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가을, 기획 기사] 삶을 나누는 자매공동체, 기독여민회(민아름)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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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나누는 자매공동체, 기독여민회


민아름(기독여민회)


여성들의 주체적 이야기를 담아낸 문화콘텐츠들이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변방을 벗어나 독자적 시선 한가운데로 자리를 옮긴 여성들의 이야기는, ‘여성서사’라는 이름으로 문화의 큰 물줄기를 이루어 가며 새로운 시류를 형성해가고 있지요. 많은 이들이 여성서사 속에 담긴 자매애와 연대에 많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여성서사가 주목받기 전부터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내려 온 공동체가 있습니다. 바로 ‘기독여민회’입니다. ‘기독여민회’는 교회개혁과 사회개혁을 위해 일하려는 여성들이 모인 초교파 단체로서, 1986년 창립 이래 지금까지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기독여민회의 61기 회원으로서 2018년부터 햇수로 5년 간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기독여민회와는 선배를 통해 처음 인연이 닿았습니다. 당시에는 행사 스탭 참여 정도의 가벼운 인연이었는데, 이후 기독운동에 뜻을 두며 활동하던 중 회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지요. 되돌아보면 당시 기독여민회를 바라보며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세대를 넘나들며 서로를 환대하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달까요. 당시엔 선명한 이유를 대긴 어려울 만큼의 호감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한 시간이 쌓여가며, 제가 기독여민회와 함께하는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그리스도인, 여성, 민중 지향의 정체성

 사회선교를 지향하며 사역을 시작할 당시, 그리스도인이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민중사역에 참여하기를 소망했습니다. 몸 담았던 단체, 연대기관들 모두 각자의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는 곳이었으나 이 세 가지의 정체성과 지향을 단체의 정체성과 사역에 녹여내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만난 ‘기독여민회’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먼저 한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민중으로서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지금까지 기독여민회는 그 정체성을 놓지 않고 사역과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새날을 여는 여성들의 예배’, ‘종교개혁제’, ‘사회적 소수자들과 함께하는 금요밤기도회 공명’ 등의 시간을 통해 예수운동을 이어왔습니다. 또한 여성운동으로서 교회여성의 인권운동 및 교회 내 성폭력 문제의 인식 개선 교육과 문제 해결방안 모색, 사회적 소수자와의 연대활동 등에 힘을 쏟았지요. 뿐만 아니라 민중운동으로서 여성노동자/활동가와의 연대, 비정규직 해고자 복직투쟁,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와 함께하는 제정촉구활동, 조선학교 고교유보무상화 적용요구 등에 연대하며 참여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 교회, 여성들의 연대체를 찾아보기 힘든 사회선교의 현장에서 ‘기독여민회’를 만났습니다. 열심히 활동하는 단체들을 존경하고 애정하면서도 어느 한 군데 마음 붙일 수는 없었던 제게 ‘기독여민회’는 참 특별했습니다. 단체의 역사와 걸음을 통해 앞서 길을 걸었던 선배들의 고민과 제 고민이 맞닿았고, 그 만남은 자칫 실체 없는 외로움에 허덕일 뻔한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동지가 이렇게나 많다는 것을, 같은 뜻을 품은 여성동지들이 존재함을 알게 해주었지요. 그것 하나만으로도 제가 ‘기독여민회’에 머무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 창립회원부터 신입회원에까지 이어지는 소통구조

 기독여민회는 다양한 세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창립멤버인 1기 선배들부터 최근 참여하게 된 66기 회원들까지, 80대의 어르신부터 2030세대의 젊은이들까지 다양한 세대가 더불어 함께하고 있지요.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이 모든 세대의 회원들이 소통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때로는 차이를 받아들이고, 때로는 서로에게 스승이 되어주며 어울림의 묘미를 배워갑니다.

 

‘기독여민회’의 원활한 소통구조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위는 의사결정기구인 ‘실행위원회’라 생각합니다. 실행위원회는 사무국 포함 7개의 위원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15명의 회원이 참여합니다. 실행위원회는 매달 실행위원회 회의로 모여 기독여민회의 사업 방향을 함께 고민하지요. 이 회의를 통해 크고 작은 기독여민회의 행사를 준비하고, 살림을 꾸려나갑니다.

 

실행위원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 발언할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주어져 있기에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위계에 의한 억압을 경험한 적도 없지요. 오히려 제게 찾을 수 없던 새로운 생각, 연륜으로부터 나오는 관록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곤 합니다.

 

더불어 회원들이 토요일마다 함께 모여 산보를 하는 ‘둘레둘레 소모임’, 해마다 모든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잔치를 여는 ‘창립기념행사’ 등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세대 간 소통의 문을 여는 귀한 시간입니다.

