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봄, 기획 기사] 조국을 망쳤으니 나라를 망칠까요 : 20대 대선의 언어 전략, 그 밑바닥에서(황용연)

2022-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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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망쳤으니 나라를 망칠까요

20대 대선의 언어 전략, 그 밑바닥에서


황용연(제3시대 연구기획위원장)


 1.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더불어민주당의 선거운동을 보면서, ‘저렇게 하면 이기기 힘들 텐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랬냐면, 지금까지 대선에서 승리한 모든 민주당 후보는 민주당 표만 얻어서 이긴 것이 아닌데, 이번의 민주당 후보는 민주당 표만 얻겠다는 선거운동을 계속하는 듯 보였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은 민주당 표에 자민련 표를 얹어서 이겼죠. 노무현은 한국의 모든 개혁 과제를 자신이 다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서 이겼고요. 문재인은 박근혜 탄핵으로 무언가 싹 바뀔 것 같은 분위기에 올라타서 이겼습니다. 이번의 민주당 후보도 막판에 민주당 표만이 아니라 “팔을 자르고 싶은 심정으로 찍었다”는 여성표를 얻긴 했습니다만, 결국 0.73% 역부족이 되었군요.

 

사실 국민의힘 후보의 선거운동도 민주당 후보와 비슷한 수준이었긴 합니다만,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국힘 후보는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을 자기 것으로 거의 온전히 전유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겁니다. 물론 국힘 쪽에는 ‘언제나 부자인데 더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이나, 그런 부자들을 물적으로 혹은 심적으로라도 ‘흉내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표가 기본으로 깔리긴 하겠죠. 그러나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의 전유는 부자들 혹은 부자를 선망하는 사람들 말고도 슬로건에 동의하는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하죠. 즉, 민주당 후보가 못한 혹은 너무 늦게 한 ‘자기 당 표 말고 다른 표 얻기’를 국힘 후보는 정도야 어떻든 해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민주당 후보는 거기에 카운터를 치지 못했고 말입니다.

 

2.

 

얼마 전 을지로의 ‘을지OB베어’ 호프집과 연대하는 거리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을지OB베어가 있는 곳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거리라던데, 가보니 특정 호프집 간판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더군요. 제가 참석한 거리 예배는 바로 그 특정 호프집이 을지OB베어까지 몰아내려는 시도에 맞서 매주 계속되어 온 예배였습니다.

 

을지OB베어와 연대하고 있는 ‘옥바라지선교센터’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역사적인 가치가 담긴 한 골목길을 철거하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출발했지요. 그 이후로는 을지OB베어와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겪었던 ‘궁중족발’(이 족발집을 몰아내려 했던 건물주는 문재인을 찍었다고 하더라고요.)과 연대했으며, 최근에는 잘 운영되던 수산시장을 억지로 뒤엎은 수산업협동조합에 저항하는 상인들과 연대하는 중입니다.

 

박근혜 정부 때나 문재인 정부 때나 젠트리피케이션 때문에 옥바라지선교센터가 연대할 곳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무래도 지금은 대통령을 민주당이 차지하느냐 국힘이 차지하느냐가 이니셔티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힘 편이건 민주당 편이건 부자들의 이니셔티브로 돌아가는 세상인 것 같다고 말이죠.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이 등장한 가장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였다는 부동산 이슈와 관련해 얼마 전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주택임대사업자에게 특혜를 주어 다주택자들이 너도나도 주택임대사업자가 되니 집값이 안 오를 수가 없는데, 그 상황에서 정부는 임대사업자 특혜는 손도 안 대고 다주택자를 공격하는 뉘앙스만 풍기면서 실제로는 주택건설 공약만 줄창 내놓았고, 집값이 올라 가장 고통받는 무주택자 정책은 없었다고요. 무주택자는 방치하고 다주택자에겐 어필하지도 못한 정책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었다는 것이죠. 그 상황에서 정작 다주택자를 공격하는 뉘앙스를 풍긴 정부의 고위 공직자부터 그 정책의 실행자인 LH공사까지 아주 골고루 정책의 결과로 자기 뒷주머니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면서, ‘부자 민주당’을 자임했고요.

 

이에 더해 이런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문재인 정부 초기에 최저임금을 가지고 소득주도성장이니 뭐니 했었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을 제대로 기하려면 노동권 강화책이 동반되어야 했는데 그건 신경도 안 쓰고(어쩌면 신경 안 쓰는 게 당연하겠지만) 최저임금만 올려 놓고 어떻게든 되겠지 한 꼴이었다고요.

 

민주당 정부에 호의적인 해석을 해 준다 해도, 돈 있는 자들의 이니셔티브로 돌아가는 세상을 고치려 뭔가를 해 보려다가 어떤 이유에서든 오히려 돈 없는 자들만 더 고통스럽게 한 셈이니, 정권교체라는 슬로건의 설득력이 올라갈 만도 했겠군요. 더군다나 대통령과 국회와 지방권력과 지방의회를 거의 모두 지배하고 있는데도 저런 모습밖에 못 보인다면 말입니다.

