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여름, 기획 기사] 민중신학의 여성주의 유산들을 찾아서 :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①(정혜진)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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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의 여성주의 유산들을 찾아서

『신학사상』을 중심으로 ①


정혜진(제3시대 연구원)

 

이 글은 민중신학과 여성주의의 관계, 민중신학의 여성주의적 의미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더불어 연구소와 함께한 여성신학자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에, 여성주의와 민중신학의 만남을 시도한 작업들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민중신학자 안병무가 설립한 한국신학연구소(1973년 출범)에서 발간한 『신학사상』(1973년 창간)을 검토했다. 『신학사상』에 실린 여성주의 관련 논저와 기획을 살펴보면 민중신학이 여성 문제를 다루고 여성주의 담론을 생산해 온 역사를 파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매체의 편집인이 누구인지, 어떠한 방식으로 편집 회의가 이루어졌는지 등의 구체적인 사항들도 고려해야 하지만, 여력이 충분치 않아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주지하듯 한국신학연구소와 『신학사상』은 민중신학의 형성과 제도화, 전파의 토대였다.1) 『신학사상』에서 처음으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이 드러난 것은 1982년 가을호(제38집)이다. 해당 호는 ‘여성신학’을 주제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개최한 심포지움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 특집에는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에서 번역한 L. Schottroff의 「예수의 무덤 옆에 있던 막달라 마리아와 여인들」, C. Halkes의 「여성신학에 있어서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항의의 모티브」, B. Brooten의 「신약성서 주석을 위한 여권주의적 언급」, H. Balz-Cochios의 「고멜 또는 아스타르테의 세력」 그리고 이 역서들을 바탕으로 한 민영진·박순경·손덕수·이우정·이종성·장상의 토론이 실렸다. 한국신학연구소 번역실의 위 번역 작업은 당대 세계 여성신학의 첨예한 의제인 기독교 전통의 남성 상징 문제와 여성신학적 성서해석 방법 등을 다루는 텍스트를 소개한 것으로, 당해 연도에 『Evangelische Theologie』에 실린 글과 1~2년 사이에 『Concilium』에 실린 글들을 번역한 것이었다. 이처럼 『신학사상』은 세계 신학의 경향을 빠르게 수용하여 여성신학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며 이는 당대 한국에서 전개된 여성신학운동과 연계된 것이기도 했다. <편집후기>는 서구에서 1960년대부터 부상한 여성신학운동이 근년에 우리나라에 접목되어 관련 주제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1980년 4월에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창립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1975년 UN ‘세계 여성의 해’를 맞이해 한국에서 ‘여성인간선언’이 발표되고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여성주의적 성찰과 여성신학이 요청되었다. 이에 1980년에는 한국 최초의 에큐메니칼 여성신학운동 단체인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설립된다. 이처럼 1980년대 초반은 여성신학운동이 시작되어, 여성신학의 문제의식을 고찰하고 한국의 여성신학을 정립하던 시기였다. 『신학사상』 1982년 가을호(제38집)에 실린 ‘여성신학’ 심포지움(토론)에 참여한 상당수의 인원 또한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설립에 깊이 관여하여 여성신학운동을 전개했던 이들이었다. 일례로 당시 ‘여성신학’ 심포지움의 사회자였던 박순경은 이화여대 교수이자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초대 회장이었다. 그는 심포지움의 의의를 언급하며, 한국에서 여성신학운동이 시작된 이래 여성단체/기관에서는 여성문제와 여성신학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전개했지만 그 이외의 단체나 기관이 여성신학을 주제로 논의의 장을 마련한 경우는 한국신학연구소의 ‘여성신학’ 심포지움이 최초라고 설명하였다.2) 이를 참고할 때, 한국신학연구소의 ‘여성신학’ 심포지움과 『신학사상』 1982년 가을호(제38집)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창립을 비롯한 한국 여성신학운동의 발흥이 계기가 되었으며, 여성신학운동의 정립과 확산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흔치 않은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1983년 2월에 한국여신학자협의회가 개최한 ‘제1차 아시아여성신학 정립협의회’에서는 민중신학자 김용복이 「여성문제와 민중의 사회전기」3)를 발표했으며, 마찬가지로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주최로 1983년 4~5월에 진행된 여성신학자 레티 러셀 내한 프로그램에는 민중신학자 서남동이 전일 참석한 것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회고되기도 하였다.4) 이후 1988년에 레티 러셀은 「여성의 입장에서 본 민중신학」이라는 글에서 당시의 한국 방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인권을 위한 투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중신학은 그 상황 속에서 매주 어떻게 단련되고 있는가를 직접 재발견하였다. 여성해방론자인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신학 훈련을 받은 여성들 가운데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이 태동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은 퍽 고무적인 일이었다.”5)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의 태동을 보여주었던 그 여성들은 누구였을까?