 

특별히 창립기념행사를 떠올리면 재밌는 기억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기독여민회’의 창립기념행사는 식순이 선명하고 의례적인 행사는 아닙니다. 말 그대로 잔치이지요. 그렇기에 노래와 웃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한 번은 연세가 지긋하신 선배 목사님께서 ‘직녀에게’라는 곡을 멋들어지게 불러주셨어요. 목소리가 너무나도 고우셔서 행사를 마친 후 따로 인사드리며 인연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목사님은 저를 반가이 맞아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셨습니다. 조금도 불편하지 않고 마치 옛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흥겨웠던 분위기와 든든한 신뢰의 울타리가 그날의 기억을 더욱 따스한 추억으로 남게 하지 않았나 싶네요.

 

많은 이들이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인해 대화가 두렵다 이야기합니다. 종종 그 간극을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소통을 피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만나게 됩니다. 그 두려움 안에는 실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혼재되어 있다 여겨집니다. 이런 지점에서 ‘기독여민회’는 용감합니다. 그리고 사려 깊습니다. 어느 세대 하나 소외되거나 공격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을 모든 구성원이 기울입니다. 위계에 눌리는 회원은 없는지 스스로와 옆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통을 위한 곁을 내어줍니다. 용감하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따스하게 서로를 살피는 공동체인 ‘기독여민회’는 제게 있어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되짚게 해주었습니다.

 

 3.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자매공동체

 제게 있어 ‘기독여민회’는 뜻을 함께하는 동지적 관계를 넘어, 삶을 함께하는 자매공동체로 자리 잡았습니다. 삶의 지향, 가치관이 같아 함께 기운을 북돋고 연대하는 이들과의 관계 역시 큰 자산이고 힘이지요. 그렇지만 제가 굳이 기독여민회를 ‘삶을 함께하는 자매공동체’라 칭한 이유는 공동의 고민, 공동의 어려움, 공동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들이라는 데에 있습니다.

 

올해 초 저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의 시간이었지요.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제 곁에서 함께해주는 수많은 자매를 만났습니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선배라는 이름으로, 언니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나의 삶에 들어와 함께했습니다. 나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개인의 고통을 공동의 고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기독여민회에서의 인연이었습니다. 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며 곁을 지켜준 이들부터, 얼굴도 모르는 선배들의 위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저 기독여민회라는 이름으로 묶였을 뿐인데, 기독여민회 식구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제 삶에 함께했습니다.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남았을지 모를 기억이 ‘감사’의 경험으로 덧입혀 졌습니다.

 

‘기독여민회’는 단순히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의 집합이 아닙니다. 삶을 함께하는 자매공동체입니다. 일례로 ‘기독여민회’는 매달 함께하는 금요기도회 공명을 통해 회원들의 삶을 나누고, 그 삶을 위해 함께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할 수 있는 자리에 기꺼이 동참하지요.

 

한 단체에서 만난 타인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것이 아닌 ‘자매’로 마주할 때 우리의 삶은 공명합니다. 서로의 아픔에, 기쁨에 반응하며 삶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 자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게 있어 ‘기독여민회’는 이처럼 삶을 나눈 자매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든든히 곁을 지켜주는 자매공동체의 존재는 제 삶을 보다 든든히 받쳐주는 기반이 됩니다. 함께 성장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운명공동체로서의 역할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원고청탁을 받고 ‘나는 왜 기독여민회에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분명 ‘기독여민회’는 사회선교를 위해 마음을 다하는 건강한 단체이지요. 그리고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원활한 소통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공동체, 삶을 함께하는 자매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왜 기여민에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직관적으로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기독여민회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독여민회의 지향과 문화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구성원을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혹여나 기독여민회가 건강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면 최선을 다해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저는 제가 ‘기독여민회’를 사랑할 수 있었던 마지막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회원들의 단체를 향한 애정과 사랑입니다.

 

많은 회원들이 이 단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꼈기에, ‘기독여민회’는 지금처럼 든든한 자매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즉, 선배들로부터 이어진 회원들의 관심과 사랑이, 제가 아끼고 사랑하는 ‘기독여민회’를 만들어 온 것이지요.

 

건강한 공동체는 구성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구성원의 사랑을 받는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듭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가 사랑하는 ‘기독여민회’가 자매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자기 정체성을 갖고 사역에 임할 수 있도록, 용감하고 따스하게 서로에게 곁을 내어줄 수 있도록,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그리고 ‘기독여민회’를 만나게 될 분들에게도 제가 경험한 따뜻한 자매애가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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