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여름, 기획 기사] 을지OB베어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성철)

2022-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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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OB베어의 부활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성철(제3시대 연구원)

 

을지OB베어


서울 중구 을지로3가에 위치한 을지OB베어는 1980년 12월 6일 대한민국 최초의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로 개업했다. 서울 한복판 낡은 인쇄소 건물들에 둘러싸인 을지로에는 새벽이면 골목을 쓸고, 시간을 지켜 문을 열고 닫아온, 을지OB베어의 1대 사장 강효근 사장님이 있었다. 맥주 한 잔에 380원, 김, 땅콩, 어포류의 안주는 모두 100원. 고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하기 전, 많은 이들이 6평의 작은 가게에서 저렴한 안주와 시원한 맥주로 하루를 달랜 시간이 쌓여 42년이다.

 

을지OB베어는 2015년 서울시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다. 서울시는 을지OB베어가 위치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특색 있는 장소이자 보존해야 할 문화로 인정해 서울시 조례로 골목 야장영업을 허용했다. 작은 노포들이 모여 맥주를 팔던 을지로 골목이 ‘힙지로’로 불리게 된 것은 긴 시간 골목을 꾸준히 일궈내 문화로 만들어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7~8년 전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 진입한 만선호프가 특색 있는 안주들과 다양한 맥주 맛을 자랑하던 노가리 골목의 가게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만선호프는 기존의 작은 노포들이 함께 장사하던 건물을 사들이고 벽을 터, 하나의 ‘만선’으로 만들었다. 하나하나 간판을 내린 작은 가게들에는 만선호프 1호점, 2호점의 간판이 달렸다. 건물을 구입하지 못 한 이들을 몇 배의 월세를 주고 내쫓아, 만선으로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는 무려 10개의 만선호프가 개업했다.

 

4월 21일 새벽 3시 20분, 을지OB베어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용한 용역 70명에 의해 강제집행을 당했다. 노란조끼를 입은 용역 깡패들은 일사불란하게 모든 집기와 사람을 끄집어냈다. 모든 것을 무력하게 빼앗기는 동안,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개인 간의 사적인 문제이니 폭력에 개입하지 못한다’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강제집행 이후, 을지OB베어 내부의 벽이 허물어지고 오렌지색 페인트가 칠해졌다. 만선호프의 색이다. 만선호프는 그렇게 또 하나의 가게를 빼앗아 11번째 가게를 세우려 한다. 여러 문화가 공존했던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만선호프’ 골목으로 만들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과 민중신학, 쫓겨난 자리에 다시 모인 사람들


민중신학자 서남동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누가 18:25)라는 구절을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로 해석한다. 이는 부자가 회개하고 착한 부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자산총액으로 부자를 분류하여 누구는 분명하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누군가는 가망이 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부자와 가난한 자의 현실이 문제”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내 소유로 내가 누리는 것은 내 자유’라는 상식을 지적하는 것이다.1) 오늘날 부자(자본)는 취약한 이들의 것을 법의 이름으로 빼앗아 낙타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바늘귀를 만들고는 성공신화라고 이름 붙인다.


현재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단순히 개인 간의 자산 규모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격차를 심화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자산 규모의 차이가 나는 개인들의 경제적 이익 다툼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을지OB베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건물주가 있던 을지OB베어의 건물의 지분을 사들여 건물주가 된 만선호프는 을지OB베어의 임대차계약 연장을 거부하며 부동산 명도소송을 제기했다. 임차료를 2배 더 내겠다는 요청도, 새로 올 임차인이 내건 조건에 그대로 맞춰주겠다는 부탁도 건물주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행법은 을지OB베어 같은 노포를 지키지 못 한다. 2018년 10월에 개정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은 계약갱신 요구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확대했으나, 10년 이상 영업한 가게는 여전히 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한다. 을지OB베어는 42년 동안 영업한 가게이기에 무력하게 내쫓겨야 했던 것이다. 기간에 제한이 없는 계약갱신청구권이 임차인에게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상가법은 임대인이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8가지나 제시하고 있기에, 얼마든지 임대인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2)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미래유산 지정이 무색하게도, 보존되어야 할 가치를 지켜낼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신학은 민중의 공간과 기존 질서가 충돌하여 발생한 ‘민중사건’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로서 ‘민중’을 재발견했다. 이제 우리는 이 ‘쫓겨남의 사건’에서 이 시대의 민중을 발견한다.3)

 