 

한편 레티 러셀이 「여성의 입장에서 본 민중신학」을 쓰게 된 이유는 드루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했던 이정용으로부터 『Minjung Theology : People as the Subject of History』(1983)에 대한 논평을 요청받았기 때문이었다.6) 이 글에서 레티 러셀은 한국에서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동시에, 그러한 신학을 실천하는 여성신학자들이 정작 민중신학이 태동하고 『Minjung Theology』가 출간되어 대외적으로 소개될 당시(1979~83) 대화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비판점으로 지적한다. 이처럼 레티 러셀은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의 과제를 역설하는 동시에,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의 연결고리가 점차 분명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희망을 찾는다.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대표들이 “한국신학연구소의 후원 아래 민중신학자들과 계속해서 만”7)나고, 민중운동과도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후원과 협력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충분히 확인하지는 못 했지만, 여성신학자들과 민중신학자들은 여성 민중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레티 러셀은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의 공통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해방신학은, 경험의 권위에 호소한다는 점과 고전적 신학규범들에 입각하여 신학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규정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민중신학과 공통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해방신학 역시, 여성들의 경험으로부터 그 권위를 이끌어낸 ‘반신학’이다.”8)

 

1980년대 중후반의 『신학사상』에는 민중신학과 유물론, 맑스주의와의 대화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지는데,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는 다시 여성주의적 문제의식을 담은 논문과 역서가 등장한다. 1987~88년도에는 평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여성주의 논문과 역서가, 1989~90년도에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대화를 시도하는 글들이 실린다. 앞서 살펴 본 레티 러셀의 글도 이 시기에 번역되며, 그 외에도 손승희의 「여성신학에서 본 민중신학 : 몸을 긍정하는 여성신학의 입장에서」와 서창원의 「한국신학 형성을 위한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만남」이 게재된다.

 

1989년에 게재된 손승희의 「여성신학에서 본 민중신학 : 몸을 긍정하는 여성신학의 입장에서」는 민중신학운동과 여성신학운동을 1970~80년대의 대표적인 신학운동으로 꼽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두 신학은 갖가지 오해와 비판, 그리고 적지 않은 동조와 환영 등 엇갈린 반응을 불러 일으키면서 새로운 신학의 모습을 드러내 가고 있다. 두 신학은 때로는 동질성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단순한 대화의 차원을 넘어 어떤 결속의 의지를 보이는가 하면, 또 때로는 서로의 손이 잡히지 않는 거리감을 강하게 느끼면서 각자 나름의 형태를 다듬어가고 있다.”9) 이처럼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은 유사한 신학적 위상과 연대의 의지를 공유하면서도 상당한 거리감을 가진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승희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상호 개입과 성찰이 가능한 지점을 ‘몸(body)’ 개념으로 보았다. ‘몸’은 성차별적 사상·제도의 중심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여성신학에서 기독교 전통을 비판하고 새로운 신학을 형성하는 데에도 중요한 개념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손승희는 민중신학이 민중의 언어로서의 ‘유언비어’ 등에 주목하며 “몸의 언어”10)를 구현하는 신학이라는 점을 상기하면서, 새로운 신학으로서의 민중신학의 ‘몸’에 대한 이해에 여성주의적 개입과 전환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또한 손승희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결속과 연대의 강화를 위해서는, 여성이 성차별 구조로 인해 “고통의 이중구조”11)에 놓여 있음을 인정·고려하는 사회 분석과 신학적 성찰이 민중신학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럴 때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은 여성과 민중의 관계, 즉 ‘여성 범주’와 ‘민중 범주’에 대한 질문을 함께 맞닥뜨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12) 그러한 질문은 “‘민중해방이 먼저냐? 여성해방이 먼저냐?’하는 물음”13)이 아니라, 민중과 여성의 “서로 다른 두 차원이 만날 수 있는 점을 어떻게 설정할”14)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은 1990년에 게재된 서창원의 「한국신학 형성을 위한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만남」에서도 드러난다. 서창원은 박순경의 『한국민족과 여성신학의 과제』(1983)를 인용하며, 민중신학이 여성들의 수난을 민중신학의 역사적 근거로 포함하고 있지만, 여성들이 겪는 “성차별이라는 이중적 질고의 특수성”15)을 고려하지 않고 여성을 민중 일반으로 이해할 경우에는 “남성지배 이데올로기로 둔갑할 수 있다”16)고 역설한다. 그리고 레티 러셀과 마찬가지로 『Minjung Theology』에 여성신학자의 논문이 전무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민중신학은 그 신학의 구조 안에, 성차별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내용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가부장주의적 남성중심 문화체계 전반을 문제삼는 근원적 관심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이를 취급하여야 한다.”17)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중신학 본질에 대한 배반”18)이며, “여성해방적 입장에서 민중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어야”19)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는 민중신학적 입장에서, 여성신학 또한 “구체적인 민중여성의 해방운동이라는 실천적 현실 운동과의 매개”20)가 더욱 필요하다고도 강조한다.