 

3.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이 한 말 중의 하나가 ‘검찰공화국 반대’였지요. 국힘 후보의 출신이 출신이고, 또 그 출신 때문에 이런저런 일을 겪은 후보여서 그런지 검찰 권력을 꽤 많이 강화하는 공약을 내걸긴 했습니다만, 검찰공화국 반대라는 말의 속뜻은 이 글의 제목에 나오는 사람과 관련된 말이었지 싶습니다. 그 사람은 ‘억울하게’ 당해서 커리어를 망치게 되었는데 그를 수사한 사람이 바로 국힘 후보니 그 꼴을 또 보면 안 된다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를 가지기 힘든 말이 ‘검찰 공화국 반대’ 같거든요.

 

그 사람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생각 자체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정 경향에 한정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니 검찰공화국 반대 운운하는 말은 그 사람이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는 ‘우리’가 옳다는 말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러니 서두에서 이야기했던 ‘민주당 표만 얻겠다는 선거’일 수밖에 없었고요. 게다가 선거운동 막바지로 갈수록 국힘 후보가 얼마나 나쁜 놈인지를 이야기하는 소리만 높아졌으니 ‘민주당 표만 얻자’가 강화되는 거죠.

 

그 ‘나쁜 놈 이야기’ 중에 좀 이례적이었던 것이 무속이니 신천지니 하는 말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쪽에서 국힘의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 기독교를 견제해 보자는 의도까지 담아서 한 말 같은데, 생각보다 꽤 널리 유통되었죠. 그 와중에 입이 썼던 한 장면. 민주당에서 차별금지법을 적극적으로 막는 기독교인 의원들이 바로 이 문제로 국힘 후보를 공격하는 스피커로 나서더군요.

 

이렇게 ‘우리가 옳고, 우리가 싫어하는 저 놈이 틀렸다’(거의 악마화 수준으로 갔다고 봅니다.)는 식의 선거운동을 했으니, 선거 막판에 그냥 한 명이라도 더 ‘밭갈아(이거야말로 정말 신천지 용어라지요?) 주세요’밖에는 할 말이 없었지 싶습니다. 결국 자기 고유의 언어를 분명히 하기보다, ‘힘대결에서 이기고 보자’가 되어 버렸다는 의미에서요.

 

4.

 

저는 바둑을 잘 모르지만, 바둑에서 ‘불계패’라는 건 50집, 60집 정도로 큰 차이가 나서 지는 게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1~2집 차이라도 그걸 따라잡을 전망이 도통 보이지 않을 때, 끝까지 가지 않고 패배를 인정하는 게 불계패라고 하더군요.

 

다시 국힘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지만 특별히 용빼는 재주가 있어 보이진 않으니 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될 수도 있겠죠. 이번에도 0.73% 차이밖에 안 났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민주당의 언어가 ‘우리가 옳고, 우리가 싫어하는 저 놈이 틀렸다’는 언어 외에는 없다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호의적으로 해석해 줘야 겨우) 돈 있는 자들의 이니셔티브에 어설프게 손 대다가 돈 없는 자들만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혹은 차별금지법 같은 주제에서는 오히려 민주당도 방조 내지는 방해세력에 지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민주당의 언어도 결국 부자들의 이니셔티브의 한 부분으로 이미 끌려들어가 버렸고, 그런 의미에서의 불계패 상황에 몰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민주당의 언어에 대해서만 이런 이야기를 할 일은 아닐 겁니다. 진보정당의 언어도 그 동안 ‘더 시원하고 더 강경한 민주당의 언어’라고 많이 오해(?)되어 왔고 어쩌면 그 오해(?)에 편승하려 한 것도 사실이니 말입니다. 진보정당이 노회찬 시절엔 괜찮았는데 요즘은 맛이 갔다는 이야기를 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다던데, 그 ‘노회찬’이라는 이미지가 (실제의 노회찬과는 별개로) 바로 ‘더 시원하고 더 강경한 것’이기도 하겠고요.

 

그런 의미에서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의 언어 독립이 시급하다 하겠습니다. 이번에 울산에서도 진보정당 득표율이 합산해서 3%선이던데, 이는 진보정치의 핵심 중 하나인 노동정치가 완전히 박살났단 소리겠죠. 물론 그나마 하던 노동정치를 안 해서 그리 된 것이기도 하고, 노동정치라는 것이 하던 대로만 해서도 안 되니까 그리 된 것이기도 하겠지만요.

 

글의 제목처럼 ‘새 정부가 나라를 망칠까?’ 묻는다면 아마 저도 ‘망칠 것 같다’고 대답은 하겠는데, 그 이유가 (이미) ‘조국을 망쳐서’는 아닐 겁니다. 아마도 누군가의 나라는 흥하게 하고 누군가의 나라를 망하게 하겠지요. 누군가의 망국을 지키기 위한 언어를 함께 만들기 위해 손을 내밀 때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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