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가을, 기획 기사] 어느 불타는 금요일 다음 날 :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추억과 ‘무지개센터’(황용연)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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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불타는 금요일 다음 날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추억과 ‘무지개센터’


황용연(본 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1.

그러니까 오늘의 이야기는 제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던 시절, 지인들 중 한 사람의 집에 모여 불금을 보내고 난 후 다음 날 아침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야, 성소수자들이 민주노동당사 앞에서 침묵 시위한다는데 거기나 같이 갈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던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 ‘침묵 시위’가 왜 벌어졌냐면, 당시 민주노동당은 당직 선거를 하고 있었는데요. 정책위원장 선거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던 후보가 인터뷰 중에 “동성애자 차별은 하지 말아야 하지만 동성애에 대해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어나는 파행적인 현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발언에 대해서 해명과 사과가 나오긴커녕 그 후보의 지지자들이 변명만 늘어놓으니까 민주노동당 당원/지지자로서 성소수자의 지지 모임을 만들어서 활동하던 성소수자들이 아예 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하게 된 겁니다.

 

항의 시위 이전부터 동성애자에 대해서 요즘 말로 하면 ‘앨라이’의 입장을 안 가졌던 건 아닌데,(사실 ‘성소수자’라는 말을 그 시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처음 들었어요) 시위 이후 성소수자들과 함께하는 뒤풀이 자리에서는 제 안의 편견을 발견하고 반성을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2.

결국 그 항의 시위의 대상이 되었던 후보는 그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그리고 그 항의 시위를 계기로 해서 민주노동당의 당원/지지자 중 성소수자 앨라이 입장에 선 분들이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성소수자들의 지지 모임 이름이 <붉은 이반>(그러고 보니 요즘 ‘이반’이라는 말을 별로 안 쓰는군요)이었는데 이 모임의 자매모임을 표방하며 이름을 <붉은 일반>이라고 지었었죠.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붉은 이반>과 함께 민주노동당에 ‘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여의도에 있던 민주노동당 중앙당사와 각종 회의를 참 많이도 들락거렸네요. 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든다는 것은 확정인데, 세부사항을 두고 조금만 방심하면 엉뚱한 결정이 종종 나오는 바람에 직접 쫓아가서 감시를 해야 했거든요.

 

성소수자위원회를 만든 후에 가장 많이 부딪쳤던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대의기구에 성소수자위원회를 비롯한 소수자운동의 대의원을 몇 명이나 보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약간 지루한 설명을 좀 하면, 당시 민주노동당은 지역 선출 대의원과 각 부문별(노동부문, 농민부문, 빈민부문 이런 식으로 말이죠) 선출 대의원을 2:1 정도의 비율로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문별 대의원에서 노동부문/농민부문의 비중이 너무 커서, 각 소수자운동 부문에서 대의원을 1, 2명 보낼까 말까 한 상황이 계속되었어요. 1, 2명이 뭐냐, 좀 늘려달라 이야기하면 노동자/농민은 민주노동당의 주 기반이어야 하니 비중을 줄일 수 없어서 자리가 안 난다는 식의 말이 계속 오고가니 많이 지쳤죠.

 

이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민주노동당 안에는 두 가지 부류의 당원이 있다고 느꼈어요. 학생운동을 하든 노동운동을 하든 농민운동을 하든, 자기가 하던 운동을 당 안에서 계속하겠다는 생각으로 입당한 당원이 있고, 그런 운동에 발을 담가봤든 아니든, 자기에게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입당한 당원이 있다고요. 그리고 소수자운동 이야기를 하면, 전자의 당원들보다는 후자의 당원들과 말이 더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자의 당원들에게 소수자운동이란 자기가 당 안에서 계속하고 싶은 운동과 어떻게든 ‘조절’을 해야 할, 많은 경우에는 뭔가 ‘조심’을 해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진다면, 후자의 당원들에게 (민주노동당 안에서의) 소수자운동이란 (자기에게 진보정당이 필요한 것처럼) 진보정당이 필요한 소수자들의 활동으로 받아들여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한 가지 더 추가할 것이 있다면, 앞서 말한 대로 대의원 문제로 한참을 싸우다 보니, 싸우는 사람들이 ‘소수자운동과 만나지 못하는 노동자/농민운동은 제대로 된 운동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갖게 되더군요. 물론 그 반대로 진보정당의 소수자운동은 계급적인 지평도 담보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자주 나오게 된 ‘교차성’이란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니 이 당연한 소리를 왜 새삼스러게 하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었죠.

 

3.

미국에서 12년 넘게 지내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니 진보정당도 많이 바뀌었고 소수자운동, 특히 성소수자운동을 하는 분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소수자운동들 대부분이 자생적인 진보성과 급진성의 근거를 찾아 나가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존 사회운동을 추수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관점에 따라 현실에 깊이 천착해서 운동을 조직하고 담론을 생산하여 투쟁성을 갖춘다는 의미에서의 자생성 말입니다.

 

특히 지금에 와서는 그 자생적인 진보성과 급진성이 더 필요하고 중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회적으로 사실 가장 많은 ‘진보’ 소리를 듣는 지금의 야당은 물론이고, 그 야당의 하위 파트너의 함정에 빠져 버린 진보정당까지 포함한 ‘기존의 진보’가 (지난번 웹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보수와 ‘총력전 힘싸움’만 하면서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면, 소수자운동의 자생적인 진보성과 급진성이 한국 사회가 새롭게 될 수 있는 길의 실마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 스스로 소수자운동의 자생적인 진보성과 급진성을 배워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무지개센터’를 시작한 이유의 하나입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의 추억을 새삼 돌이켜 보니 그 배움이라는 게 나의 존재 자체를 바꿔서 나의 자생적인 진보성과 급진성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기사 배움이란 말의 의미가 원래 그런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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