 

이어서 서창원은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대화와 연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한다. 먼저 한국여신학자협의회의 『한국여성신학의 현장―제2차 여성신학의 현장』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한국의 가난한 여성에 관한 연구』가 ‘현장성’ 및 ‘빈곤과 성차별의 이중고’를 다룬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또한 서남동이 반가부장적 해석학을 주장하는 여성신학자 트리블(Phyllis Trible)의 ‘입다의 딸에 대한 해석’을 인용하면서, 성서 안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여성신학적 역사비판을 시도했음을 전한다. 그리고 “한국신학의 주체성 확립과 민중해방, 여성해방의 실천이라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목표와 전략을 갖고 있”21)는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이 상호비판적 대화와 연대를 더 활발히 전개하기를 염원하며 글을 맺는다.

 

이처럼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신학사상』에 실린 여성주의 담론은 대체로 번역을 통해 여성신학의 문제의식을 소개하고 한국에서의 적용을 논하며, 여성신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학사상』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민중신학을 성찰하고 상호 간에 대화와 연대를 강조하는 글을 실은 것은,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을 위한 담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구체적인 작업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1990년대 중반~2000년대에 『신학사상』은 번역을 통해 여성주의 담론을 소개하는 대신 한국 여성신학의 구체적 의제들을 다루는 논저를 게재한다. 대표적으로 ‘여성주의와 교회’, ‘여성 종교로서의 무교(巫敎)’, ‘‘위안부’ 문제’, ‘에코페미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에큐메니칼 운동과 페미니즘’ 등을 다루는 글들과, 안병무의 민중신학을 여성신학적으로 고찰하는 글이 실렸다. 이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여성신학운동의 동향과 문제의식에 주목하고 여성해방적 민중신학을 구성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오늘의 몫으로 놓여 있다. 민중신학의 여성주의 유산들을 재조명하는 시도가 그 길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1) 정용택, 「이론적 위기에 처한 ‘민중신학’, 신학적 비판이론으로 재구성」, 『교수신문』, 2022.04.13.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87311

2) 민영진·박순경·손덕수·이우정·이종성·장상, 「여성신학」, 『신학사상』 제38집, 1982년 가을, 552쪽.

3) 김용복, 「여성문제와 민중의 사회전기」, 『새가정』, 새가정사, 1983.3.

4) 정숙자, 「[여정2] 여신협은 세상과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1982.4~1984.11)」, 『여신협 20년 이야기』, 2000.4.

5) Letty M. Russell, 「여성의 입장에서 본 민중신학」, 『신학사상』 제70집, 1990년 가을, 819쪽. 이 글은 1988년에 미국에서 발표되고, 1990년에 번역되어 『신학사상』에 실린다.

6) 위의 글, 817쪽. 레티 러셀을 포함해 여성신학, 흑인신학, 제3세계 신학 등의 관점에서 『Minjung Theology』를 논평한 글이 묶여 미국에서 다음의 책으로 발간되었다. Lee Jung Yong ed, 『An Emerging Theology in World Perspective : Commentary on Korean Minjung Theology』,(Mystic, Connecticut : Twenty Third Publications, 1988). 이 책은 1990년에 레티 러셀의 글이 번역되어 『신학사상』에 수록된 지 20년 후인 2010년에 다음과 같이 완역 발간되었다. 로버트 맥카피 브라운 외, 이정용 편, 연규홍 역, 『민중신학, 세계신학과 대화하다』, 동연출판사, 2010.

7) Letty M. Russell, 앞의 글, 820쪽.

8) 위의 글, 828쪽.

9) 손승희, 「여성신학에서 본 민중신학 : 몸을 긍정하는 여성신학의 입장에서」, 『신학사상』 제66집, 1989년 가을, 609쪽.

10) 위의 글, 622쪽.

11) 위의 글, 619쪽.

12) “남성들에게 억압당하고 있는 여성들은 모두 민중의 범주에 속하는가? 여성해방론자는 민중의 범주에 들어가는 부류와 반민중의 범주에 들어가는 부류로 이분되는가? 인간해방이라는 과제에서 볼 때, 여성과 민중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나? 여성신학을 하는 한 여성으로서 나는 민중이라는 상황적 특수성에 한정되어야만 하는가? 이런 고민은 민중이라는 계급적 특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특성이 논의에 임하는 나의 입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아직 불확실한 모습으로 얽혀있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민중신학과의 대화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해답을 얻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중략) 민중적 당파성과 여성적 당파성의 문제, 혹은 민중 안에서의 여성적 당파성과 남성적 당파성의 문제는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 아직은 미지수인 것 같다.” 위의 글, 620-621, 628쪽. 손승희의 이와 같은 질문은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의 만남이 여성 범주와 민중 범주에 대한 질문을 촉발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3) 위의 글, 629쪽.

14) 위의 글, 629쪽.

15) 서창원, 「한국신학 형성을 위한 민중신학과 여성신학의 만남」, 『신학사상』 제69집, 1990년 여름, 471쪽.

16) 위의 글, 471쪽.

17) 위의 글, 472쪽.

18) 위의 글, 473쪽.

19) 위의 글, 473쪽.

20) 위의 글, 476쪽.

21) 위의 글, 4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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