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가을, 기획 기사] 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고민과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이은재)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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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 운동에 대한 고민과 한국교회에 대한 우려








이은재(기독교반성폭력센터 활동가)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8월에는 세 가지 심리검사와 두 번의 상담을 했다. 우리 단체가 하는 일이 심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 된다는 판단하에 진행된 일이었다. 활동가 소진 방지를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현재 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약칭 기반센)라는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매일매일 언제 상담 전화가 울릴지 몰라 대기하는 일은 늘 몸과 마음의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이 일을 시작하고 처음 한 달은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꿈을 몇 번 꾸었다. 두 번의 상담을 통해 내 내면을 돌아보고 나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배움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행위가 그 자체로 의미있고 위로가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 센터가 센터로 전화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위로를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깨달음 말이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삼일교회가 전 담임목사였던 전병욱 목사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교회성폭력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해 내놓은 결과물이다. 삼일교회는 교회문제상담소를 운영하며 교회성폭력 문제에 대응해왔던 교회개혁실천연대와 업무협약을 맺고, 교회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치유와 회복을 돕는 센터 설립을 위해 기금을 마련했다. 이후 미투운동이 한창이던 2018년,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한국교회에 출범을 알리고 활동을 시작했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교회와 교회 문화권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상담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전화 상담과 메일 상담, 면접 상담을 통한 간단한 조언에서부터 해결 과정 자문과 심리·정서적 지원활동 및 형사고소 사건의 경우 법률 자문이나 무료법률 구조지원을 통한 변호사 연결, 재판 모니터링, 탄원서·의견서 작성 등의 지원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신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를 위해 전문 심리상담을 지원하고 피해생존자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피해자가 속한 교회나 공동체에 정의로운 해결을 촉구하는 공동체 해결 지원 또한 피해자 지원 사업에 포함된다.


피해자 지원사업뿐만 아니라 목회자, 교사,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 교회성폭력 예방교육과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 등의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사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의 정책과 교단법을 모니터링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제도개선 사업도 함께 한다. 올해 진행하는 교단별 총회(장로교 계열 교단은 매년 9월 말에 열린다) 성평등 모니터링은 그 일환이다. 우리는 이 모든 활동을 넓은 의미의 ‘기독교 반성폭력 운동’이라고 명명한다.

 

성폭력 사건 대응의 지난함과 어려움

나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이하 개발원)이라는 에큐메니칼 여성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했다. 개발원은 감리교단을 배경으로 교단 내 여성 리더십을 키우고 성차별적 정책과 법을 개정하며, 평등한 예배용어와 예배문 구성을 비롯한 성평등한 교회문화 확산을 중심으로 운동하는 단체다. 나는 개발원에서 교단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그때그때 연대하는 일은 했지만, 성폭력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맡아 하진 않았다. 성폭력 사건 대응과 피해자 지원은 전문 단체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 대응과 피해자 지원의 복잡함과 지난함을 피해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기반센에서 일하기로 결심한 건 내 나름으로 반성폭력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셈이었다.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복잡하고 지난한 일이다. 교회 공동체 안에는 구성원들이 성폭력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배경지식과 결을 맞추는 교육이나 학습이 전무하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 간에 성폭력에 대한 정의 및 성인지 감수성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해당 행위가 성폭력인지 아닌지를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이후 성폭력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고 대처 방안을 논의하기까지, 이 차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성폭력을 정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안에서의 끈질긴 합의와 그로 인한 자연스러운 갈등은 불가피하다. 평소 이 작업을 했던 공동체가 아니라면, 보통 사건이 일어나고 난 뒤에야 공동체 안에서 토론이 시작된다. 그렇기에 공동체를 재건하는 과정들은 ‘피곤함’과 ‘불필요한 갈등’으로 치환되고,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은 꺼려지는 일이 되곤 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폭력 사건이 공론화되었을 때,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사건을 법적으로 해결해 오라는(판결을 받아 오라는) 요구를 교회로부터 받는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지원하는 상당수의 교회성폭력 사건은 현재의 형법 체계 안에서 범죄를 인정받기 어렵다. 교회성폭력은 교회의 성차별적 구조와 위계, 신앙을 기반으로 한 길들임을 동반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형사고소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피해자의 신앙생활과 삶이 깊게 결합되어 있을수록 교회 안에서 겪는 2차 피해 또한 극심하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어 온전히 개인이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피해자가 얼마나 괴로운지, 피해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를 증명하는 것이기보다, 피해자가 회복과 해결의 방법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은 공동체를 와해시킨다는 공격적 눈초리와 압박 그리고 2차 가해라는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늘 머리를 싸매게 되고 정당화의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2차 가해,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논의는 여성운동 진영 안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기에 따로 반복하지는 않겠다.

