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가을, 기획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이어지는 일 : 천안에서 호두-하기(최시내)

2022-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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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이어지는 일

천안에서 호두-하기


최시내(사과나무 디자인노동자)


이야기의 시작 : 호두와트

내가 천안에서 일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늘 간절했던 것은 또래였다. 비슷한 일을 하거나 접점이 있는, 아무튼 천안에서 일하고 있는 또래들이 궁금했다. 첫 직장을 천안에서 다니기 시작하면서 또래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내심 무언가 더 재밌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겐 특별히 재밌는 아이디어는 없었지만 그냥 회사만 다니는 일상은 무언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 부족함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채였다.

 

그러다 두 번째 직장인 사과나무에 들어가면서, 사장님을 통해 ‘호두와트’라는 모임을 알게 되었다. (천안의 명물 호두와 호그와트가 결합한 단어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궁금했던 게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잘 몰랐지만, 호두와트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볼 때면 내가 바랐던 무언가 다르고 재미있는 일들이 여기에 있다고 느껴졌다. 호두와트의 사람들은 천안에서 일하고 있으며 일하는 곳과 분야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일하거나 시민사회 영역에서 일하는 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천안은 위치상으로도 그렇고 여러모로 애매한 도시다. 대학이 5개나 몰려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많지만 한편으론 서울과 가까워서 이곳에 아예 머물게 되는 인구는 적다. 잠깐 스치듯 지나가는 도시인 셈이다. 그래서 천안에 있는 젊은이들은 문화적인 것을 즐기려면 서울로 간다. 나 또한 20대에 주말엔 주로 서울에 가서 놀았다. 하지만 이것에 의문을 품는 천안사람들이 있었으니 그게 호두와트였다.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천안에서도 해 보자’라는 게 큰 동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호두와트는 여러가지 일을 벌여 왔다. 그중 하나는 단대호수(천호지)에서 ‘섬잔치’라는 플리마켓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었다. 또 원데이 클래스가 유행할 무렵엔 ‘섬섬옥수’와 ‘호두학교’라는 이름으로 여러 분야의 원데이 클래스와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사실 내가 합류했을 즈음엔 호두와트 활동의 전성기는 지난 느낌이었다.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일은 없지만 관계들이 남아 있었고, 필요할 때 같이 궁리하거나 일을 꾸렸다. 내가 호두와트의 이름으로 직접 참여해 본 행사는 ‘나무잔치’라는 행사였다. ‘공원일몰제’ 폐지로 천안에 있는 일봉산 공원이 곧 아파트 부지가 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일봉산 주변엔 이미 아파트 단지가 빼곡했고, 일봉산은 동네 주민들이 애용하는 산책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천안의 시민단체들이 일봉산 공원의 개발을 반대하고 있었다. 그때 그 사실을 지나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멤버들은 조금씩 일을 꾸렸다. 마을 주민들이 지나다니는 산책로에서 마켓도 열고, 공연도 하고, 놀이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사람들에게 공원일몰제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일봉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렸다. 행사 자체는 소박했지만 준비하는 과정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즐거웠던 것 같다. 우리가 일봉산과 공원일몰제를 얼마나 알렸는지, 그 영향력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한 번쯤은 일봉산과 공원일몰제에 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됐을 것이다. (결국 일봉산 개발에 관해서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투표참여자가 과반이 넘지 않아서 개표하지 못했고, 일봉산 공원의 민간개발이 시작됐다.)

 

호두와트의 나무잔치 행사

 

연결은 계속된다 : 호두구판장과 호두와글

그 다음이 ‘호두구판장’이었다. 호두구판장은 사과나무 한 켠에 마련된 작은 제로웨이스트샵이었고, 2021년 6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제로웨이트스트샵은 불필요한 쓰레기가 덜 나오는 방식으로 소비를 할 수 있는 가게다. 요즘은 제로웨이스트샵이 서울 외에도 여러 지역에 생기고 있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기 때문에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공병을 가져가면 담아올 수 있는 세제류, 샴푸, 화장품, 식료품 등과,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되지 않은 비누나 칫솔 같은 생활용품들을 판다.