을지로가 ‘힙지로’로 떠오르는데 SNS의 역할이 컸다. 매일 진행되는 피켓팅과 행사의 모습들또한 SNS로 공유되고 연결된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들이 모여서 즐겁게 투쟁을 할 수 있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깊게 생각해보지 못해, ‘맥주 맛이 좋아서요.’라고 답했다. 실제로 맥주 맛이 굉장히 좋다. 그보다도 을지OB베어에서 한 잔씩 마신 맥주로 연결된 모든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일 것이다. 42년 전 맥주를 마셨던 손님과 오늘 처음 방문한 연대인이 맥주 한 잔에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투쟁한다. 한번 맛을 보고 빚진 맥주가 흘러 모두를 이어주고 있다. 투쟁의 하부구조가 시원한 맥주와 노가리라고 말하고 싶은 걸 참는다.

 

옥바라지 선교센터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어느 순간 연대의 맥주를 성찬을 받는 마음으로 받게 되었다. 맥주의 연대는 운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매주 술에 취하기 위해 노가리 골목을 찾는 사람들 속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예배를 드리며 예배와 투쟁의 의미를 다시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을지OB베어의 부활을 목격하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증언하기 위해 매일 밤 골목에 모여 함께 상생을 외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는 법 너머에 있다고 믿는 이들이 오늘도 을지OB베어를 되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을지OB베어를 되찾는다는 것


4월 21일은 을지OB베어를 지키기 위한 철야를 처음 맡은 날이었다. 을지OB베어의 3대 사장 최성혁 사장님은 장사를 마치고 5분만 쉬자고 말하면서도, 첫 철야를 하게 된 나를 환영한다며 그 5분도 쉬지 않고 안주로 내줄 돼지껍데기를 녹이며 철야를 준비했다. 맥주를 따라내는 서스펜서를 잡고 내 손으로 처음 내린 맥주, 그리고 안주 삼은 이야기와 함께 철야를 시작했다. 가게의 역사, 그동안 철야를 함께 보낸 연대인들의 주사와 뒷이야기를 나누던 중, 순식간에 벌어진 강제집행으로, 우리는 조금 전까지 맥주를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을지OB베어에 더 이상 있을 수 없게 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았던 그 아침, 사장님들과 연대인들이 달려왔다. 최수영 사장님은 굳은 얼굴을 어렵게 푸시며 나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탓하지 말아요. 누가 있었더라도 벌어질 일은 벌어졌을 테니 스스로를 탓하지 말아요.” 누구라도 겪어야 할 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언젠가, 또 누구라도 겪게 될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법과 시스템의 문제다.

 

만선호프를 을지로 노가리 골목에서 없애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온 골목에서 자기 자리를 잡기 위해 다른 이를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없었던 마음. 그 마음이 ‘쫓겨나도 괜찮은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을지OB베어도 있고 만선호프도 있고, 다른 가게도 함께 어울리는 그런 골목 생태계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을지OB베어 2대 사장 강호신 사장님은 가게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같은 가게까지 문을 닫으면 대한민국에 버틸 수 있는 가게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게마저 빼앗긴다면, 자본 앞에서 지켜낼 수 있는 가게들이 과연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내야 한다.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흘려보내기엔 지금도 수많은 가게와 골목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회 제도 자체는 항구불변한 것이 아니며, 법으로는 지키지 못하는 가치가 있다. 그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오늘도 사람들이 모인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 을지OB베어 앞에선 매일 저녁 7~11시엔 함께 예배를 드리고 행진을 하며, 강연과 음악회가 열린다. 금요일엔 가수들의 공연이 진행되고, 토요일이면 DJ파티, 일요일엔 연대의 채식 밥상이 펼쳐진다. 을지OB베어가 다시 부활하는 그때를 목격하고 증언하기 위해, 이기기 위해, 오늘도 자리를 지킨다. 그날에 함께 하기 위해, 연대의 맥주 한 잔 마시러 언제든 찾아오신다면 좋겠다.

 


1) 최형묵, 「바보야, 죽은 사람이 살아나서 이야기 해도 안 되는 거야! : 현세와 내세의 역전, 그 진실(누가복음 16:19~31)」, 에큐메니안, 2022.06.21.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2756

2) 김아름내, 「을지OB베어 투쟁위 "만선호프와 상생 대화 나누고 싶다"」, 오마이뉴스, 2022.05.12. http://omn.kr/1yvh1

3) 박재형, 「쫓겨나는 민중 : 젠트리피케이션과 오늘의 민중신학」, 이상철 외, 『민중신학 고통의 시대를 읽다』, 분도출판사, 2018.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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