 

점차 가시화되는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에서의 격차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 위계와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남성 목회자가 독점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개신교 교회의 구조에서는 성폭력이 구조적으로 재생산될 수밖에 없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여성 안수와 여성 리더십, 성평등 문화 정착을 반성폭력 운동의 한 부분으로 가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교회에는 이성애 가족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하는 ‘남성 목회자-여성 평신도’라는 성별화된 관계와 역할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성별화된 신앙생활의 경계를 흐리는 여성 목회자는 이성애 가족 중심의 한국교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여성 안수 금지는 신학의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한 ‘의사결정 구조의 독점’이라는 차별의 문제인데, 여성 안수가 가능한 교단과 그렇지 않은 교단의 차이는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 여성 안수가 금지된 교단의 경우에는 교단 내에서 심각한 성폭력 사건이 드러났을 때 사회적 압력과 비판을 피하기 위해 매뉴얼을 도입하고 법을 만들더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회적 비난이 잠잠해진 뒤에는 그러한 제도들이 유명무실해지곤 한다. 반면에 여성 안수가 도입되고 여성 리더십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교단은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여성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모니터링과 연구를 진행하고 대책마련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차별이 심한 교단과 교회일수록 성폭력을 구조적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보기 때문에, 원인분석과 대책마련이 미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대다수의 교단 총회가 끝난 지금, 여성 안수 금지를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는 몇몇 교단들을 보며 냉소에 빠지지 않고, 교회성폭력 근절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려 한다.

 

복음주의, 에큐메니칼 운동 진영과 반성폭력 운동

기독교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성폭력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을 옹호하며 “우리 목사(교수)님이 그럴 리 없어.”, “이 친구(사람)가 이럴 리 없어.”라고 반응하는 모습들을 종종 보았다. 특히 한국사회와 교회에서 교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목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이런 반응들 때문에 피해자는 공론화를 꺼리게 된다. 유력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 공론화 과정에서도 이 모습은 반복되었고,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은 시민사회 진영에서도,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진영안에서도 큰 분기점이 되었다. 복음주의 진영은 박원순 사건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유력 스피커들과 별다른 거리를 두지 않았고,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원로들이 박원순의 죽음을 추모하는 기도회를 열어 박원순의 가해 행위를 두둔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제247차 월례포럼에서 황용연의 「기독교운동의 균열에서 읽어내는 한국 사회운동의 균열」 발제 후 토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부분이 있다. 기독교운동 내의 균열에는 박원순 사태의 영향이 컸으며 박원순 사태 이후 “박원순에 대해 동정적인 사람들과 비판적인 사람들 사이에 말이 잘 통하지 않게 되었고 그 구분선이 민주화 투쟁 경험이 있는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로 그어진다는 지적”1)이 그것이다. 활동가 김은선은 복음주의 기독교운동 진영이 “여전히 이 의제에 대해 모른 척, 또는 알지만 다루고 싶지 않기에 짐짓 못 본 척하고 있”2)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2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주최한 토론회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에서 전희경은 “성폭력 사건 해결 과정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연루된 ‘의미 투쟁의 과정’”3)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진영이 지금껏처럼 정의를 추구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성폭력 운동에서도 역시 말이다. 복음주의/에큐메니칼 진영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성차별,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에 자신이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하고 사회적 정의(justice)에 대한 새로운 감수성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재의미화 작업’이다. 정의와 부정의(injustice)에 대한 공통의 감각을 찾지 못한다면 공동체성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미투 운동과 유력 정치인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을 지나오며, 모두들 나름의 의미를 새기거나, 대응하지 않음으로 일관하는 등의 태도를 취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논의를 하고, 담론을 생산하며, 모임과 자리를 만들고, 대안을 구상하며 앞으로를 전망하는 작업을 함께 한 사람들은 나름의 공동체성을 가지고 사회선교/하나님 나라 운동의 영역을 걷고 있다. 교단 간 가시화되는 격차만큼이나 복음주의/에큐메니칼을 불문하고 운동 진영 안에서도 공통의 감각을 만들어가는 공동체와 그렇지 않은 공동체의 격차가 점점 벌어질 게 뻔해 우려된다.



1) 황용연, 「기독교운동의 균열에서 읽어내는 한국 사회운동의 균열」, 웹진 3era, 2022 여름. https://3era.campaignus.me/1497350861/?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12053603&t=board

2) 김은선, 「중요한 문제를 중요하게 끌어안는 용기」, 『복음과 상황』, 2022.09.

3) 전희경, 「공동체 성폭력 ‘이후’, 새로운 관계를 상상하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토론회 자료집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2012,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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