 

2020년 겨울 무렵에 호두와트 멤버들 사이에 제로웨이스트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그때만 해도 아직 천안엔 제로웨이스트샵이 없었다. 이와 관련해 몇몇이 이야기를 나눠보다가 모두에게 얘기했을 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다시 모였다. 기후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환경에 부담이 덜 가는 방식으로 소비를 할 수 있고, 천안에 아직 제로웨이스트샵이 없다는 점이 우리를 움직이게 했다. 그리고 다들 일이 아닌 무언가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우리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기 위해 몇 차례 모여 회의를 했다. 서울에 있는 ‘알맹상점’이나 다른 제로웨이스트샵을 구경하러 돌아다니기도 했다.

 

기획단계는 어쩐지 착착 이뤄지는 듯 했다. 당장 공간을 빌리는 것은 부담스러우니 사과나무 사무실 한 켠에서 제로웨이스트샵을 운영해 보기로 했다. 각자가 낼 수 있는 만큼의 돈을 모아서 판매할 물건들을 구입했다. 물건들을 구입하다 보니 조금씩 실감이 났던 것 같다. 영업은 주말에만 하기로 했다. 평일에 사과나무는 일을 하는 공간이고, 디자인 작업과 물건 판매를 병행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들 평일엔 생업이 있으니 그 일에 충실하고 토요일과 일요일에 당번을 나눠서 가게를 지켰다. 사실 우리가 가게 오픈을 준비하는 사이 천안에는 제1호 제로웨이스트샵이 생겼다. 그 타이틀을 놓친 게 무척 아쉬웠지만, 준비했으니 해보기로 했다. 어설프지만 어설픈 대로 가게를 열고, SNS를 통해 홍보도 했다.

  

제로웨이스트샵 호두구판장

 

실제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진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인들이 방문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은 보람들은 있었다. 물건을 파는 것 말고도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제대로 모일 수 있도록 아이스팩, 우유팩, 멸균팩을 모으는 일도 했다. 그리고 지역의 시민단체인 녹색소비자연대에서 엄청나게 부지런히 우유팩을 모으는 활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상점으로서뿐만 아니라 자원이 제대로 순환될 수 있는 정거장 역할을 한다는 보람을 느꼈다.

 

또 교회 청년 중에 초등학교 교사가 있는데, 그 청년이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우유팩을 모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우유팩을 호두구판장에 전달해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우유팩을 모으는 사진들과 실제 우유팩을 전달받았을 때, 실체가 있는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대단하진 않지만 우리의 관심이 주변 사람들의 관심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두구판장을 시작할 땐 들뜬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우리가 이런 것을 한다는 게 재밌기도 했고, 의미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을 좀 더 내 생활 가까이에 끌어들이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는 환경을 위하는 일에 철저한 사람은 아니었다. 나의 편의를 위해 눈감아 버리는 일이 더 많고, 허술한 사람이어서, 떳떳하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운동에 열심인 사람으로 보여진다는 사실이 나 스스로를 한 번 더 실천하게 하는 장치로 작용했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 보는 노력을 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반 년 정도 실제로 호두구판장 공간을 지키면서 일해 보니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을 만나게 됐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공간을 지킨다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손님 입장에선 오픈하는 날도 적고 운영시간도 애매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하루를 지키는 담당자들에게 그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같이 하는 일이지만 정작 가게를 지키는 당일에는 오롯이 혼자였기에 재미가 부족했다. 결국 6개월 정도 운영해보고 우리는 호두구판장을 닫기로 결정했다. 조금 더 재미있게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호두구판장을 운영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호두구판장은 잘 해내지 못한 일, 하다가 만 일 같이 느껴진다. 그 일들에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적어도 일을 꾸릴 때 즐겁게 준비했고, 우리의 재미와 지역의 필요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한 기간 안에서 충실히 해 보고자 노력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럴듯한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게 우리의 한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과정에서 얻은 경험들이 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할 때 더 재미있는지, 어떤 일을 더 잘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을 쌓아가며 또 겁없이 일을 벌여 볼 수 있지 않을까?

 

호두구판장을 정리한 뒤에 우리는 글쓰기 모임 ‘호두와글’을 진행했다. 꾸준히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글쓰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그냥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 그 글의 첫 번째 글은 호두구판장을 마무리하는 소감에 대한 것이었다. 제로웨이스트샵에서 무언가 다른 결과물로 이어지진 못했지만, 우리는 계속 이어진다. 작은 흥미로부터 시작해서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꾸린다. 나 혼자였으면 생각하지 못하거나, 생각에서 그칠 일을 한번 벌여 본다.

 

호두와글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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