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봄, 기획 기사] 2030세대 여성의 정치적 선택 : 여자들은 항상 여기에 있었다(한보성)

2022-04-06
조회수 130


2030세대 여성의 정치적 선택

여자들은 항상 여기에 있었다

 

한보성(문학/지식사회학 연구자)

 

지난 3월 10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 선거는 마지막까지 어느 후보의 승리를 점치기 어려울 정도의 접전이었다. 11일 새벽 1시 정도에는 당선 확정을 할 수 있으리라 예측되던 선거는,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양상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결국 11일 새벽 4시가 거의 다 된 상황에서야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고, 윤석열 후보는 넉넉한 표차로 낙승을 거두리란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0.7% 차이 득표로 신승을 거두게 되었다.

 

[그림 1] 2022년 3월 10일 대통령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이재명 후보의 최종 득표 상승을 견인한 것은 마지막 여론조사에서까지 예측이 쉽지 않아 “마지막 부동층”으로 불리기도 한 2030여성, 그 중에서도 20대 여성의 선택이 주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민주당을 선택했다고 밝힌 20대 이하 여성의 비율(58%)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지지층이던 40대 남녀(각각 61%, 60%)에 못지않은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한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11일, 권인숙 의원은 SNS에 민주당 서울시당 신규 당원 온라인 가입자의 수가 하루 만 명 가까이 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70~80%가 2030세대 여성이라는 것을 밝혀 대선에서의 젊은 여성의 표심을 강조했다. 대선 이후 꾸려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추적단 불꽃 출신으로 이재명 후보에 대한 2030세대 여성의 지지를 이끌어 낸 박지현 씨를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한 것 역시, 젊은 여성들이 대선에서 보여준 움직임에 대한 정치의 응답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당연히 선거운동 기간 이전부터 우려되던, 그리고 선거 기간 내내 철회나 반성의 움직임조차 보여주지 않던, 윤석열 후보와 국민의힘 정당이 부추겨 온 여성혐오에 대한 반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거나 페미니즘을 ‘저출생’의 원인으로 꼽은 해로운 발언들에서부터, 성인지 예산(예산의 편성·관리·집행 과정에서 젠더 변수의 관점을 도입해 성평등을 진전시킬 수 있도록 예산을 사용하게 하는 분석·평가 제도)을 별도 배정 예산으로 오해해 벌어진 가짜뉴스 유포, 3월 8일 여성의 날에 선전포고라도 하듯 페이스북에 업로드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 윤석열 후보는 장기간에 걸쳐 일관적으로 여성혐오에 편승해 왔다.


[그림 2]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방송3사 출구조사

 

그러나 20대 대선을 놓고 보았을 때, 여성혐오 요소만으로 윤석열 후보에게 ‘전략적’ 투표를 한 2030세대 남성들의 수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혐 여론만을 대변해 오던 이준석·하태경 류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선택한 20대, 30대 남성은 각각 58.7%, 52.8%로 동세대 여성에 비해서는 상당히 우경화되어 있긴 하다. 그러나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연이은 성폭력 사태로 벌어진 2021년 4월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비해서는 현저히 국민의힘 지지가 줄어든 상태이다. 당시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오세훈 후보 지지율은 20대 이하 남성에게서 72.5%, 30대 남성에게서 63.8%였으나, 이번 대선에서는 20대와 30대 남성들 역시 꾸준하고 지속적인 선거 전략으로서의 여성혐오에도 불구하고 상당수가 이재명 후보 쪽을 택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볼 수 있다. 즉, 여성혐오로 젊은 세대 남성 전체가 결집하리라는 일부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의견은 유독 과대대표되었으며, 이런 의견만을 선별적으로 수용해 여성혐오로 공론장을 오염시킨 기획은 실패했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로 조직된 젊은 세대 남성의 수가 이들의 지지를 받아내려는 국민의힘의 기대에 현저히 못 미친다는 분석은, 동세대 여성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의 과소평가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가 1996년생,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한 성착취 단체 채팅방인 ‘N번방’의 개설자 문형욱이 1995년생,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이 1995년생, 조주빈과 공범관계인 강훈이 2001년생 등으로,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벌어진 온라인 성착취 사건들의 주범 및 주요 공모자들은 대개 20대 남성으로 밝혀졌다. 2021년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한국은 디지털 성범죄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에 위치해 있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해당 보고서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며, 생존자들은 성착취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자살로 이어지기도 했다고 밝힌다.(휴먼라이프워치 보고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한국의 디지털성범죄〉, 2021.06.21.) 동세대 남성 범죄자들이 기술을 이용한 여성 성착취를 다발적으로 감행하는 동안, 젊은 여성들은 자신 역시 언제든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워 갔으며, 이로부터 비롯된 ‘생존’의 위기야말로 이들이 정치적 주체화를 결단하게 한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언론이나 주류 정치 세력에 의해 충분히 주목받아 오진 못했지만, 2030 여성들은 꾸준히 여성 생존권 및 재생산권의 문제에 대항해 싸워 왔다. 여성 피해자를 일부러 노렸다고 가해자가 진술한 강남역 살인사건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를 주장한 ‘검은 시위’ 등 젊은 여성들이 대거 결집한 대형 시위는 대개 여성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젊은 여성들은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적합한 정치적 대변자를 얻지 못했다고 느껴 왔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일하게 페미니스트 후보임을 내세운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주목받자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후보 수가 크게 증가한 것 역시, 이 부분이야말로 기성정치의 일종의 ‘공백’이었음을 보여 준다.

 

민주당이 뒤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박지현 위원장을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2030세대 여성들의 결집이, 대선 기간과 정치 인생 전반에 걸쳐 성평등과 페미니즘 실현을 위해 원내정당 후보 중 가장 일관적인 행보를 보여 온 심상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은 다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그러나 선거 기간 동안 심상정 후보 개인에게만 12억원이 입금되었다는 점, 그 중 7억원은 대선 당일 하루에 들어왔다는 점은 젊은 여성들이 심 후보에게 갖는 미안함과 고마움, 연대 의식의 표현이기에 진보정당의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젠더 갈라치기에 ‘지못미’…2.37% 심상정에 후원금 12억원 쇄도〉, 《한겨레》, 2022.03.10.) 이는 물론 고 김용균 씨,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고 변희수 하사, 고 이예람 중사와 같은 약자들에게 보내는 연대 발언이, 노동 문제나 인권 문제에 높은 공감대를 갖는 젊은 세대 여성 유권자들과 공명한 결과이기도 하다. 매번 TV토론 때마다 소외된 이들의 문제에 주목한 심상정 후보의 발언은 이후 이재명 후보로 하여금 민주당 지자체장들의 권력형 성범죄에 사과하고, 고 이예람 중사 사건 특검 요구로 이어지기도 했다.

 

양당 체제가 앞으로 더욱 강화되더라도 앞서 말한 것처럼 정의당이 진보정당으로서 해야 할 몫은 분명해 보인다. 한편 2030세대 여성 유권자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한 국민의 힘은 기존 여성혐오 전략에 대한 수정 요구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준석 대표의 책임론을 묻는 사설들이 보수언론에 여러 번 게재된 바 있다. 또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했을(장혜영 의원) 여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젊은 여성들의 지지를 실질적인 정책·제도로 구현하지 못한다면, 민주당 역시 장기적으로는 고전하리라 예상한다. 2030세대 여성들은 단순히 일시적인 ‘팬심’에 의해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직접적인 정치적 대변자를 장기간에 걸친 숙고 끝에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 웹진 <3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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