잠재된 욕망을 발견하여, 그렇다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에 그만두었다.

 

하지만 운동은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나의 장애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근육들은 수축되어 아마 말하는 것도, 잠시 일어나서 굳은 허리를 펴는 동작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운동을 계속 할 것 같다.

 

새로운 몸, 새로운 감각을 향해

나는 장판 활동을 하면서, 나의 장애로 인한 몸의 변화들을 새롭게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 증상으로 인해 새로이 계획하는 일들도 있다. 몸짓패, 바디프로필, 주체성, 장애해방과 동물해방 등이 그러하다. 나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실천할 것이다. 사실 새로 계획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수전 웬델은 『거부당한 몸』(황지성·김은정 역, 그린비, 2013)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나의 증상을 받아들이고 이에 항복하기 시작했다. 의학적·심리적·영적인 치유법을 찾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시적인 괴로움과 나를 동일시하는 것을 줄이고 증상들을 관찰하는 능력을 발달시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삶을 다시 구성해 나갈 수 있었다. 내 몸 상태가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성을 제한하긴 하지만, 새로운 종류의 이해력, 새로운 관심, 새로운 열의와 계획들을 제시해 주었다.(324)

 

나 또한 장애를 가진 몸을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가능성을 제한하”는 나의 몸이 새로운 종류의 이해력, 관심, 열의와 계획을 만들어 내는 것을 경험했다. 나는 이 새로운 계획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갈 것이며, 또 다른 계획과 관심이 생기면 나의 활동폭을 넓히면서 관심을 실천으로 옮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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